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ING/FAMILY

가족 극기 여행 2, 깨끗하고 한적하지만 낯설었던 엄마마마님의 고향 고흥 거금도

d0u0p 2023. 7.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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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고흥까지도 두 시간 반은 차를 몰아 가야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따로 숙소를 잡아 푹 쉬었던 젊은 가족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마산에서는 흔히 보이는 맥도날드 드라이브 쓰루에 들러 맥모닝을 먹기로 했다. 

이른 시간에 맥도널드에 앉아 맥모닝을 먹어 보는 일 조차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라 피곤하긴 했어도 흥미로웠다. 저녁에 숙소 쪽으로 가다가 맥도날드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와 또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도 드라이브 쓰루가 있어서 신기해 하며 초등학생 조카를 위해 아침에는 맥도날드를 가보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외삼촌 댁으로 다시 나오는 길에 찾은 맥도날드는 전 날 봐 두었던 맥도날드가 아닌 다른 지점이어서 잠깐 당황했다. 그렇다고 전 날 봐 두었던 다른 지점하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적당히 요기를 하고 다시 외삼촌 댁에서 가족들 모두 잠깐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남해 고속도로를 따라 달렸다. 

두 시간 정도 달려 말로만 듣던 고흥에 들어서니 너무 기뻤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고흥이 상당히 넓었다. 돌아와서 엄마마마님과 사냥개들을 보다가 주인공 둘이 시골에 숨어 사는 장면을 보자마자 너무 고흥 같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말 고흥이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더니 고흥이 잘 보였다. 고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일단 숯불 생선 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고흥 전통 시장에 들러 가볍게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흥 전통 시장 전용 주차장은 규모가 작았고, 이미 차가 한가득이라 차는 건너편에 있는 공영 주차장을 이용했다. 장이 열리는 날은 아니라 그런지 시장이 조용하기는 했는데, 숯불 생선을 부지런히 굽고들 계셨고 그 생선 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식당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숯불 생선 구이를 판매하니까 다른 수산물 시장들처럼 숯불 구이를 주문해서 어딘가 식당에서 밥을 차려 먹는다거나, 숯불 생선 구이를 하는데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조일 것이라고 상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숯불에 구운 생선을 판매하는 점포는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대체로 포장 판매만 가능한 곳이었고, 심지어는 진열장에 생선 구이가 있었는데 안판다고 하시는 분도 계셔서 또 의외였다. 애매한 분위기에 당황해서 다른 상인에게 여쭤보니 생선 구이 먹는 식당은 반대편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물 안에 장터가 또 있는데 그 쪽에 밥 먹는 식당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알려 주신대로 찾아가 보니 소소하게 좌판들이 있었는데 단번에 식당을 찾아 볼 수는 없어서 다시 여쭤보니 더 들어가면 식당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그래서 찾아 들어간 곳이 고흥 전통 시장에서 유일하게 생선 구이 백반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심지어 숯불이 아니고 가스불에 구워주시는 생선이라 또 다시 당황해야만 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군에서까지 뭘 열심히 하셨다고 어디에선가 듣고 읽고 그랬던 것 같았는데, 아직 노력은 한참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관광객이 또 그만큼 많지 않아서 식당이 여러 개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으려나 모르겠다. 딱 한 군데 있는 식당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 앉아 생선구이를 먹었고, 반건조 생선이라 약간 짭조름했지만 그래도 엄마마마님을 비롯한 이모들 모두 섬마을에서 나고 자라신 분들이라 생선 구이는 맛있게 잘 드셨다. 같이 따라간 초등학생 조카도 잘 먹어 다행이었다.

