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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보기 전 날 어마마마님 생파, 남산 나들이

d0u0p 2018. 11. 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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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의 추천으로 추진되었던 어마마마님의 거창한 생파를 남산타워, 아니 N서울타워 레스토랑 한쿡에서 하게 되었다. 시험 전날이었지만 어차피 몇 년을 해야하는 공부, 시험 하루 전 날 한 페이지 더 본다고 시험을 더 잘 보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그래도 불안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실제로 시험지를 받아 보고 나니 하루 전이 아니라 일주일은 펑펑 놀았어도 결과는 같을 것이었는데 괜한 걱정에 마음만 불편해 했던 과거의 나를 책망하게 되었다. 그래도 모처럼 가족 외식이니까 큰 맘 먹고 반나절 털어내고 일찍 나선 것은 잘 했다. 그 반나절 책을 더 펴고 있었더라도 찜찜하기만 한 채로 풀지 못한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하는 문제로 똑같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안개가 정말 너무나 짙었던 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는 엄청난 거사를 치른 이후로 남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IMF이후, 친구들은 모두 응답하라 1994의 다정이들이 되었고, 그 다정이들 중 몇은 남산 꼭대기 레스토랑에 앉아서 수없이 많은 빌딩 불빛들을 내려다 보며 왜 우리가 갈 빌딩은 없는 거냐며 청승을 떨었다던 그 남산타워 레스토랑은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 서울 시내를 보여주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 같기는 하다. 

서울 시내에 있던 고가가 거의 없어졌고 남산 터널 앞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 승강장 위치를 찾으려고 맵을 켰다가 눈 앞에 바로 케이블카 승강장이 보여서 스마트폰은 도로 집어 넣었다. 회현역과 명동역 사이 남산 터널길이었는데 명동쪽 길보다 덜 가파르고 가까운 느낌이었고, 그 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이어져 있는 경사 엘리베이터 오르미 승강기였다. 

승강기 왼쪽으로 계단길도 있어서 원하는 길로 가면 되지만, 경사가 꽤 가파른 곳이기도 하고, 체험삼아 새로 생긴 승강기에 냉큼 올라탔다. 승강장까지 정말 쉽고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올케가 미리 예약한 티켓은 한정 할인 행사 티켓 같은 것이었는데, 케이블카 왕복권과 서울 타워 전망대에 위치한 레스토랑 한쿡의 식사권이 묶인 패키지였다. 한쿡은 전망대 안쪽인지 윗쪽인지에 위치한 식당이라 전망대 입장 역시 포함된 개념의 티켓이었고, 사람이 많으면 보통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꽤 기다려야 하는데 식사권인지라 대기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난데없이 반차를 내고 산으로 먼저 도착해서 잠시 고민했다. 케이블카도 그냥 타고 올라가서 산 위에서 기다릴까, 밑에서 기다려서 같이 탈까, 케이블카 뭐 한 두번 타는 것도 아니고 크게 의미도 없어서 그냥 올라가서 기다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까 물어보니 승강장에서 기다리라고 하셔서 별 수 없이 잠시 기다렸다. 승강장에서 보이는 타워쪽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엄마마마님을 잠시 기다렸다가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보니, 모든 것이 예전과 사뭇 달랐다. 봉수대인지 봉화대인지 기억에 없는 관람 포인트가 있어서 올라가 보니 주렁주렁 매달린 자물쇠들과 함께 멀리 파랗고 누런 하늘이 보였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파랗기만 하더니, 탁 트여서 기분이 좋았다가 나즈막히 내려앉은 누런 먼지에 다시 답답해지고, 난간에 주렁 주렁 매달아 놓은 자물쇠들을 보니 또 답답해 졌다.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은 백 번 이해할 수는 있는데, 창의, 참신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베끼기 행위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세로 버전 파노라마는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까

