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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할까봐 찾아갈 수 없었던 광화문 교보문고 문구 보물섬 문보장

d0u0p 2023. 11. 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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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가 보물이라는 문보장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아주 오래 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입장과 동시에 정신 못 차리고 손에 뭐라도 쥐어 나오고야 말 것 같아 차마 갈 수 없었던 곳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 근처 나들이를 하고 좋은 경치 구경에 운동도 했겠다 맛있는 커피도 마셨겠다 쇼핑을 빼 놓고 귀가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마음에 구경만 해 보기로 결심은 하고 들어섰지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카드를 꺼내고 있었다.

전부터 카키모리 딥펜 펜촉을 하나 더 사려고 했었는데 펜촉 하나 구매하는데 배송료까지 내야 하는 것이 탐탁치 않아 마음 속 서랍장에 고이 넣어두고 말았고, 그 펜촉이 눈 앞에 보이니 하나 사들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집에 들고 돌아온 것은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문구점 L’Ecritoire의 황동 펜 홀더와 닙 셋트였다. 정말 진심으로 펜촉만 구입하려고 했으나, 펜 홀더와 셋트로만 판매중이라 하니 어쩔 수 없니 펜 홀더를 함께 구입하게 된 모양새였지만 펜 홀더는 그동안 정말 바라고 있던 섬세하고 아름다운 놈이라 7,8000원이 아깝지는 않았다.  L’Ecritoire의 온라인샵에서도 구매가 가능하고 배송까지 가능한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개별 배송비가 붙고나면 그 뭐 큰 차이가 나겠냐싶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펜촉과 펜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싶지는 않으니 유통비용이 더 붙은 가격이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온라인샵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또 마음에 쏙 드는 펜 스탠드가 있었다. 내년 여름 전 어느 날 스트레스가 한참 쌓여 있을 때 쯤에 해외 구매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셋트로 구성되어 있는 펜촉들 중 원래 마음에 들었던 펜촉은 Hiro Leonardt No41이었다. 순전히 펜촉의 형태만 보고 좋아했던 것이었는데 막상 써 보려고 하니 쉽지가 않았다. 연성촉들은 아직도 참 어렵다. 연습이 한참 더 필요하다.

제대로 시필하기 전에 찍어 놓았던 디테일한 사진을 보니 슬릿이 이미 저렇게 벌어져 있다. 윗 사선으로 올라갈 때 종이를 자꾸 긁는 느낌이 드는 것이 이때문일까? 애초에 불량인 펜촉을 들고 온 것 같기도 하다. 이 펜촉도 지금은 품절이라 따로 구매하기는 어렵다. 일단 옆으로 곱게 치워 둬야겠다. 

함께 구성되어 있는 펜촉들에 대한 안내가 따로 없어서 펜촉에 새겨진 이름을 읽어내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아직까지는 완전히 노안이라고 하 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원래 눈이 안좋기도 해서 작고 희미한 글씨들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펜촉 네 가지 중 뾰족하게 생긴 Gilber & Blanzy Poure No101은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세필이었다. 필기감도 부드럽기 그지없어서 펜촉을 몇 개 더 구매해 두고 싶었는데 빈티지 펜촉이라 벌크로 해외 구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베이나 다른 해외 경로로도 찾을 수는 있었는데 이 펜촉을 백 개 씩 사서 평생 쓸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순식간에 흥미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구매해 쟁여둘 건 아닌 것 같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아주 살살 소중하게 아껴 써 보기로 한다.

신나게 다꾸할 때에도 유용하겠다 싶기는 했는데 잉크에도 문제가 있다. 누들러 잉크 중 진한 검정을 구매했는데, 붓으로 물감을 올려 칠하니 번졌다. 잉크 구매할 때 뭔가 놓친 부분이 있나 싶고, 집에 굴러다니는 잉크 중 한 가지가 물에 번지지 않고 상태가 좋은데 하필 그 잉크에는 이름을 써 놓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알았다 싶으면 여전히 모르겠고, 잘 써진다 싶으면 다음엔 또 잘 안 써지고, 이렇게 정복하기가 쉽지 않으니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부여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아름다운 꼬리를 잔뜩 달아도 글자가 잘 읽히는 필기체를 꼭 써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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