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여의도 직장인 점심 : 천국같은 헬 게이트가 열렸다, 더 현대 서울

d0u0p 2021. 3. 2. 08:10
728x90
반응형

사람이 얼마나 몰릴까 상상하기 어려워서 일단 가 보기는 하기로 결심을 하고, 하필이면 회식을 하는 날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에 회식도 할 겸 점심을 후딱 먹고 오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바깥 밥을 먹기로 결심을 하고 나갔다.

 하늘이 어찌나 파랗고 맑은 날인지 강한 빨강 기둥이 대조적으로 더 강해 보이는 날이었다. 회식을 하기로 했으니 일단 각종 고기 맛집들이 콜라보했다는 '수티'를 목표로 하고 출발하면서 바로 현대 식품관 앱에서 웨이팅을 신청했다. 대기 번호는 25번을 받았고, 14팀이 이미 대기중이라는 안내를 확인하고 포스팅용으로 이미지를 캡쳐하고 앱을 닫았는데, 이미 대기중인 팀이 줄어 드는 속도가 궁금해서 다시 앱을 열어 확인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었다. 

 앱 어디에서도 '예약 확인'이라던가, '나의 예약'이라던가, '웨이팅내역 확인'이라는 메뉴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대기 신청을 하고 나서 바로 보이는 페이지에서는 확인이 가능했는데 닫고 나서 다시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신청이 제대로 됬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설마 설마 하며 같은 매장에 웨이팅을 신청하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반복하니 그제서야 이미 웨이팅을 신청한 내역이 있다고 알려 주었고, 그리고 나서 상세 내용을 확인할 수는 있었는데 신청한 직후의 대기 상황과 현재의 대기 상황을 비교해서 확인할 방법은 또 없었다. 

매장 앞에 가면 확인할 수 있겠지 싶어서 일단 매장으로 바로 갔는데, 이미 인산인해를 이룬 식당가는 정신없이 복잡했고, 매장 앞에는 줄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혼잡한 상황이었다. 매장 앞에 웨이팅을 신청하는 시스템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대기 현황도 확인할 수 있겠다 싶어 들여다 보니, 좌측 하단에 작게 대기 번호와 함께 일부 비공개처리된 전화 번호가 적힌 목록이 있었는데, 앞으로 몇 팀 뒤에 내 번호가 있는지, 지금 현재 총 몇 팀이 대기 중인지, 예상 대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내 번호가 있기는 있는지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게 스크롤이 막혀 있었고, 제일 위부터 세 번 째 까지만 대기 번호와 휴대폰 번호 일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13번이 제일 상단에 있었는데, 매장 테이블을 보니 10석이 될까 말까해서 13번과 25번 사이에 몇 명이 있는지 정도는 확인을 해야 한 시간이 걸릴지 삼십분이 걸릴지 어림잡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예측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심지어 '수티'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메뉴를 팔고 있었다. 

오전에 받은 현대 백화점의 식당가 안내 설명에는 수티는 청담동과 삼각지 신당동의 유명한 고깃집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코리안 비비큐 브랜드라고 되어 있었고 몽탄의 우대 갈비 사진이 걸려 있었으니 당연히 몽탄의 우대 갈비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장에 가서 보니 자리에 앉아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비프 샌드위치와 로티서리 치킨 두 종류 뿐이었고, 금돼지 식당과 뜨락, 몽탄의 고기들은 포장되어 있는 제품을 별도로 구매하게 되어 있는 것 같긴 했는데 그 중 몽탄의 우대갈비는 심지어 품절이었다.

순서에 밀릴까봐 급하게 웨이팅 신청하느라 메뉴까지는 미처 확인을 못했던 것이다. 큰 맘 먹고 맛있는 고기 먹으려고 했는데 비프 샌드위치와 로티서리 치킨이라니, 게다가 25번은 언제 자리에 앉을 지 모르는 상황이라 굳이 '수티'에서 점심을 먹을 이유가 없어졌다.

어차피 웨이팅은 한참 남아 있으니 혹시 다른 식당을 찾아 볼까 싶어 일단 식당가를 크게 둘러 보기로 했는데, 자리를 뜨기 전에 확실이 웨이팅 신청은 되었는지 확인은 해야 했다. 이미 앱에서도 다시 웨이팅을 넣으니 이미 신청이 되어 있다는 안내를 받았으니 제대로 웨이팅 신청이 된 상태라면 매장 앞에 있는 시스템에서도 같은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제대로 만든 시스템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다시 한 번 매장 앞에 있는 시스템에 전화번호를 넣어 보았는데, 이게 왠 걸, 새로 웨이팅 신청이 되었다. 

게다가 새로 웨이팅 신청이 된 내용은 바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앱에서는 아무런 메시지를 받지 못했는데, 이게 앱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이 없는 것인지, 보냈는데 못 받은 것인지, 앱에서 신청한 웨이팅 내역 자체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매장 앞에서 대기중이신 직원 분께 확인하니 순서가 되면 알람이 갈 거라고 하시며, 앱에서는 어떻게 되는지 역시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대기 번호는 11시 40분 쯤에 넣은 25번이 맞는지, 뒤늦게 매장 앞에서 넣은 40번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식당가를 헤매기 시작했다. 

