DRINGKING

마시는 차, 맛있는 차, 성수 OMOT 티 세레모니

d0u0p 2023. 11. 2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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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길 성수동 여행을 다녀온 날 궁극적인 목적지인 OMOT에서는 다양한 차와 함께 다과로 구성된 티 세레모니를 즐길 수 있었다. 

2023.11.20 - [EATING] - 성수나들이 덴마크 스타일 브런치

 

성수나들이 덴마크 스타일 브런치

우리집에서는 완벽하게 서울의 반대편에 위치해 방문 기피 지역일 수 밖에 업었던 성수동 소식이 그 언젠가부터 종종 들려오면서 언젠가 한 번 쯤은 가 보겠지 싶었는데 드디어 올 해 가을에 다

d0u0p.tistory.com

밋보어에서 가볍고 담백하지만 훌륭했던 브런치를 먹고 잠시 서울숲에 들러 단풍을 구경하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또 아름다운 도자기와 오만원권을 소재로한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길 수 있는 티 세레모니 시간으로 꽉 채워진 풍요로운 주말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벽에 붙어 있던 지난 연꽃 차 세레모니 포스터를 보며 내년에는 꼭 연꽃차를 마셔 볼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다짐해 보았지만 내년 그 때 쯤 나와 동행인의 정신머리가 멀쩡할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티 세레모니는 국내에서 직접 손으로 덖어낸 차들과 다과를 국내 도예 작가들의 그릇에 담아 계절마다 각각 다른 주제로 풀어낸 이야기와 함께 차를 즐기는 자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자신의 몸을 녹여 주위를 밝혀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희생정신의 대표 아이콘인 초가 맨처음 등장했고 그 희생정신은 또 어머니의 사랑과 연결되어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구절초차를 처음으로 받아 마시게 되었다. 오랜만에 그 옛날 광주 시장에서 맛 보았던 양갱과 비슷한 복분자 양갱을 함께 곁들였는데, 광주 시장을 다녀온 이후로 비슷한 양갱을 찾아 보기 어려워서 가끔 생각은 났지만 먹을 수는 없었던 상큼하고 달콤한 양갱을 찻집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고 맛도 좋았다.

2018.06.08 - [VISITING/FRIENDS] - 1913 송정역 시장

꽃잎이 너무 가늘게 휘청거려서 얼핏 보면 할미꽃 같아 보일 수도 있는 구절초는 음력 9월 9일이 약효가 가장 좋아서 구절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구절초의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구절초의 효능은 부인병에 특화되어 있기도 하니 엄마마마님 생신에 한 사발 올려드려보아도 좋을 것 같다.  

가늘디 가는 구절초꽃잎차와 복분자양갱

첫 번 째 차와 관련된 이야기는 오만원권 뒤에 있는 월매도의 해석과 묶여 있었는데 두 번 째 차는 풍죽도와 연결된 어린 감잎차였다.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고, 감나무 역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니 감잎차를 준비하셨다고 한다. 어린 감잎차는 해마다 감잎 순이 올라올 때 그 어린 순으로 차를 만드는데 비타민C가 매우 풍부하다고 한다. 대신 어린 감잎을 따 버리면 감나무에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집 뒷 곁에는 감이 절대로 열리지 않는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어차피 열리지 않을 감나무이니 이른 봄에 잎을 따 차나 덖어볼까 싶다. 돌보지 않고 내버려뒀던 감나무가 그간 죽었을지도 몰라 여쭤보니 아직 살아는 있다고 하신다. 내년 봄에 잎을 좀 따 보고 싶지만 사실 차를 덖는 기본적인 방법 조차 모르니 제다를 어디서 또 배워야 가능할 일이기도 하다. 배보다 배꼽이 크고 할 일이 많아지겠다. 약간 쌉스름한 맛이 나는 감잎차는 잎에서 나는 향이라기 보다는 감이라는 열매를 대할 때 먼저 느낄 수 있는 감꼭지의 향이 짙게 배어 있는 느낌이었다. 잘못 우리면 떫을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감잎차를 일단 구매해서 우려 마셔봐야겠다. 직접 우리면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감잎차와 꽂감크림술떡