게다가 정말 신기했던 전라도식 열무김치도 맛 볼 수 있었는데,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초록 열무김치였다. 엄마마마님은 매운 것도 싫어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열무 김치는 늘 빨갛게 담궈 주셨는데, 그냥 이렇게 담궈서 같이 드셔도 되는데 굳이 왜 그간 빨갛게만 담그셨는지 모르겠다. 매운 맛만 없을 뿐이지 똑같은 열무 김치 맛이었다. 숯불 생선은 올라가는 길에 다시 들러 구매하기로 하고 일단 거금도를 향해 달려갔다. 고흥 전통시장 숯불구이 생선은 인터넷에서 찾아서 주문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은 세트로 포장이 되는 상품들이라 원하는 생선만 선택해서 주문하기가 어려웠는데 직접 상태를 보고 구매할 수 있어 좋았다. 도미가 튼실해서 살이 많아 보이지만 반건조한 도미살은 퍽퍽해서 맛이 없고, 오히려 조기가 식감이 좋아서 특별히 조기만 사들고 오고 싶었는데 엄마마마님과 함께 가니 상태를 보시더니 암놈 숫놈까지 구분하셔서 통통한 암놈으로 골라 들고 와서 생각날 때마다 집에서 잘 먹고 있다. 
과감하게 슬리퍼를 신고 여행을 오신 초등 어린이를 위해 전통 시장 입구에서 세일중이 요즘 스타일의 크록스를 하나 소소하게 구매하고 나서 거금도로 다시 출발했다. 녹동항에서 오래전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았다던 소록도까지 건너가는 다리가 생긴지도 한참 전 일이고, 다시 소록도에서 거금도로 건너가는 다리가 생긴지도 한참 전 일인데 태어나 처음으로 그 다리를 이제야 차로 건넜다. 말로만 전해 듣고 방송에서만 보던 소록도를 지나 거금도에 도착했다. 

아주 희미한 기억 속에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거금도를 갔던 적이 있긴 한데 아빠와 함께 배 위에서 클레멘타인을 불렀더랬다. 아마도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이라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노래를 불렀던 일 말고도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 것 같은데 그 나머지 부분은 거의 기억이 없다. 지금도 멀미는 꽤 여전하지만, 더 어릴 때는 지금보다 더 심해서 승용차만 타도 내려서 토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녹동항까지는 어떻게 갔는지 전혀 모르겠다. 잤나? 자꾸 토하니까 재우셨을 수는 있겠다. 엄마마마님께 확인해 보니 그 때는 녹동항에서 거금도 명천항까지 배가 있었는게 그 배에서 내릴 때 명천 앞 바다에 풍덩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뱃머리 앞에서 노래했던 기억만 강하게 남아있나 보다. 빠진 기억은 또 없다니 희한하다. 

거금대교를 건너니 바로 거금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간이 휴게소가 있어서 잠시 차를 세우고 다들 모여 기념 사진을 찍고 그 오래 전 레슬링의 전설 김 일 선수가 처음으로 거금도에 전기를 끌어와 불을 켜 준 사람이라는 기념비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마마님과 이모들의 고향 마을을 찾아 나섰다.

문제는 이 분들이 모두 지명을 전라도 방언으로 발음하셔서 지금까지 맹촌이라 부르던 지명이 명천이었고, 오촌이라 부르는 곳은 오천이었고, 홍룡이라고 부르던 곳은 홍연이었어서 운전하는 동생들이 힘들어했다.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지도에 있는 지명과 연결해야 했다. 다행히 섬 외곽을 따라 돌던 중에 아직 오천에 살고 계시는 엄마마마님의 사촌이신 다른 이모님과 연락이 닿아 잠깐 오천항을 구경하고 다른 어르신들 댁을 찾아나설 수 있었다. 상당히 외진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변 도로는 새로 정비되어 있어서 바다 바람 맞으며 드라이브하기에는 최적이었고, 여름 피서객을 맞이할 요량으로 단장을 하시는지 길가 화단도 한창 정비중이라 너무 깨끗하고 좋았다. 

오천 언덕에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 댁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다른 어르신댁 길을 물어 찾아가 마당 앞에 핀 감꽃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너무 강한 햇빛에 눈 두덩이와 이마가 가렵기 시작했지만 어르신들 회포 푸시는 동안 꾸욱 참았다. 커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감 꽃을 태어나 처음 본 서울 촌놈은 이런 산골짜기 촌에서 살던 엄마마마님이 무슨 용기로 집을 떠나 서울로 오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엄마마마님과 이모들의 동네 어르신댁 방문이 끝나고 드디어 그 날의 숙소였던 펜션으로 갈 수 있다고 하셨을 때, 섬 안에 이미 몇 개 안되는 카페 중 그 날이 평일이라 문 닫은 카페를 제외하고 영업중이신 거의 유일무이한 카페인 신촌브루에 잠깐 들러 커피를 사들고 가기로 했다.  

