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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한 직장인 연희동 라이카 극장 마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d0u0p 2023. 5. 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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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를 찍어준다더니, 젊은 사람들만 찍어주는 것인지 주말에만 찍어 주는 것인지 이제는 더 이상 찍어주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스웨이 커피 스테이션이 연희동 마실의 시작이었다. 

이색적인 인테리어이긴 했는데, 조용한 구석자리를 좋아하는 내게는 어느 곳 하나 편한 자리가 없었다. 결국 벽에 붙은 붙박이 스툴에 앉았는데, 이 또한 벽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의자라 옆구리가 자꾸 벽에 닿아 불편했다. 완벽한 구석러가 될 수는 있었다. 영화 시간이 애매하게 저녁 먹을 시간에 걸쳐 있어서 요기도 할 겸 플랫화이트 한 잔과 바나나 파운드를 주문했다. 바나나 향 솔솔 풍기는 따끈한 파운드는 맛이 좋았지만 어디선가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려 보니 카페는 지하층이었고, 내 머리 옆에는 바로 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배기 가스 차단은 잘 되고 있는 걸까 갑자기 걱정스러웠다. 진한 플랫화이트 덕분에 그 날은 잠을 설치고 또 덕분에 몇 일 동안은 어질어질했던 걸 보니 에스프레소가 심하게 진했던 것 같다. 
불편한 의자를 벗어나 연희동 골목 구경을 하며 라이카 극장을 찾아 나섰다. 더현대서울에서 기념일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금옥당이 보이고, 처음 오픈 했을 때는 제법 깔끔했겠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다정해보이기까지 하는 카페도 보였고, 사진에는 없지만 각종 디저트 전문점 등 재미있는 가게가 많았다. 

아마도 다음 일정이 없었으면 어딘가라도 들러 당장 뭐라도 구매했겠지만 참아야 했다. 냄새가 솔솔 풍기는 무언가를 들고 극장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라이카 시네마는 이제는 더이상 신선하지 않은 노출콘크리트 벽으로 된 건물이었다. 예전같았으면 모던한 분위기에 반했을텐데 이제는 시큰둥하다 오히려 주변에 둘러 놓은 소소한 초록 식물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입구를 들어서는데 카페 간판도 함께 보였다. Gwehdo라고 적혀 있어서 규도인지, 구에도인지, 구도인지 알쏭달쏭하게 읽어야 했던 궤도 카페가 같은 건물에 있는 것 같았지만 커피는 이미 한 잔 마셨으니 커피 메뉴만 있다면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찾아 보니 셔벗이 좋다고 해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다른 영화가 상영중인 떄라 로비는 한적했고, 층별 안내문을 보니 루프탑 가든도 있다고 하니 카페에 들르기 전에 잠깐 구경해 볼 겸 올라가 보았다. 

날씨가 적당히 선선했으면 음료를 들고 올라와 앉아 있어도 괜찮았을 것 같았는데 그 날 오후는 많이 더웠다. 뜨거운 볕으로 달궈진 돌판과 쇠판 의자 위에는 앉을 수가 없어서 결국 카페로 다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이미 카페 안으로 들어와 버린 당황스런 구조라서 잠시 머뭇댔는데, 음악 소리와 함께 웅웅 거리며 레일 돌아가는 소리가 섞여 있어 더 어지러웠고 까만 옷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 있어 또 당황스러웠고 분위기 상 주문은 자리에서 자동으로 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주문은 또 수동으로 직접 하는 방식이라 다시 당황스러웠다. 

자리를 잡고 카운터라고 구분하기 어려운 카운터 앞으로 가면 음료를 주문하고 번호를 선택한다. 주문 번호를 들고 돌아 가면 같은 번호의 음료가 레일을 타고 자리 앞으로 지나간다.


문제는 가볍게 셔벗 한 입 하려고 들어갔던 것이었는데 셔벗은 디저트라서 음료를 주문해야 주문할 수 있다고 했다. 커피가 주식도 아니고, 왜 커피를 마셔야 디저트를 주문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진한 커피를 마셨으니 입가심으로 셔벗을 먹을 수는 있겠는데 그게 꼭 커피를 주문했을 때만 주문 가능한 옵션이라는데는 동의할 수가 없다. 

카페인이 없는 청량해 보이는 바질 스파클링을 주문했다. 음료가 지나갈 때 번호표와 카페 설명글이 함께 나오는데 쟁반 없이 따로 따로 내리려니 손이 바빴다. 냅킨이 지나갈 때도 돌을 치우고 냅킨을 꺼내야 하는데 레일이 빨랐다. 굼뜬 사람에게는 또 불편한 카페였다. 젊은 동네는 이제 불편한가보다. 라이카 시네마 영화 티켓이 있으면 10% 할인이 가능하다. 주문 받으시는 분은 먼저 확인하지 않으셨지만 굳이 또 묻지 않았다. 1층에 있는 키오스크가 또 너무 구석진데 있어서 티켓을 미처 바꾸지 않고 그냥 올라갔던 터라 티켓을 가져 오라고 하면 또 내려가서 키오스크를 찾아서 티켓을 뽑아 다시 올라와야 하니 귀찮아서 말았다.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극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바로 왼쪽을 돌아 키오스크를 확인하시기 바란다. 아무도 없는 로비로 돌진했다가 키오스크를 못찾아 지하 상영관 입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키오스크를 겨우 찾았다. 바보인증이 따로 없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양자경의 연기가 궁금해서 보기로 했었는데 진짜 오랫만에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이 들어서 초반부에는 엄청 낄낄대며 보았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사춘기 딸내미의 질풍노도를 끌어 안으려고 노력하는 엄마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결국 온 가족이 평화로워지는데 그 순간이 그 가족들에게도 어색하지만 시종일관 계속 낄낄대며 웃다가 조용해진 그 때가 내게도 어색했다. 전반부에 심하게 계속 웃다가 너무 힘들어 지칠 때 쯤 주인공에게도 정신적인 한계가 왔다는 경고가 영화 속에서 울려 퍼져서 그 또한 재미있었다. 나에게도 그 때가 한계였다. 
발가락으로 피아노 치는 거 나도 해 보고 싶다. 모든것, 어디에서든, 한꺼번에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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