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GKING

마시는 차, 맛있는 차, 맥파이앤타이거 신사 티룸에서 여름 티 코스라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 강행했던 극기훈련

d0u0p 2023. 8.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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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중인 직장인과 이직해서 출근하는 직장인이 주중에 차를 마시려면 저녁에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간 미뤄왔던 맥파이와 타이거 티 코스에 드디어 가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이제는 평일에는 같은 시간대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서로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다. 어차피 휴직한 직장인인 나는 늦은 시간에 차를 마셔서 잠이 안 온다 해도 다음 날 늦게 일어나도 무방한 여유를 가졌으니 그냥 저녁에 만나 티코스를 즐겨보기로 했다. 
물론, 낮 시간도 남아 도는 휴직한 직장인은 해가 떨어지고 더위가 아주 조금 사그러드는 기운이 있을 시간이자, 직장인들이 본격적으로 퇴근해 9호선을 꽉꽉 채우는 러시아워보다 이른 시간에 신사역을 찾아 나섰다.
그날은 하필이면 폭서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더위가 찾아온 날이었던 터라 1호선 지하철은 과열된 선로 탓에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서행중이었고 덕분에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다른 때보다 길고 길었다. 손에 들고 있던 부채가 무색한 그런 날이었다. 1호선을 타고 출발해서 9호선과 3호선까지 갈아타고 신사역에 도착해서 남은 시간 동안 디카페인 커피 한 잔 마시며 글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카페콤마를 찾아 나섰다. 

여의도 외에도 다른 지역 여러 군데에 카페콤마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생활 지역을 벗어난 다른 지역의 카페 콤마를 찾아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신사 카페콤마와 얀쿠브레는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여의도 점과는 다르게 한 층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 바퀴 휘휘 둘러 보았는데 낯 선 공간이라 그런지 어느 자리도 그렇게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독서를 위한 공간은 의자가 딱딱해 보였고, 의자가 편한 공간은 테이블이 모두 낮았다. 적당히 더위를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설 예정이었으니 적당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앉아 밀린 글을 읽었다. 온라인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는 소설은 반납 기한이 있는데 꼭 늑장부리다가 반납 기일이 코 앞에 닥쳤을 때 몰아서 읽게 된다. 책을 빌리기 전에는 의욕이 과한데 빌리고 나면 급격하게 읽기 싫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날의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서정적인 결론이라 충격적이었지만 그 날 부지런 떨어서 겨우 마무리하기는 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퇴근한 직장인이 맥파이 앤 타이거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자 티 코스를 예약한 시간이 되기까지는 약간 여유가 있어서 저녁도 먹었다. 오랜만에 신사역 근처를 구경하며 아직 살아남은 맛집과 사라진 맛집을 하나 둘 씩 세어 볼 수 있었다. 그 중 아직 성업중인 곳이 미미면가였고, 내친김에 더위도 식힐겸 성게 모밀을 먹기 위해 미미면가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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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맛은 인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서 의아했지만 먹을수록 익숙하게 맛이 있어졌던 희한한 해물찜 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새로 생긴 간장 게장집도 있었고, 여의도에 분점도 생겼던 샐러드 맛집 마치 래빗은 건물주가 바뀌는 바람에 문을 닫는다는 장문의 사연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여의도 점은 아직 괜찮은지 출근하면 바로 찾아가봐야겠다. 지나치면서도 그 자리에 잘 있는지 미처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지도 상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쮸즈도 그대로인 것 같다. 줄 서기 지옥은 여전한지 궁금하다. 쮸즈와 마치래빗을 지나 들어선 골목에 그 날의 목적지였던 맥파이앤타이거가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간판이 보여서 그 빌딩이라는 것은 알 수가 있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빌딩 자체가 화장품 회사 건물인 느낌이 강하고 1층 전체 입구는 그 화장품 브랜드의 이미지가 가득해서 다른 쪽으로 입구가 또 있는지 한참 고민했다. 멀리서 봐도 화장품 브랜드 빌딩이요, 가까이서 봐도 화장품 브랜드 빌딩이었다. 예약을 하면서 잠깐 설명글을 본 것 같아서 다시 꺼내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화장품 매장에서 나오신 분이 맥파이앤타이거 예약하고 오셨냐며 물으시고 안에서 기다리라고 안내해 주셨다. 다들 문 앞에서 이러고 서 있기 일쑤인가보다. 설명글에서도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면 1층을 구경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뜬금없이 그 1층이 화장품 매장일 줄은 몰랐다. 1층 외에도 지하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2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여 일단 지하로 내려가서 조용히 기다렸다. 친환경 제품인 것 같은 브랜드의 제품들이었고, 한쪽에서는 홍보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맥파이앤타이거가 같은 층에 입점하게 되면서 고객 접대를 위한 맞춤형 차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빌딩 내에서 상생중이시라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친구가 도착하기 바로 전에 앞 시간 티코스를 마치신 분들이 내려오신 것을 보고 2층으로 먼저 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빈 자리였지만 곧 친구가 도착했고, 다른 팀들도 도착했고, 티 코스가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했을 때 바로 눈 앞에 보였던 오브제가 아름다워서 잠깐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서둘러 나오셔서 인사를 해 주시는 바람에 미처 담지 못해서 아쉬웠다.

