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성수나들이 덴마크 스타일 브런치

d0u0p 2023. 1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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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는 완벽하게 서울의 반대편에 위치해 방문 기피 지역일 수 밖에 업었던 성수동 소식이 그 언젠가부터 종종 들려오면서 언젠가 한 번 쯤은 가 보겠지 싶었는데 드디어 올 해 가을에 다녀왔다. 
 
물론 지금은 철이 아니라 불가능하지만 연꽃차를 맛 볼 수 있는 찻집 오므오트(OMOT)에서 다양한 차와 함께 다과를 즐길 수 있는 티 세레모니를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서울의 반대편이라는 심리적 지리적 단점을 극복하고 과감하게 출타를 결정했고,  게다가 티 세레모니를 예약한 시점은 무려 단풍이 무르익을 때라 서울숲에서 잠시 산책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일석이조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또한 그 먼 곳까지 달려 갔는데 그동안 궁금했던 덴마크 스타일 브런치도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호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일반 밀보다 훌륭한데 그 호밀에 온갖 종류의 곡물이 한가득 들어 있는 라이브레드와 함께 부드러운 버터와 치즈, 달걀 반숙을 함께 구성한 시그니처가 있다는 밋보어에서 일단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생전 처음 뚝섬 역에서 내렸다. 임용 시험을 본 날도 이 근처 어디에서 내려 학교를 찾아갔었던 것 같기는 한데 새벽이었고, 폭설이 내려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아마도 뚝섬역은 아니고 강변역이었거나 구의역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도 앱에서 알려주는 최단 경로를 선택해서 일단 뚝섬 역에 내려서 가라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성수에서 핫하다는 라우겐 프레츨을 주력으로 하는 브레디 포스트가 나타났는데 희한하게도 그 앞 삼거리는 한참 전에 종방한 학원 학부모 연애물 드라마에서 전도연이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하던 곳이었다. (너무 먼 기억이라 아닐 수도 있지만)
삼거리를 지나 더이상은 길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고 오른쪽으로 돌아 보니 바로 밋보어가 나타났다.

덴마크어라서 밋보드가 아닌 밋보어라고 읽고, 밋보어는 ‘나의 식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의 선택으로 가꾸는 나의 식탁이라니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의 동료 J가 도착하기 전 일단 커피를 주문했다. 시즈널 필터 브루는 다양한 원두로 구성되어 있고 주문할 때 원두 특성에 따라 선호하는 커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단풍철은 시작되었지만 더위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 날씨라 여전히 차가운 커피가 필요해서 복잡한 이름이 붙어 있지만 본질은 케냐인 아이스 시즈널 필터 브루를 한 잔 주문했는데, 커피로 맞이하는 밋보어의 첫인상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꽤 오랜만에 맛있는 케냐를 맛보게 되어 기분이 아주 좋아졌고 브런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에디션덴마크와 협업하여 에디션덴마크의 제품들을 사용하고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제품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아하고 깔끔한 티포트가 한 눈에 쏙 들어와 결국 집에 돌아와 티포트를 주문했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구매이지만 한동안 기대감을 품고 지내겠다며 그 시점에는 바로 받을 수 없는 연한 푸른 색의 로고가 프린트된 티포를 주문해서 한참 후에야 받아보기로 했다. 괜히 그 색상만 당장 받을 수 없다고 하니 그 색상이 제일 아름다운 색상일 것마 같은 그런 느낌도 있었다.

커피는 맛이 있었지만 정말 소박하고 간결하다고 할 만한 라이브레드 플레이트에서 특별한 맛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간단하디 간단한 재료들로 구성된 한 접시에서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의 정수를 맛볼 수 있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모든 재료들이 경이롭게도 훌륭한 풍미를 뽐내고 있었다. 접시 위에는 곡물이 한가득 들어 있는 덴마크 라이브레드와 방목한 청계가 낳은 청란으로 만든 반숙, 말돈 소금과 봄꿀을 섞어 만든 부드러운 버터, 치즈가 함께 놓여 있었다. 치즈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프랑스 꽁테 치즈라고 한다. 숙성 정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데 밋보어의 꽁테 치즈는 6개월 숙성 버전이었다. 약간 단단한 편이고 고다치즈보다는 끝 맛이 더 부드러웠다고나 할까, 치즈는 다 그 놈이 그놈인 것 같기는 한데 약간 그 뒷 끝에 텁텁함과 쌉스름한 맛이 묻어나는 경질이 치즈들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고소한 라이브레드는 말할 것도 없고 카운터에 놓여 있는 버터 산의 일부인 부드러운 봄꿀 버터까지 어느 하나 맛없는 재료가 없었다. 그래놀라 요거트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다. 꿀도 좀 사올 걸 그랬나 싶기는 한데 집에 있는 커다란 꿀단지를 동낼 수 있는 날이 너무 요원해 보여 차마 꿀은 살 수 없었다.

  • 대니시 라이브레드 플레이트 12,000원
  • 봄꿀 그래놀라 요거트 10,500원
  • 시즈널 채소 프리타타 플레이트 13,500원
  • 시즈널 사워도우 팬케이크 14,000원
  • 크리스피 감자 밀푀유 16,000원
  • 치폴레 에그 & 당근라페 오픈 샌드위치 12,000원
  • 제철 과일과 농장 허브 13,500원
  • 오늘의 스프 8,000원 
  • 크로아상 바나나 푸딩 8,000원
  • 저스트 프룻 대니시 슈 5,500원
  • 밋보어 시즈널 케이크 5,500원

사워도우로 만든 팬케이크며 바나나 푸딩에 대니시 슈까지 메뉴판에 보이는 다른 메뉴들도 모두 너무 궁금해서 꼭 용기를 내서 올 해 안에 한 번 더 다녀오고 싶다. 정말 너무 멀어서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밋보어에 다시 방문하기 전까지는 에디션 덴마크의 아름다운 티포트로 차를 내려 마시며 빡센 일상을 감내하며 지내야겠다. 티포트라도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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