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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점심메뉴 : 남대문 시장 극과극 체험

d0u0p 2018. 5. 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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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다시 직딩이 되었고 남대문 시장 근처에서 근무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남대문 시장 근처에서 넉 달 간 근무하게 되었다. 

남대문 시장 근처의 사무실을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짐이 많아 첫 날은 택시로 가게 되었는데 택시기사님도 그런 빌딩이 남대문 근처에 있었냐며 의아해 하셨지만, 막상 서울역 근처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간판이 붙어 있었다. 


과연 남대문 시장 근처에서는 어떤 점심을 먹게 될까 궁금했다. 


갈치조림을 먹을 수 있는 걸까 기대했는데, 현실은 갈치정식 한 끼는 팔천원이라 비싸서 못먹는다는 아재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갈치는 구경도 못 하게 되어 억울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남대문 시장 옆에 일하러 갔는데 갈치를 못 먹었다 하소연하여 결국 엄마에게 갈치조림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근무하시던 분들이 남대문 시장 근처를 두루두루 도전해 보시고, 그 중 가격과 메뉴가 적당한 곳을 네 군데 골라 두었고, 그 네 군데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방문하고 있다고 해서 토달지 않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시장 근처라서 비싼 고급 점심은 찾기도 힘들 것이고, 매일 그런 비싼 고급 점심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6천원 근처에서 해결 가능한 점심이라니 그또한 궁금했고, 이미 그날의 메뉴는 정해져 있는 셈이라 매일 점심을 두고 메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명쾌해서 좋았다. 


그리하여 넉 달 간 먹은 대부분의 메뉴는, 돈가스와 순대국, 불고기비빔밥, 그리고 김가네였는데, 사실 라면과 김밥을 함께 먹으면 6,500원이 되 버리는 김가네가 가장 비싼 식당이었다. 

집집마다의 메뉴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시장 골목의 수산물가게 2층에 위치한 돈가스집
기본 돈가스 6,000원 / 한정식 가스 6,000원 / 김치볶음밥 6,000원 / 김치찌개 6,000원 
주로 이 네 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골라 먹는데, 한정식 가스는 돈가스가 반 정도만 나오고 제육볶음이 나와서 한 가지 메뉴를 많이 먹을 때 질려하는 나에게는 좋은 메뉴였다. 김치볶음밥은 밥이 푸짐한 편이다. 기본 찬이 그 때 그 때 달라지고, 도시락으로 구성되어 배달과 포장이 가능하다. 


2. 회현역 길가의 순대국집 
순대국 6,000원 / 순대라면 7,000원 / 육개장 순대국 7,000원 / 김치찜 8,000원
주로 순대국을 먹었고, 취향이 다른 셋이 늘 순대국 셋을 하나는 고기만 하나는 순대만 하나는 기본(순대+고기)으로 주문하여 아주머니에게 불편함을 드렸다. 새우젓 팍팍 넣고 먹으면 좋다. 순대와 겉절이는 먹을만 하다. 순대라면은 신기해서 주문해봤는데 라면과 콩나물이 추가된 메뉴지만 뭔가 그냥 섞은 느낌이었고, 육개장 순대국 역시 육개장도 순대국도 아닌 중간치의 맛이라 딱 한 번 먹고 말았고, 김치찜은 늘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그냥 순대국을 먹게 되는 그런 집이었다. 


3. 단암타워 지하 식당가 불고기 비빔밥  
불고기 비빔밥 6,000원 / 순두부 돌솥밥 7,000원 / 제육 돌솥밥 7,000원 / 동태탕 6,000원 
불고기 비빔밥이 가끔 먹기에는 달큰하게 먹을만 했고, 주로 순두부 돌솥밥을 먹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한 순두부 찌개도 좋고, 돌솥밥에 물을 부어 호로록 먹는 것도 좋았다. 반찬도 골고루 달라지는 편이다. 가끔 떡볶이 반찬이 나오면 보너스 받은 느낌이다. 원래 제육 두루치기를 먹을 수 있는 집이긴 하나, 점심에 두루치기는 번거롭기도 하고 6,000원이 넘어서는 가격이라 다른 분들은 불고기 비빔밥이나 동태탕을 먹는 편이었다. 대신 제육 돌솥밥의 제육이 두루치기와 비슷한 양념이라 맛있어서 몇 번 먹었다. 동태탕은 한 번 먹었는데, 근처 대구탕 맛집에서 대구탕을 맛 본 이후로는 먹지 않았다. 내 입맛에는 비린 맛이 강했다. 


4. 김가네 
볶음우동 6,500원 / 스팸도시락 5,500원 / 라면 3,500원 / 김밥 3,000원 

여기서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물론 볶음우동이다. 원래 라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주문했었는데 라볶이는 면 따로 양념 따로인 느낌이 강한데다가 양념의 단 맛이 더 세게 느껴져서 별로였는데 우동면은 면과 양념이 잘 어우러져서 너무 맛이 있었다. 다른 분들은 주로 스팸도시락을 드셨으나 너무 흔히 아는 맛이기도 하고, 김가네는 라면과 김밥과 볶음우동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다른 메뉴를 고를 여유가 없었다. 남대문 근처에 있는 매장인데 점심시간에 늘 만원이라 꼭 줄을 서게 된다. 입구가 특히나 더 좁아서 줄 서는 것도 힘들었다. 2인 좌석이 여유가 더 많아서 3인부터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새우튀김 우동과 돈까스카레 정도를 번외로 도전해 보았지만 볶음우동만한게 없었다. 


