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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퀀시 적립해서 레디백 받아 아트백으로 쓰는 게 죄는 아니잖아

d0u0p 2020. 6. 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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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라의 자기효능감을 기사에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까지 긴 이야기를 쓰게 될 줄도 몰랐다.

샤넬 까짓 거 통장 털면 살 수 있는데 통장 털어 샤넬 산다고 내 스타일에 어울리지도 않는 그것을 매일 들고 다니지도 않을 것이고 그 비싸고 무거운 가죽 가방은 작디 작아서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몽땅 넣을 수도 없으니 출퇴근길을 오가며 비싼 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아도 딱히 탐낼 이유가 없었다.

스타벅스의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 역시 주로 바캉스용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시큰둥했었다. 여름 더위에는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힘들고 병이 나는 허약체질이가 멋 모르고 여름 나들이에 나섰다가 자꾸 앓아눕는 바람에 공식 여름 휴가철에 휴가를 하나도 쓰지 않고 사무실 에어컨 바람 안에서 사는 사람이 바캉스용품이 무슨 소용이라고 탐을 냈겠나, 스타벅스도 동계 올림픽 이후로 가지 않겠다며 큰 소리 치다가 요즘은 못내 디카페인커피가 아쉬워 때때로 들르고 있었는데 하필 필요 충분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가방을 준다고 하니 동요했다.

이래 저래 철분 마그네슘 결핍 증상으로 시달리면서 커피를 끊기로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프리퀀시 이벤트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디카페인 커피가 있으니 적립하는데는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다행인 것은 이벤트 마감이 7월이니 아주 조금 신경써서 부지런 떨면 그동안 번잡하게 굴러다니던 드로잉 파우치와 색연필 파우치, 비아르쿠 아트그라프 세트까지 한꺼번에 모아 담을 수 있는 레디백을 받아 아트백으로 사용하기까지는 문제가 없을 넉넉한 기간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하루 하나, 둘 씩 스탬프를 소소하게 모으는 중에 버려진 300잔의 커피 기사에 연이은 다양한 관점의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불안이 시작되었다. 재고가 소진될 경우 음료 쿠폰으로 받게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고, 프리퀀시 적립을 완료하고도 레디백을 받는 일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애초에 프리퀀시 이벤트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정해진 종류의 음료를 세 잔 마셔야 하는데, 프라푸치노와 블렌디드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음료들이라 마셔본 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아무리 미션 음료라고 해도 마시고 싶지 않은 종류들이라 미션 음료를 해결하려면 리저브드 매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리저브 매장까지 일껏 찾아가는 수고도 필요하니 가방 교환 쿠폰을 얻는 길은 더 요원한 상태였다. 

음료 300잔과 맞바꾼 가방들은 어디로 갔을까, 겨우 네 잔을 적립하고 열의에 차있던 내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그나마 기한 안에 재고는 충분히 마련하겠다고 하니 언젠가 내 차례도 오겠지 싶어서 다시 여유로운 자세로 돌아 섰는데 조카들과 팀장님의 도움으로 미션음료를 해결하게 되면서 의외로 갑자기 쉽게 쿠폰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조카들에게 프라푸치노를 사 준 매장은 리저브 매장이라 리저브 음료를 마시면 미션음료를 하나 더 적립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났다. 프라푸치노를 두 잔 사고 엄마마마님 및 올케와 내 음료는 그냥 일반적으로 늘 마시던 음료를 선택했다. 확실히 열의가 없었던 순간이었다고 하기에는 집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다는 큰 조카를 달래서 온 가족을 대동하고 스타벅스까지 행차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니 열의가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 프라푸치노 두 잔만으로도 미션 음료라며 좋아하고 말았던 덤벙이였던 것이다. 이런 덤벙이 모드로도 가방을 받기는 받았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에 없던 기세로 (팀장님에게 매일 커피를 권하며) 프리퀀시 적립을 마치고 재고찾아 삼만리를 시작했다. 팀장님은 호기롭게 서여의도에 있는 모든 지점을 돌아 볼 기세였으나 점심을 먹고 우리에게 남은 여유 시간은 20분 남짓이었고, 하필이면 해가 쨍하고 떠서 더워지기 시작한 날이라 오래 걷기도 힘는 날이었다. 네 군데 정도 생각하고 출발을 했으나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처음 가려던 매장은 어느 새 일리 커피숍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름 외진 위치라 재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었는데 정말 너무 외진 곳이라 그랬는지 다른 매장으로 바뀌었던 것도 몰랐던 것이다. 두 번 째 매장을 돌아 나오고 나서는 더위에 지친데다가 점심시간도 끝나갈 무렵이라 사무실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재고는 충분할 것이라더니 가방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두 번 째 매장에서 친절하게 알려 주시기로는 물류가 와 봐야 아는 것이지만 들어오기는 하니까 되도록 오전에 와 보시라고 했다. 정말 오전이면 괜찮은 것일까, 다른 매장은 어떤 상황인지 오후 늦은 시간에 마실 삼아 두 군데를 더 다녀왔다. 한 군데에서는 재고가 많이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전에 문을 열면 바로 다 나가버리는 상황이라며 오픈 시간을 알려주셨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에게는 가방 받으려고 오픈 시간에 맞춰 출근할 열의도 기력도 없다. 

