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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한식당 솜씨

d0u0p 2018. 6. 1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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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동부이촌동에 자리한 곳인데 리모델링해서 오픈한 신영 빌딩 증권 지하에 새로운 매장을 하나 더 만드셨다. 지난 번에 들렀던 하카타분코 라멘집인 오토코 쥬쿠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토코 쥬쿠를 포스팅할 때 기본적으로 프랜차이즈인지, 원래 가게가 또 있는지,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가는 곳인가 궁금해서 오토코 쥬쿠에 대해 찾아 본 적이 있다.

2018/06/05 - [EATING] - 여의도 직장인 점심 : 하카타분코 오토코쥬쿠

오토코 쥬쿠에서 직접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신영 증권 빌딩 지하의 식당이며 매장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가 맨즈 그루밍이라서 매장을 열기로 확정했다는 글을 보고 흥미진진해졌다. 식당가 구성이 희한하다 싶기는 했는데 그루밍족 타게팅이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식당이 아직 많지는 않고, 박찬일 쉐프의 돼지국밥집인 광화문 국밥과 오토코 쥬쿠, 솜씨, 그리고 기본적으로 샐러드인 것으로 보이지만 뭔가 실하게 영양 성분을 챙겨지만 우리는 비싸게 받을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스윗샐러드가 지하에 있는 식당의 전부이고, 바이크 관련용품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매장과 여행사인지 카페인지 잘 파악이 안되는 여행관련업체, 플라워 샵, 안경 매장, 옷 가게 정도가 지금까지 구성된 매장의 전부이다. 테마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을 때 뭔가 쌩뚱맞다고 생각되던 상가 구성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각 매장에서 무엇을 먹어도 기본이 만원 정도 하는데 점심에 그 정도 비용을 쓰는 데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그루밍족인가 싶기도 했다. 

일단 내 주변에는 그루밍족은 없다. 좋은 음식과 자신을 가꾸는 데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하루 점심에 만 원 지출은 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혼자 벌어 혼자 펑펑 쓰고 있는 나는 출근해서 먹는 점심이야 말로 너무 소중하고 값진 것이기도 하고, 입도 짧아서 한 끼를 먹어도 잘 먹고 싶어 그 날 그 날 맛 있는 점심을 찾고 지출되는 비용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같이 점심을 드시는 아/저/씨들은 달랐다. 훨씬 젊은 친구들도 많지만 그들도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에 이미 발을 들였고, 술도 좋아하고 담배도 뻑뻑 피우고 하는 이상 아저씨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친구들이야말로 오히려 기반을 닦기 위해 점심에 쓰이는 지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직종이 달라서 그럴 수 있다. 그들이 목표로 한 그루밍하는 남자들은 점심 한 끼에 만 원 쓰는 것에 전혀 꺼리낌 없는 소위 잘 나가는 금융권 젊은 남자들이다. 그래서 아무리 야근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 좀비처럼 키보드를 두드려도 그들과는 기본 연봉 테이블부터 달라서 점심 한 끼 팔천원에도 벌벌 떠는 이들에게는 지옥의 맛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식당이 몇 개 안되지만 꽤 붐벼서, 열 한시 사십분쯤 일찍 나갔는데 이미 식당이 만원이었던 것은 정말로 그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이 열 한시부터 시작되는 금융권, 증권가 사람들이기 때문일 법 하다. 일 이 분 정도 대기 예약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정말 테마에 맞아 떨어지는 페르소나들이 등장해서 정말 재미있었다. 겉모습이나 말투로 보아 그루밍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할 수 없는 정확하게 그루밍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인 행동양식은 기술할 수 없지만 속으로 혼자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 잘 했다. 

내 주변 환경의 사람들 같은 사람들이 채운 세상만 나의 세상이라고 금 긋고 이렇게 비싸게 팔아서 장사가 되냐 마냐 걱정한 내가 참 우매해 보였다. 요즘 사장님께서 정말 열심히 뛰어 다니고 계시니 곧 나은 형편이 되리라고 일단은 믿어 본다. 

5년 묵었다는 된장찌개는 약간 애매했다. 가끔 된장을 잘 한다고 내세우는 다른 집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시큼한 맛이 있었는데, 그게 좋은지 안좋은지 잘 모르겠다. 좋은 된장은 그것이 일년이 지났던 십년이 지났던 내 입에 맛 있으면 좋은 된장일 것 같은데, 맛이 있었다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느낌이 있다. 심지어 9,800원이었고 된장의 시큼함 빼고 건더기가 가득하고 차돌박이의 고소한 풍미가 살아 있었던 것 까지는 좋았다. 차돌 된장 원래 느끼해서 좋아하지 않지만, 적당히 고소하고 느끼하지는 않아서 괜찮았다. 대신 가끔 씹혀지는 차돌은 질깃한 느낌이 있어서, 정식 메뉴에 메인으로 차돌구이가 있어서 그 차돌은 과연 괜찮을까 궁금해지기는 했다. 

