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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물정 모르는 아재들이 식사하지 않는 날 먹을 수 있는 스페셜 메뉴들

d0u0p 2018. 7. 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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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흔한 직장인이 있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고, 저녁은 다이어트 겸 때울 예정이라 점심은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것 같은 입에 맞는 밥을 먹고 싶다. 밀가루 들어간 분식은 싫고, 빤한 용돈에 한 푼이라도 아껴서 마누라 몰래 피우는 담배를 사야 하니 너무 비싼 밥은 먹을 수 없다. 국수나 라면을 먹느니 샐러드 정도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저렴한 샐러드는 배가 안부르고, 배 부르게 먹으려면 비싸다. 이 동네에 샐러드를 파는 집이 있으면 좋겠지만, 굳이 찾아 보기는 귀찮다. 

이런 흔한 직장인과 점심을 함께 먹는 우리는 힘들다. 

맛 있는 점심 먹고 싶으면 돈을 더 쓰면 되는데, 그 분들은 돈을 덜 쓰면서 맛 있는 점심을 먹기를 원한다. 함께 식사하는 자리이니 공동의 선을 위해 적당한 값에 적당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찾기 위해 매일 고민해야 한다. 

따로 먹으면 된다는 솔루션은 일단 아직은 논외로 하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힘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맛이 있어 보이는 알탕집에 가 보기로 한 날, 의외의 인파에 놀라서 되돌아 나왔다. 사실 적당한 가격에 맛이 있는 집은 당연히 사람이 많다. 기다리는 것도 싫어하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되돌아 나왔다. 더운 여름에 다시 메뉴를 찾아 점심을 먹자니 힘이 들었다. 

팀장님이 안을 내셨고, 팀장님 안 중 제일 가깝고 줄이 길지 않은 1층 식당을 갔다. 적당히 메뉴를 골고루 시켜 먹고 나니 묻는다. 

"여기 왜 와요, 맛 없는데?"

맥이 풀린다. 원래 그 날 다른 분이 식사를 거르시겠다 하고, 함께 하신 그 분도 거르신다고 하시면 팀장님과 조금 비싸도 맛 있는 점심을 먹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 식당에 우리는 왜 갔을까, 내가 묻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오붓하게 팀장님과 드디어 박찬일 쉐프의 팔레토에서 파스타와 매운 닭고기 덮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간, 종종 그 분들이 식사를 하시지 않을 때 기쁘게 먹었던 메뉴들이 몇 가지 있다. 

일단은, 광화문 국밥의 냉면, 물론 오늘 같던 팔레토와 똑같은 박찬일 쉐프의 가게이지만, 돼지국밥과 냉면이 정말 맛이 있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호기심도 없는 그 분들은 광화문 국밥 집 앞까지 함께 가셨다가 입에 익숙한 순대국집으로 발길을 돌리셨었다. 그렇다고 내가 순대국을 안먹지도 않고, 심지어 그 집 순대국 나도 좋아한다. 단지 팀장님은 한 달에 한 번만 가고 싶으실 뿐이고, 나는 2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흔한 직장인이 아니고 유난히 입맛 까다로우신 분들인데 착각하고 있나?

냉면 외에도 새로 생긴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먹었는데, 적당한 가격에 맛이 있었다. 남해안 멸치로 육수를 내는 김치 국시국밥 메뉴도 함께 먹었었는데 김치 국시국밥은 개념이 모호했다. 김치국수를 주고 밥을 따로 주시면 좋을 것 같다. 이미 말아져 있는 국수와 밥은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보기에는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희한한건 멸치 반찬이 40년 넘게 먹어 본 멸치 반찬 중 으뜸이라 할 만한 맛이었다는 것이다. 

비빔국수 말고 열무 물국수 메뉴도 있어서 먹어 보고 싶은데, 앞으로도 계속 눈치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게다가 실상 눈치는 우리만 보고 있는 것일 것이라는 점에서 빈정이 상하기도 한다. 

버거와 샌드위치 집도 한 번 갔었다. 콘래드호텔의 10G, 소문만 무성하게 듣고 궁금해하던 곳이다. 새우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아보카도 양이 적어서 실망스러웠지만, 치킨파니니는 훌륭했다. 그리고 유리장 안에 들어 있는 먹물 번의 크랩 케이크 샌드위치와 각종 샐러드들이 모두 궁금해서 또 가고 싶다. 무엇보다 커피 맛도 훌륭했고, 머핀도 맛있어 보였다. 

중국집도 두 군데 정도 더 가보고 포스팅하고 싶은데 늘 가던 집만 가야 만족하시니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블로그 때문에 늘 새로운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니다. 매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항상 같은 일상에 점심 시간만이라도 기분전환하면 좋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가끔, 아주 가끔 그 분들이 함께 식사를 거르시는 날이 이제는 기분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으니 그나마 위안이고, 오히려 희박하고 드물게 찾아 오는 기회라 기쁨이 배가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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