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이태원 피자 맛집 보니스 케이브

d0u0p 2018. 4. 18. 21:04
728x90
반응형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삼일절 다음 날이었는데 급만남이 결정되었고, 그날 정말 심하게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출근했는데 사무실에서 보니스까지 가는 경로를 검색하니 버스로 세 정거장, 그리고 내려서 걸어가면 되는 길이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남산을 구비 돌며 신나게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앱이 지금 내리는 것이라고 해서 급하게 내렸다. 
급하게 내렸는데, 왜 난 아직도 산 꼭대기에 있는가?

일단 경치가 좋으니 즐겁게 사진을 찍고, 맵을 켜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야할 방향을 잘 못 판단했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공기도 상쾌한 느낌이었고 저녁 노을도 아름다운 느낌이어서 중간 중간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 하며 일단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사진 한 구석에 모여서 시시덕거리는 아랍인 무리가 있다. 그들을 맞닥뜨리고 나니 좀 무서워지기도 했다. 이 길 끝에서부터는 정말 인적이 드물고 심지어 터널이 나타났고, 터널 건너 편으로 가야 하는데 빠르게 건널 방법이 없었으며, 돌아가려면 다시 산구비를 반 정도 올라가서 터널 뒷길로 차가 유턴하는 길의 옆에 나 있는 작은 인도로 걸어야 하는데, 정말 외진 길이었다. 그리고나서는 주택가의 뒷골목이었지만 이 동네가 이렇게 한가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불빛도 없는 그런 주택가여서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다.

번화해 보이는 골목 무렵에 다다라서 겨우 안도하며 피자집을 찾아 갔는데, 이 무슨 ㅋㅋㅋ 지금까지 산을 넘어 왔는데, 산 너머 산이라더니 내 앞에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 손님의 산! 피자집을 골목 반대편에서 볼때는 괜찮았는데 가까이 가서 골목으로 꺾어지니 줄이 길었고, 당연히 맨 끝으로 가서 줄을 섰다. 

급 만남에 무엇을 먹겠는가 메뉴를 논하는 자리에서 친구가 정말 "죽을만큼" 맛있는 피자집이라며 그곳에 꼭 가고 싶다 하여서 흔쾌히 가자 하였지만, 이 줄을 서고 입장하기 직전까지 친구는 사실 나타나지 않았다. ㅋㅋㅋ 물론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일도 정리하고 어쩌고 해서 늦긴 했고, 당연히 내가 먼저 가서 줄을 서마 하였지만 10센치 가량 되는 통굽 부츠를 신고 산을 넘을 줄은 몰랐던 데다가 대기도 이렇게 길고 빡셀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와, 정말 버라이어티한 날이었다.)

서빙하시는 분들은 모두 외국분들이라 한국어는 거의 못 하신다. 줄 서있을 때도 투 피플! 투 피플! 유 투? 쓰리? 포? 로 물어 보시고는 했는데, 사실 주의깊게 듣지 않고 마냥 서있으면 자리가 나도 못 들어갈 수 있다. 역시나 핫플레이스라 그런지 세 명 자리는 쉽게 나지 않았고, 다섯 명 자리는 더 쉽게 나지 않았고, 두 명 자리가 계속 나니까 혹시 두명 있으면 들어오라고 하는데, 애매한게 두명이냐 해서 세명이다!라고 했을 때도 들어오라고 했다. 나도 호기롭게 세명이다! 하고 들어 갈 순 있었지만 일행이 모두 오지 않은 상태라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있던 두 명은 그 얘기를 못 듣고 뒤에 있던 세명은 우리 셋이다! 해서 먼저 들어가기도 했고, 뭔가 그냥 빨리 어필하면 되는 시스템인가 싶기도 했다. 그간 한국어 좀 느신 분도 계신다고 하더니 아시아계분은 그래도 두명? 세명? 정도로 물어보시기는 했지만 뭐 그렇게 크게 한국어가 느신지는 모르겠다.

주문도 영어로 해야 한다. 두 개의 산을 넘고 지친 나는 테이블에 널브러져서 친구가 나머지는 다 했다. 들어가고 나니 두 명이냐고 물었다가 세 명이라고 해도 오케이했던 이유를 알 것 같은 상황이었다. 테이블과 좌석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대기석에서 손님을 들어오게 할 때 약간의 여유를 두고 부르는 것이었다. 



사실 영어 좀 못해도 주문법 굉장히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무서워하지는 않으셔도 된다. 그리고 메뉴판이 문제이긴 한데, 폰트와 사이즈가 실로 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상태라는 것, 영어인것도 문제인데 폰트도 잘 안읽히는 폰트라서 이 대목에서 살짝 성질이 났고, 메뉴판 새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읽기 괴로운 메뉴판 폰트

결론은, 피자를 먹고 죽지 않고 잘 살아 있으며, 산넘고 줄 서느라 죽을 뻔 했다. 피자는 그 수고에 비하면 굉장한 맛은 아니었다. 피자로만 치면 내 입 맛에는 차라리 그 고양 스타필드의 데블스 다이너 피자가 훨씬 좋다. 2017/12/17 - [EATING] - 고양스타필드 맛집 데블스다이너 - 다만 음료는 딱 입맛에 맞는 알콜 약한 애플사이더가 있어서 즐겁기는 했고 일단 들어가고 나면 여유롭게 맥주와 피자를 즐길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아마 집에서 도미노 피자를 시켜 먹던가, 지하철 역에서 가까운 곳이 시카고 피자가 있다면 그 집에 갈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