계절별로 메뉴가 바뀌는 맥파이앤 타이거 신사 티룸의 이번 여름 티코스 메뉴는 아래와 같다.

  • 세작 녹차
  • 매화를 더한 녹차와 생각란
  • 잭살차와 계절 다식
  • 보이숙차와 쑥말차 모나카

자리에 앉았을 때 웰컴티로 이미 헛개 열매차를 받아 한 잔 마셨고, 처음 우려 주신 녹차는 세작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직접 덖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집에서도 홍배를 해서 마시면 좋은지, 모든 차가 홍배가 필요한지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에 오설록에서 애프터눈티를 마셨을 때에도 직접 덖어 내렸다는 차가 사실 국수한 맛이 좋아서 가장 마음에 들었었다. 그 정도 구수한 맛을 좋아한다면 그냥 보리차를 마시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받은 차는 밝은 곳에서 들여다 보면 솜털이 둥둥 떠 있는 것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어린 찻잎으로 만들어진 세작이었다. 해조류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아미노산인 테아닌이 함유되어 있어서 알파파 활성화에 도움을 주니 차분한 마음으로 명상할 때 마시기 좋다고 한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이제는 진정하고 싶은 순간보다 각성하고 싶어서 카페인을 찾는 순간들이 더 많아서 이렇게 큰 마음 먹고 앉아 마시기 전에는 따로 찾아 마실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마시고 나면 찻잔에 달큰한 향이 남아 있는데 녹차의 그 아미노산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녹차를 마실 때 느꼈던 비릿한 느낌이 이 테아닌 성분에서 오는 것일까?  

맑은 숙우에 따라 주시는 두 번 째 차는 매화를 더한 녹차였다. 곁들이로 생강란이 함께 나왔다. 매화가 전부인 차는 아니었고 녹차와 매화를 함께 우려낸 차였다. 우리기 전에는 매화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찾을 수 있었는데 우려내고 난 차에서는 매화 향기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주 약간 나는 듯 마는 듯 이게 정말 매화향이라고 할 수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매화 뿐만 아니라 보통의 꽃 잎 차들은 대체로 꽃이구나 싶은 향이 나기는 하는데 정말 특정 꽃의 향이 재현되는 느낌은 아니라서 늘 그러려니 하고 마셨던 것처럼 그러려니 마셨다. 예민해서 이런 향 마저도 구분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부심을 갖고 살았는데 그냥 평범한 사람인가보다. 싫은 냄새에만 개코력이 상승하는 것 같다.

세 번 째로 받은 차는 한국형 홍차인 잭살차였다. 참새의 혀만큼 잎이 작아서 작설차라고 부르는데, 잭살은 또 그 작설의 방언이라고 한다. 참새의 혀 모양을 닮은 것만이 아니라 참새의 혀처럼 찻잎의 색도 자색을 띠는 찻잎으로 발효해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앞서 마신 차와 달리 알코올램프에 불을 켜서 커피 사이폰 드립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드리퍼에서 차를 내려 주셨다. 덧붙여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모든 작설차가 발효해서 만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형태에만 집중해서 정의를 내리고 제다 과정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었다. 쪽파 스콘과 옥수수 양갱, 딸기정과가 함께 나왔는데 새콤 달콤한 딸기정과도 좋았고 고소한 옥수수 양갱도 좋았다. 다만 스콘은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난 후라 굳이 친구에게 양보했는데 굳이 그 친구는 스콘을 또 찻잔에 떨궈서 차를 새로 받아 마셨다. 난리통이라 그랬는지 잭살차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없다. 

한국형 홍차라 할 수 있는 잭살차에 어울리는 다과들이라 좋았다. 쫀득한 옥수수 양갱을 더 먹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차는 한 눈에 봐도 진한 색을 띄는 보이숙차와 쑥말차 모나카였다. 태극당 모나카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비슷한 느낌이라길래 나중에 태극당에서 모나카를 사먹어 보았다. 태극당 모나카보다 아이스크림이 훨씬 진득하고 고소한 우유맛이 나는 모나카였고 쌉싸름한 말차가루가 어울려서 달콤한 맛을 다독여 주니 훨씬 좋았다. 후발효한 보이숙차는 숙성되는 과정에서 카페인이 체내에 흡수되지 않게 변형되어 자기 전에도 마실 수 있다고 하고, 생차를 사서 숙성시켜 드시는 분들도 있다고 하니 옛날 옛적에 중국에서 동생이 들고 들어왔던 보이차가 멀쩡한지 확인을 해 봐야겠다. 

간편하고 앙증맞은 다구도 많이 보이는 것 같던데 마음에 드는 다구 하나 사들고 선선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차 마시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일단 보이차부터 열어서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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