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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화이트 라구 파스타가 맛있는 오르조 르브텀, 미원빌딩 새 식당

d0u0p 2023. 12. 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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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주 오래전부터 식물이 한가득 놓여 있던 커피숍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그 자리를 미슐랭 식당이라는 오스테리아 오르조가 맡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더랬다. 모르긴 몰라도 맛있는 집이겠다 싶어서 일단 기억해 두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예약을 해서 다녀왔다. 포털에서 예약이 되기는 하는데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에는 예약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한 번에 쉽게 턱 예약을 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예약을 완료하고 나서도 함께 하기로 한 일행의 일정 변경으로 다시 한 번 일정을 조정해야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원래 처음 예약한 날에도 직장인의 점심 시간은 비껴간 시간이었지만 다시 날짜를 정정할 때에도 직장인의 점심 시간 피크 타임에는 자리가 없어 결국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후에는 반차를 사용하기로 했으니 아홉시에 출근해서 한시까지 네 시간 근무를 채우고 나면 또 얼추 적당한 시간이라 괜찮았다. 

트러플이 들어간 머쉬룸 라떼는 다른 일반적인 스프처럼 끈끈한 느낌이 아니라 이름처럼 라떼 같은 제형이었는데, 걸쭉한 스프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입 맛이 돋궈지기는 커녕 헛배가 불러 더부룩한 타입인 내게는 오히려 괜찮았다. 

시그니처라는 화이트 라구 파스타와 홍새우 파스타도 나무랄데 없이 맛있어서 입이 즐겁기는 했다. 다만 탄수화물과 약간의 단백질 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느낌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웠고, 양도 섭섭해서 화이트 라구 파스타를 한 접시 더 주문하고 구운 브로콜리를 추가했다. 

네 가지 메뉴가 모두 스페셜한 고유의 맛을 내고 있지만 또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칼칼하고 얼큰하고 뜨끈한 식사를 선호하는 내 입맛에는 밋밋하기 그지 없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이렇게 부드러운 맛을 내야 할 일인가 싶었지만 유일한 채소 요리인 것만으로 만족하며 먹어야 했다. 

아예 브런치를 먹겠다는 작정으로 메뉴를 선택하면 오히려 나을 수는 있을 것 같고, 이렇게 어영부영 파스타 파스타를 주문하면 곁틀여 먹을 뭔가 색다른 메뉴를 구성해 넣기가 약간 곤란했다. 이미 고칼로리 탄수화물이 한가득 접시에 놓여 있는데 피쉬앤 칩스나 프렌치 프라이즈를 차마 사이드로 주문할 수 없었다. 당과 아랫배가 걱정인 중노년층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식당일 수는 있겠다. 

과하게 먹어도 한창 뽈뽈거리고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을 가져 섭취한 열량이 체내에 남아나지 않는 젊은 자들에게는 충분히 가볍게 한 끼 가능한 식당일 수 있겠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다양한 구성으로 먹기가 부담스럽기는 한데 그나마 디너가 가능한 시간대에 찾아가 으깬 감자가 포함된 문어 요리와 파스타 정도의 조합으로 한 번 도전해 볼만은 할 것 같다. 브런치 중에서는 에그 베네딕트나 리코타 치즈와 포카치아 정도가 궁금하기는 한데 점심시간에 일단 예약이 언제 또 가능하겠나 싶어서 일단 점심 식당 목록에서는 저 멀리 뒷 쪽에 미뤄 놓기로 한다. 

오랜만에 꺼내 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사진찍는 과정이 번잡스럽긴 했지만 흡족스럽다. 반면에 오르조 르브텀이라고 적힌 상호명은 왠지 여러 나라의 다양한 메뉴가 혼재되어 있는 식당의 정체성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굳이 불어로 표기된 상호명을 영어 발음으로 적어 놓은 것이라 마음이 불편했다. 르 보 땅, 르 보 떵, 어느 쪽이든 한글 표기가 어색해서였을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심지어 orzo는 이탈리아어여가지고 뭐 그냥 상호명 그 존재 자체부터 혼돈의 카오스 그 잡채인지라 불어를 영어식으로 표기를 한 것도 뭐 꼭 이상하게 여길 것도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라구 파스타는 정말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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