어차피 나는 못 할 일이다 싶어서 다시 여유가 생겼다. 진짜 언젠가 내 차례가 오겠지, 아무리 그래도 아침 아홉시 지나서도 재고가 남아 있을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내심 오픈 시간이 열 한시 쯤 되는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매장에 가면 재고가 있을까 없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울렛 매장에서 레디백을 찾는 손님들이 있기는 할까 싶기도 하고, 가방을 가져다 놓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유부리고 있었는데, 팀장님이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다급하게 전화를 하셨다. 출근 전에 외진 곳에 있는 매장에 들렀는데 재고가 있다고 하신다. 안그래도 전 날 그 매장에 가 볼까 했지만 다른 매장에서 다들 오전에 와야 한다고 했으니 오후에는 어딜 가도 어차피 없을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렸던 매장이었다. 이제는 앙카라 공원에 확진자 워킹 쓰루 검사소가 생겨서 북적댈지도 모르지만 앙카라 공원 매장은 사무실 빌딩들과 거리가 좀 멀어서 오전에는 다른 매장들보다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직접 가는 그 사이에 다른 손님들이 찾아 올 수 있으니 팀장님에게 쿠폰을 넘겨 드리고, 팀장님이 대신 받아 주셨다.

팀장님 만세! 설마 주말에 일찍 일어나야 할까 했던 고민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다이어리를 처음 받을 때에도 이렇게 서두르고 열심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필이면 음료 300잔 기사 덕에 더 힘을 낸 격이 되었다. 물류 받는 날 랜덤으로 들어온다는 가방은 고작 한 두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양이 조금 더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녹색 가방으로만 열 개는 넘지 않는 선에서 들어오는 듯 했다.

 

 

팀장님 덕으로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된 가방을 풀어 헤치고 드로잉용품들을 넣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사이즈였지만 도구가 많아 그런가 넉넉한 느낌은 아니었다. 

 

 

드로잉파우치는 결국 별도로 빼서 들고 다니고 수채화용품을 넣어줘야 할까 안 쪽에 벽을 좀 만들어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가방이 아주 잘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서 가방 앞 쪽 섹션에 무거운 물건을 채우면 들었을 때 앞쪽이 쳐진다. 손잡이가 무게 중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위치에 붙어 있어서일수도 있고, 전면부가 이렇게 두껍게 설계되었으면 늘어지지 않도록 별도로 뭔가 더 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벤트 상품이니 그냥 로고를 잘 박는 일이 최선이었을테니 그러려니 한다. 

이제 야외 스케치나갈 수 있겠다.
물론 도구들을 다 넣으면 무거울테니 들고다니기보다는 그냥 차량 보관용으로만 쓸 수도 있다. 간단한 스케치나 드로잉이나 하려는 나에게는 사나고처럼 바퀴달린 전문 도구용 하드 박스 캐리어보다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 뭐 거창한 작품 활동 하는 것도 아니고 취미생활이니까. 아트백으로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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