차돌된장과 함께 새우관자 가지샌드 튀김 정식을 주문했는데, 새우관자 가지샌드 튀김은 매우 좋았다. 엄마가 볶아주는 물컹한 가지는 싫은데 바삭한 식감과 부드러움이 함께 살아 있어서 향기롭고 좋았다. 중국 요리 메뉴 중 어향동고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했다. 실제로 새우를 넣은 가지샌드는 한 조각이었고, 한 조각은 버섯 위에 다짐어육이 올라간 형태의 것을 튀긴 것이었다. 곁들이로 나온 실부추무침 역시 굴소스가 살짝 들어가 있어서 중국 요리 느낌이 나면서 튀김들과 함께 잘 어울렸다. 요리의 이름으로 보아서 주인공인 것들이 이제 보니 중국식이다. 뭐, 중국 요리 좋아해서 더 좋았을 법도 하다. 달걀말이는 명란과 함께 나와서 맛있게 잘 먹었고, 사실 가장 좋았던 것은 도라지였던 것 같다. 빨갛고 새콤한 도라지 무침은 흔하지만 짱아치로 된 도라지는 처음 먹어 보는데 맛있었다. 도라지도 좋아해서 그냥 맛있게 먹었던 것인가 싶기는 한데, 이 정도 가격이니까 도라지와 명란, 어향가지(내 마음대로 이름 바꾸어 부르기)정도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집에서나 먹었지 일반 식당에서 도라지 맛 본지 오래된 것 같다. 된장찌개도 요즘 자주 안 끓여 주셔서 맛있게 먹기는 했는데, 자주 끓여 주시면 안 사먹을 것 같기는 하다. 

음, 그렇게 보면 그루밍하시는 분들은 고급 한식 집밥을 먹고는 싶은데 집에서 먹을 수 없는 그런 분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봄이 되면 냉이 듬뿍 넣은 된장찌개에 철마다 두릅, 더덕, 꽃게 등을 꼬박꼬박 챙겨 주시는 엄마가 계시는 엥겔지수 높은 우리집에서 나는 엄마 찬스를 사용해야겠다. 된장찌개와 미역국 타령을 좀 해야겠다. 두릅은 이제 좀 질렸다. 보리굴비도 계속 먹는 중이고, 러시아 털게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은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도라지와 고들빼기 정도 더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솜씨 메뉴


연어아보카도비빔밥 12,500원
매콤낙지비빔밥 12,000원
한우육회비빔밥 14,500원
성게알냉메밀국수 16,000원
물회메밀국수 13,000원
한우차돌된장찌개 9,800원
솜씨차돌박이구이정식 18,000원
새우관자가지샌드튀김정식 13,000원

결정적으로 이 메뉴 중 정말 맛이 궁금해서 다시 가서 먹어 보고 싶은 메뉴는 없다. 팀장님이 정식 메뉴를 보실 때, 이미 집에서 차돌을 많이 구워 드신다고 또 먹고 싶지 않다 하셨고, 된장찌개는 앞에서 말했듯이 그 재래식 된장이 원하는 맛이 아니었고, 물회메밀이 먹고 싶으면 판교에 가서 전복 물회를 먹을 것 같고, 성게알 냉메밀이 먹고 싶으면 신사동의 미미면가에 가서 성게알 새우 소바를 먹을 것 같고, 연어는 기름져서 싫고, 낙지는 주변 식당에 있을 법한 메뉴이고, 육회도 별로인지라 결국 남는 메뉴가 새우관자가지샌드튀김정식인데 또 생각나서 간절히 줄을 서서 만 삼천원을 내고 먹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나 여의도는 단품 메뉴 하나만 잘 하는 식당이 많아서 메뉴 구성으로 보았을 때 애매하다. 신영증권의 고급 사내식당 정도의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광화문 국밥은 생각난다. 

2018/05/17 - [EATING] - 여의도 직장인 점심 : 광화문 국밥 (여의도점)

함께 식사하시는 분들이 일반적인 편견으로 돼지국밥 프레임을 걸어서 싫다 하셔서 눈치를 보고 있다. 이렇게 메뉴로 눈치 보는 것도 싫긴 한데, 일단 석 달만 참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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