그리고 추가로 몇 군데 더, 열무보리비빔밥과 칼국수, 비빔냉면을 함께 주는 칼국수 골목과 모밀과 우동을 전문으로 하는 우모촌, 쌀면을 사용하는 국수집이 있다. 


단암타워 지하의 순두부 돌솥밥과 우모촌의 온모밀, 그리고 칼국수 골목의 메뉴


한 두번씩 가끔 메뉴 대체할 필요가 있을 때 들렀는데, 모두 6,000원 근처에서 식사가 가능했고, 
우모촌은 냉모밀이 맛있어 보였는데 날씨가 아직 쌀쌀할 때라 못 먹어 보고 남대문 시장 근무가 종료되서 아쉬웠다. 

칼국수 골목 역시 날씨 풀렸을 때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았는데 너무들 호객을 하시기도 하고, 좁고 정신사납고, 아직 한참 먹고 있는데도 다 먹었으니 자리 있다고 하시니 칼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보리밥과 국수까지는 괜찮았는데, 비빔냉면은 필시 참기름이 가짜일 법한 맛이었다. 집마다 맛이 다르겠으나 도통 블로그나 다른 매체에서 이 집이 바로 맛집이라고 한 그 집까지 들어가기까지가 너무 험하고, 북새통인지라 일단 빈 자리가 보여서 앉아 먹기 바빴고, 먹으면서도 일어나기 바빴다. 혹시라도 다음에 가게 된다면 칼국수만 먹을 것 같다. 


그리고 본사 복귀하는 마지막 날 극과극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중식당 고쓰부에 갔었다. 사실 직딩 점심으로 가장 만만한 메뉴가 중국집인데 위에 있는 메뉴 구성대로 먹다 보니 자장면을 넉 달 간 못 먹었다. 친구와 서울 테라스 근처에서 만나 저녁 먹으면서 사무실에서 그렇게 멀지 않아 한 번 쯤은 갈 수 있겠다 싶어 찜콩해 두었다가 마지막 날 들러 점심 세트로 깐풍복어 자장면 세트를 먹었다. 

달걀후라이를 올린 자장면과 깐풍복어 런치세트, 왕바지락 짬뽕, 닭고기 볶음면


전에 먹었던 왕바지락 짬뽕과 볶음면이 맛이 있어서 자장면 맛도 믿고 간 것이었는데, 오랜만에 먹은 메뉴치고는 감흥이 없는 맛이었다. 복어도 나중에 메뉴판 보고 알았다. 그냥 닭고기라고 생각하고 먹다 보니 정말 닭고기 같았는데 복어였다니, 메뉴 좀 자세히 보고 시켰어야 했다. 

 

자장면 세트는 13,000원이었고 짬뽕도 15,000원 런치 세트가 구성되어 있는데 사이드 메뉴가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같이 간 모두가 자장면이 먹고 싶은 상황이어서 짬뽕 메뉴는 거들떠도 안봤던 것 같다. 짬뽕은 왕바지락이 정말 실하고, 해캄도 잘 되어 있어서 기분이 좋았었다.


아, 가장 좋았던 집은 사실 단암타워 지하식당가에 있는 명동칼국수집이다. 여의도에 있는 명동칼국수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내는데도 6,000원이었다. 여의도는 가격이 올라서 지금은 10,000원 근처라고 했다. 면을 워낙 좋아해서 중간 중간에 많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덩치좋은 아재님들에게는 양이 부족할 수 있으니 참았다.

 

추가로 여의도와 남대문에서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은호식당에 간 적이 있다. 방치찜이 유명한 집이라 아빠 맛 뵈 드리려고 여의도 은호식당에서 방치찜을 포장해 와서 집에서 먹은 적이 있고 꼬리곰탕은 원래 흰 국물을 좋아하지 않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사장님께서 남대문으로 파견 나온 직원들 수고한다며 점심을 사 주시러 오신 적이 있는데, 워낙 맛집을 꿰고 계신데다가 맛있는 음식을 즐기시는 분이라 우리가 먼저 식당을 추천하기 전에 이미 예약하고 사무실에 올라 오셨었다. 메뉴도 골라 주시는 대로 꼬리토막을 먹었다. 



일반 꼬리곰탕은 꼬리 사이즈도 작고 가격에 비해 먹을 게 없다는 평이 많았는데 꼬리토막은 토막 사이즈가 일단 큰 편이었고 배부르게 고기를 뜯어 먹을 수 있었다. 남대문 시장점은 2층까지 자리가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잡아 살펴 보니 95% 이상은 아재들이었다. 이런 메뉴는 원래 이런 성비 구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인지, 식당의 분위기 탓인지 가늠하기 힘들었고, 저렴한 메뉴가 아니었던 터라 용돈 받아 힘들다며 불평하던 아재들 중 좋은 음식 먹으러 다니시는 분들도 이렇게 많은가 싶어 조금 놀랍기도 했다. 


문제는 꼬리토막 메뉴가 실하기는 하나 원래 많이 못 먹는 나에게는 과분한 양이어서 반 정도밖에 못 먹고 남길 수 밖에 없어서 아까웠다. 다음부터는 꼭 부디 작은 탕으로 적당히 알맞은 양의 식사를 하고 싶다. 


이제 여의도에서 먹고 있다. 여의도는 위의 메뉴 정도로 싸고 먹을만한 메뉴의 식당은 불가능하고, 비싸고 맛 없는 식당은 있을 망정, 맛이 없어도 싼 식당 찾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일단은 다 먹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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