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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덕에 저렴해진 가격으로 구매한 구형 와콤원

d0u0p 2024. 3. 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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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와콤원이 출시되었을 때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수십번 반복하다가 결국은 디스플레이 없는 일반형 태블릿 중에서 쓸만한 놈으로 일단 구매했었는데 움직이는 내 손과 펜 끝과 그려지는 그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내 손과 펜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간접적으로 모니터로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그 때 구매한 일반형 타블릿을 설치하고 선을 하나 그어볼 때 까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일반형 타블릿을 전에 안 써 본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새 타블릿을 사서 일러스트레이터를 열고 타원 하나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다시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써 보려고 노력을 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뭐라도 찌글찌글 그리기는 했고, 불의의 사고와도 같았던 급작스러운 휴직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무실에서 쓰고 있던 타블렛은 당연히 집으로 왔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캐릭터를 그리기보다는 3D 툴 스터디를 할 때 오히려 더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3D 툴로 모델링과 스컬팅할 때에는 13인치 사이즈의 태블릿 스크린에서 작업하는 것 보다는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3D 툴은 아마도 계속 일반 태블릿을 사용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를 한 상황이고 한동안은 다시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안정을 되찾아 그간 계획만 하고 미뤄두었던 이모티콘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슬슬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태블릿은 집에 있었으니 사무실로 다시 옮겨야 했지만 그러기 싫었다. 집에서는 집에서대로 태블릿을 쓸 일이 있을 것 같으니 사무실에서 쓸 태블릿을 새로 장만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는데, 하필이면 지금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데스크탑에는 20인치가 약간 넘는 와이드 모니터를 딱 하나 붙여서 사용중인 터라 작은 사이즈 모니터를 하나 더 붙일까 말까 고민중이던 차였으니 작은 모니터로도 사용할 수 있는 와콤원을 구매해서 붙여 놓으면 안성마춤이겠지 싶었다. 

실제 업무 중에는 보조 모니터용으로 사용하고, 여유를 틈타 잠깐씩 일러스트 작업할 때만 태블릿으로 사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막 진짜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해서 떼돈을 벌어보자는 마음이었다면 프로 작업러들을 위한 신티크 라인을 고려했겠지만, 일단 어디까지나 취미 겸 여가 활동 삼아 작업해 볼 요량이었으니 가볍고 저렴한 와콤원이나 하나 붙여 보려고 찾아 보니 처음에는 단일 모델이었던 와콤원이 자가증식하여 세 가지 모델로 나뉘어져 있었다. 새로 나온 모델과 구형의 차이점을 확인하느라 약간 애는 먹었다. 

가장 큰 차이는 케이블 구성이 다르다는 것과 신제품은 터치입력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상세 스펙을 또 적어두고 그런 것은 아니라 정확하고 세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고 신형과 구형이 가격 차이가 있고, 구형이 예전 가격보다 적어도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저렴해진 상태라 구형을 구매해도 괜찮은지만 열심히 확인했다. 

연결이 쉽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 사용자가 사용중인 노트북 또는 데스크탑 또는 모바일 디바이스의 지원 사양을 일단 다 확인해야 하니 이게 쉬운 연결일까 싶기는 했다. 데스크탑에 연결하려면 데스크탑에 HDMI 하나와 입력용 USB 포트, 전원용 USB 포트가 있어야 하는데 USB 포트는 문제가 없었지만 HDMI 포트에는 이미 모니터를 사용중이라서 아주 잠깐 실성할 뻔 했지만, 정신줄을 부여잡고 열심히 해결 방법을 찾아 보았다. 데스크탑 그래픽 카드를 살펴 보니 HDMI와 구형 디스플레이 포트 외에 작은 사이즈의 DP포트가 하나 더 있었고 사무실 비품을 뒤져보니 DP to HDMI 케이블과 구형 디스플레이포트인 VGA to HDMI 케이블 두 가지가 나왔다. 

처음에는 미니 DP가 하나 남으니 DP 포트에 HDMI를 넣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전환 어댑터를 추가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퇴근해서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쯤 되서야 지금 HDMI 포트를 차지하고 있는 모니터놈을  VGA나 DP로 옮기면 남는 HDMI포트에 와콤원을 넣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케이블과의 싸움을 시작했는데 처음 시도했던 VGA to HDMI 케이블을 소용이 없었다. 일단 지금 설치된 그래픽 카드도 성능이 그나마 조금 나은 놈으로 변경한다고 한 것이었지만 전체적인 데스크탑 사양 상태가 좋지 않아 신품이 아니고 중고로 구매해서 끼워 넣은 것이라 그래픽 카드 상태가 안 좋은 것이었을 수도 있고,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케이블 상태가 안 좋은 것일 수도 있어서 일단 과감하게 포기를 하고 DP to HDMI 케이블로 시도해 보니 무사히 모니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주문한 구형 와콤원은 아침 일찍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케이블을 해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도착했으니 신나게 연결을 했고, 팀장님도 쉬시는 날이고 하니 시원하게 테스트도 할 겸 지난 주에 미처 시청하지 못했던 세작을 틀었다.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모르고 별다른 준비가 없었던 터라 바닥에 뉘여 놓아야 했는데, 오히려 이런 딴짓용 모니터로 사용할 수 있으니 더 좋았다. 

원래의 목적한 바도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었는데, 집에서는 그렇게 그림이 그리기 싫더니 사무실에서는 본업과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 딴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유쾌한 상황으로 느껴져서 그런지 매우 즐겁게 집중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태블릿이 고정된 상태에서 선을 그으려니 모든 선을 편하게 그을 수는 없어서 고민했는데 어쩌다 잘 못 누른 단축키 'R' 하나로 대지를 회전시킬 수 있어서 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태블릿을 사용할 때만 사용 가능한 단축키인지는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선 연습을 하면서 무의식중에 자꾸 아이패드에서 그림을 그릴 때처럼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려고 하고, 프로크리에이터를 사용할 때처럼 레이어를 손가락으로 밀어서 제거하려고 헛동작을 하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이래서 터치 입력이 가능한 제품이 새로 나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는데, 터치 입력이 가능한 태블릿을 사용한다고 어도비에서 제공하는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이 터치 입력을 받아주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바일용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모바일 디바이스라면  USB-C 포트 하나로 연결이 가능하다고 터치 입력이 가능한 신형 와콤원이 확실히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구형 데스크탑에 데스크탑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구형 와콤원도 꽤나 쓸 모는 있지 않나 싶었다. 게다가 가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신이 나서 기초 과제를 해치우고 있는데 지금은 또 다른 문제 상황에 봉착했다. 미친듯이 집중해서 라인 스케치를 하고 나니 지쳐서 채색 버전은 더 할 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패드로 다시 칠해보니, 일단은 굳이 데스크탑에 와콤원을 붙여서 작업할 때 보다 훨씬 편해서 당황했다. 그리고 손가락이 많이 아프다. 

새우튀김과 피자가 너무 곱고 귀엽게 그려져서 기분은 좋았는데 이제 슬슬 관절염 걱정할 중년이라 정형외과를 다녀야 할 판이라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지, 쉬어야 할 지 모를 상황이다. 일단 잠깐 쉬어 보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미처 채색을 다하지 못한 그림들이 아른거리고 마음이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미루기만 하던 그림을 못 그릴 상황이 되니 그리고 싶어진 이 아이러니를 어찌하면 좋을까 싶지만, 일단 구형 와콤원은 사기를 잘 했다. 그냥 처음에 샀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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