펜션에서는 멀지 않아 다행이었는데 의외의 장소에 있는 의외의 모습으로 열려 있는 카페가 너무 반가웠다. 향긋하고 달콤한 크림이 올라간 아인슈페너 한 잔과 초등학생이지만 자꾸 카페인 음료를 호시탐탐 노리는 조카가 호기롭게 밀크티를 선택했다가 주인 어르신이 단호하게 카페인이 없는 음료를 주문하라 하셔서 고흥 유자가 들어 있는 유자애플 티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소소하게 사진을 찍었는데, 아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느낌을 가진 실내외가 생각만큼 충분히 아름답게 사진으로 담기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시간이 넉넉하면 잠시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즐겼을텐데 너무 아쉽다. 

와플 기계에 따끈하게 구운 깨찰이도 서비스로 쥐어 주셨는데 너무 맛있었다. 단 맛에 길들여진 조카에게 유자애플티는 너무 심심했는지 반 이상 남겼길래 맛을 보았는데 너무 상큼하고 달지 않은 건강한 맛이라 내게는 너무 훌륭한 음료였다. 집 앞 카페에 있는 메뉴라면 자주 마실 것 같은데 그또한 아쉽다. 신촌브루인데 서울 신촌에는 없고 거금도까지 가야 있으니 안타깝다. 

음료를 사들고 나서 드디어 도착한 펜션 앞 뜰에는 수국이 한창이었고, 뒷 뜰에는 인동초 꽃이 한창이었다. 인동초가 몸에 좋다며 이모가 한참을 말씀하셔서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결국 인동초 꽃 차를 주문해서 열심히 마시고 있다. 온갖 염증에 좋다고 하니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매일 꾸준이 마셔 보고 있다. 

수국 구경을 하는 도중에 수국을 관리하시던 아주머니는 꽃이 보기에는 좋아도 물 줘야지, 풀 뽑아야지, 할 일이 너무 많고 손이 너무 많이 간다며 한참 동안 넋두리를 늘어 놓으셨다. 이렇게나 예쁘게 키워 놓으셨는데 뿌듯하지 않으시려나, 뿌듯함보다는 고단함이 많이 넘치셨나 보다. 

펜션에서 잠깐 한 숨 돌리고 나서 오랜만에 먼 걸음 왔으니 냉장고를 탈탈 털어서 저녁을 차려 줄테니 꼭 집에서 저녁을 먹으라고 강권하시던 이모님 댁으로 다시 차를 몰아 갔고, 엄마마마님과 이모님들은 그 댁에서 주무시기로 하고 젊은이들은 다시 차를 돌려 펜션으로 돌아왔다. 그 날 저녁에 먹은 서대는 지금까지 먹어 본 서대는 진짜 서대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너무 맛이 있었다. 점심에 먹었던 반건조 서대와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풍미가 있었다.

거금대교 앞에서 오천을 지나갔다가 다시 오천으로 돌아 갔다가 명천을 갔다가 다시 산골로 들어 갔다가 다시 오천으로 왔다가 다시 거금대교 앞 펜션으로 왔다가 다시 오천을 갔다가 다시 펜션으로 돌아 오는데, 복잡할 것 하나 없는 해안 도로를 따라 왔다 갔다 했더니 길이 너무나 익숙해 졌고 낯 설었던 거금도가 이제 우리 동네 같았다. 

펜션으로 돌아 오는 길에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가서 해 지기 전에 펜 션 앞에서 노을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잠시 편의점에 들러 필요한 물과 간식을 사들고 내달렸더니 박명시가 끝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종일 하늘이 흐리기만 하다가 이런 하늘을 만나니 더 없이 반가웠다. 

반가움도 잠시 뿐이고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다음 날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전혀 모르는 채 곤히 잠들었다.

엄마마마님과 이모님들을 다시 모시러 가기로 약속 한 시간은 일곱시 반이었다. 

그런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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