감잎차를 담은 도자기의 작품명은 ‘윤슬‘이라고 했다. 백자로 빚어낸 반짝이는 잔물결 무늬를 보고 있으니 아주 잠깐 한가롭게 물가에 앉아 차를 마시는 기분을 상기할 수 있었다. 작가의 도자기를 소장의 범주에 넣어 볼 생각은 전혀 못하고 살다가, 잠깐 탐이 나기도 했지만 내 일상 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그릇보다는 공간의 구조적인 개선이나 기본적인 컨디션 유지가 우선이라 다행히도 그릇 욕심은 다시 곱게 잘 접어 넣어둘 수 있었다. 에디션덴마크의 표일배는 사무실에서 필요한 일상 도구의 범주에 들어가니 구매할 수 있지만 ‘윤슬’을 사무실에 싸들고 가서 차를 마실 정도의 여유는 없다. 누워 있기 바쁜 집에서도 마찬가지라, 한참 전에 구매해 두었던 아주 작은 사이즈의 장인이 만든 호족반이 여전히 소파 아래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꺼내서 차를 한 잔 마실 날이 대체 언제쯤일까 나도 궁금하다.

홍류와 참깨강정, 홍류의 잎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던 찻주전자

그 다음 차는 홍차였다. 한국의 홍차는 외국산 홍차와 다르게 소엽종이고, 맛이 조금 더 부드럽다고 한다. 유자가 블렌딩되어 있는 홍류라고 했는데 함께 곁들인 참깨강정 탓인지 이미 2주가 지나버린 탓인지 유자향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희미하기만 하다. 오만원권 앞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들어있고 초충도에 그려진 풀벌레를 진짜인 줄 알고 닭이 쪼아 먹었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작은 나무 방망이로 깨강정을 조사먹을 수 있었다. 

비로약차와 약과단자

마지막으로 마신 차는 나주에 있는 부례사에서 만드는 발효차인 비로약차였다. 비자나무 아래에서 기르는 차나무가 비자나무 이슬을 먹고 자라서 비로약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찻잎과 함께 감초와 계피, 생강 등 일곱가지 약재를 함께 넣어 발효시켜 만든다고 한다. 금가루가 올려진 따뜻한 약과단자와 함께 마셨는데 이 또한 맛이 좋았다. 차갑게 식은 약과나 개성주악은 기름지고 달게만 느껴져서 약과를 대체 왜 좋아하는가 싶었는데 따뜻한 약과는 맛이 또 달랐다. 의정부에 약과 먹으러 한 번 쯤은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과 뿐만 아니라 차의 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비로약차는 좁고 긴 문양배에 담았다 하시면서, 분청토로 만들어진 잔이라 잠깐 분청에 대한 특성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는 바람에 또 화들짝 놀랐다. 백자토와 청자토의 특장점 및 차이점 등을 서술하라는 도예 문제에서 점수를 챙길 수 없었떤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분청사기를 만드는 흙에는 철분이 많다고 한다. 문제를 받았을 때 백자와 청자를 만드는 흙이 다르냐? 왜 다르냐? 유약 색이 다른 것이 아니었냐는 무식함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질문만 맴맴 돌아서 답지를 다 채울 수 없었는데, 그렇다. 흙이 다른 것이었다. 더우기 분청토는 청자토보다 철분이 훨씬 더 많이 들어 있어써 입자가 거칠고 투박한 형태의 도자기를 만들고 청자토는 또 입자를 더 곱게 만들기 위해 철분을 분리해 내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고 한다. 도자기를 빚어봤어도 알까 모를까한 흙의 성질들이지만 사실 도예의 기초 지식과 이론이기 때문에 몰라서는 안되는 부분이었을텐데 몰랐다. 그냥 깔끔하게 몰랐던 것이다. 내년에는 도자기를 빚어 볼까, 판화를 해 볼까, 하던 거나 열심히 해야 할까, 온갖 잡념에 사로잡혀 차 맛은 싹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두부판나코타와 불연속적이면서 자연스러운 패턴으로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도자기

마지막은 두부로 만든 판나코타 위에 포도 형상을 표현한 디저트였다. 역시 오만원권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묵포도도를 초콜릿과 수레국화로 표현한 디저트였는데  수레국화가 식용인줄은 또 몰랐다. 포도 역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라 자식들의 안녕과 번창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오브제였다. 이 모든것이 어머니의 바람과 사랑을 담았다 하니 내년 어버이날 테마로 다시 사용해도 될 것 같다. 오만원권 한 장에 이렇게 구구절절 애타는 모정이 숨어 있었다니 이쯤 되면 오만원권 신권을 발행할 때의 기획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지폐의 디자인 또한 생각해본 적 없는 영역이었는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인지 원래 기획 의도의 재해석인지도 궁금하다. 다음 시즌 시작하기 전에 기획 회의 하실 때 몰래 찾아가서 엿들어 보고 오고 싶다.
일단 내년에서 놓치지 않고 연꽃차를 꼭 마셔 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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