 

 악마의 잼인 누텔라를 사용한 악마의 음식일 법한 와플을 파는 푸드 트럭도 있었고, 맵부심 부릴 수 있는 매운 맛 전문 안주류를 파는 매장도 있었고, 현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별 맛 없다고 생각하는) 한솔 냉면이 있는 푸드코트도 있었고, 여러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맛집들이 즐비했지만 그 어느 곳 하나 앉을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 푸드 코트와 식당가 중간 중간에 노트북을 활짝 열어 놓고 네 자리 여덟 자리씩 앉아서 일을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고, 아침부터 나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인지 관계자라서 어쩔 수 없이 혼잡해서 밥 한 끼 먹을 수 없는 이 난장판에서 일을 하시려고 부득불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것인지 아무리 봐도 식사를 위해 앉아 계신 것 같지는 않은 분들이 눈에 띄었다. 십중 팔구는 예약 및 웨이팅 시스템 때문에 대기중일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한 바퀴 돌다 보니 줄이며 자리며 쉽지 않아 보였는데 판교보다 조금 더 넓은가 싶은 느낌이 들 때 쯤 멀찌감치 라그릴리아 간판이 보였다. SPC계열 프랜차이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달군 돌 위에 올린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면 회식으로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팀장님을 꼬드겨 모시고 갔다. 라그릴리와 함께 파리 크라상과 역시 SPC에서 만들었을 법한 아시아 요리 브랜드인 strEAT가 나란히 있었고, 더더군다나 안 쪽으로 마련되어 있는 좌석이 이 넓은 백화점 식당가에서 제일 여유가 있어 보이는 상황이었고, 생각과 다른 엉뚱한 메뉴가 있는 수티는 언제 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이니 일단 대기 신청을 했다. 

 대기 신청을 하고 메뉴를 자세히 보니, 라그릴리아에서 찾던 메뉴가 보이지 않았다. 라그릴리아의 간판과 함께 대표 이미지로 그릴드 스톤인지 스톤 그릴드인지 분명히 바닥에 돌이 깔려 있는 스테이크 이미지를 쓰고 있어서 당연히 그 메뉴(찾아 보니, 비프 온더 스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당했다. 그 메뉴는 없었고, 도시락이나 포장 메뉴용 스테이크 메뉴와 함께 적당히 애매한 중간 버전의 스테이크 메뉴가 있었다. 돌판이 없는 어중간한 메뉴인지 이름만 바뀐 것인지 또 알 수 없으니 다른 메뉴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착석한 이후에는 파리크라상이나 라그릴리아, 스트리트 세 군데 중 선택해서 이용할 수 있어서 굳이 라그릴리아에서 모든 메뉴를 주문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각자 취향에 맞게 메뉴를 선택하기로 했지만, 라그릴리아는 무슨 일인지 주문하는 줄이 길었는데 맨 앞에서 주문 줄이 줄어들지 않는 상태라 답답해 하고 있는 와중에 팀장님은 이미 스트리트에서 팀장님 스타일의 쌀국수 주문을 완료하신 상태가 되었고, 이미 회식의 본질과는 요원한 식사가 되었으니 자포자기하여 미지의 스테이크 따위는 버리고 구미 확 당기는 마라탕을 먹어 보기로 했다. 

 그래도 회식이라며 우겨서 달지 않은 티 레모네이드도 추가하고, 꽃빵 멘보샤도 추가했더니 오픈 기념이라 2만원 이상 구매하면 만두를 서비스로 준다길래 다 못 먹으면 포장해갈 셈으로 일단 받았다. 스트리트는 면 요리도 모두 면과 국물을 별도로 잘 포장해준다고 대문짝만하게 써있어서 남은 음식 포장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연유까지 뿌려진 꽃빵 멘보샤는 기본적으로 고소하고 짭쪼름한 멘보샤 맛인데다가 빵도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에 달콤하기까지 해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마라탕 역시 약간 짠 느낌은 있었지만 왕징에서 먹었던 애정마라탕이 생각날 정도로 꽤 괜찮은 맛이었다. 팀장님이 마라탕은 안 좋아하시는 바람에 딱 한 번 시도해 보았던 그 마라탕 집이 실망스러워서 다시는 다른 마라탕 집을 찾아 나설 수 없어 아쉬웠었는데 제대로 된 회식은 못 했어도 소 뒷 걸음에 쥐 잡는 격으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며 각자 원하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올 수는 있었다.   

 또 설마 설마 하며 5층에 있는 블루보틀까지 확인해 보기로 했는데, 우리 동네에 문 열 때까지 참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는지 여전히 줄이 길었고, 이미 식당가에서 한바탕 헤매고 다닌 상태라 아무리 백화점 안에 숲을 가져다 놓았다 해도 기운 빠지고 답답한 상태라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으니 커피 한 잔 마시려고 그 줄을 서는 노력을 할 에너지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오후에 시원하게 휴가를 쓰고 온종일 백화점 구경을 할 작정이었는데, 구경은 무슨 구경, 백화점 안에서 한 발자국도 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편하게 마스크 벗고 쉴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앉을 자리도 없었으니 결국 팀장님에게 뒷덜미를 잡혀 사무실로 질질 끌려가 남은 반나절을 사무실에서 쉬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한 바탕 점심 시간 난리통을 겪고 돌아왔더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병든 닭 졸듯이 졸며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텅텅 비어서 한가했던 여의도가 새로 오픈한 백화점 때문에 연일 붐비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보인다. 언제쯤이면 백화점이 덜 붐빌까, 3년이면 되려나, 포장 가능한 메뉴 찾아서 조용하고 편하게 사무실에서 먹어야지, 피곤해서 다시는 찾아 가서 줄 서서 밥 먹는 일은 못 하겠다.

사람 많고, 자리도 없어서 먹지도 못할 음식으로 유혹하는 헬 게이트가 열렸을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