북쪽 서울을 바라보다 봉화대를 내려왔고, 저녁 먹기로 예약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미리 찾아 보기로는 스타벅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마음 급한 엄마마마님과 남동님은 전망대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가까운 투섬플레이스에 앉으셨고, 한동안은 강남쪽을 바라보며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무슨 커피를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 건물이 뭐더라, 이 동네가 어느 동네더라, 그 빌딩은 어디에 있냐, 보이냐 안보이냐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막상 자리에 앉으면 기둥이 가로막고 있어서 시야가 좋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시간 보내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한참 수다를 떠는 도중에 해질 무렵이 되어 창밖으로 노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바깥 풍경이 궁금해졌다. 스마트폰 하나 달랑 들고 엄마마마님과 남동님을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소돔과 고모라, 먼지가 가득한 대기 덕에 서울은 더욱 더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평일 해질 무렵 그곳에는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서울 하늘이 아름다운 노을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갔는데 날이 흐리고 갑자기 해가 뚝 떨어져 순식간에 박명시가 되 버리는 저녁 하늘만큼 실망스러운 게 없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도 태양이 더 둥그렇게 보일까, 구름을 벗어 났을까, 더 커 보일까 궁금했었는데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 궁금증을 이겼다. 한참 앉아 있다보니 어느덧 난방이 꺼져 있었고 약간 한기가 돌았는데 나갔다 오니 조금 더 추운 느낌이었다. 

조카들과 올케를 기다렸다가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관람이 가능한 층으로 올라가니 식당은 다시 두 개층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는 약간은 복잡한 위치에 있었다. 뷔페인데 메인 메뉴가 포함되어 있어서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메인메뉴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어른이 넷이었는데 메인메뉴는 마침 네 종류라 골고루 주문했다. 

음식이 더할나위 없이 훌륭했으면 좋았겠지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애매한 느낌이었다. 메인은 다 괜찮았고 특별히 뭐가 맛있네 맛없네할 정도는 아니었다. 메로는 메로고 연어는 연어고 갈비는 갈비였다. 식지 않게 나온 불고기도 괜찮았고, 뷔페는 종류가 많기 보다는 정갈하게 필요한 메뉴만 갖춰져 있는 정도였다. 어딜 가든 한식 뷔페는 뭔가 훨씬 더 배가 불러지는 느낌이 있다. 원래 평소 식사할 때는 밥 한 공기에 반찬 몇 가지이면 되는데 한식 뷔페에 가면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어보게 되고 그러고 나면 평소 밥 한 공기 먹는 것보다 다섯배 정도씩은 드시지 않던가? 국수도 한 그릇 먹고 죽도 한 그릇 먹고 밥도 한 그릇 먹고 파스타도 한 그릇 먹으면 이미 네 끼분량인 것을 한꺼번에 먹고 있다는 느낌에 버거울 때가 있다. 엄마마님의 뷔페 메뉴 선호도 1순위는 호박죽인데 많이 달큰한 편이어서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내 1순위 메뉴는 잔치국수라서 꼭 챙겨 먹는데 옆에 있던 외국인들에게는 국수와 고명, 국물을 직접 담아서 한 그릇을 만들어 먹는 일이 생소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고명만 각각 따로 놓여져 있어서 합체해서 하나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개념이 없어서 무슨 음식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계셨다.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일본어로 끼어드는 것도 그들은 실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본인들이었으니 아쉬운대로 다른 음식 드실 수 있으니 모른척 해드렸다.

아쉬웠던 점은 메뉴 중에 김치전과 두부전에서 기름냄새가 났다는 것인데, 집에서 기름 냄새가 온종일 풍기는 전이라는 메뉴를 집에서 만드는 것조차 싫어서 잘 해 먹지 않지만 밖에서 바로 갓 구워준 바삭한 맛있는 전은 무슨 맛인지 알고 좋아하니까 그 맛을 기대하고 집어 들었는데, 기대와 달리기름에 찌들어 식은채로 놓여져 있는 전이었다는 데에서 식당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건 사실이다. 호기롭게 집어 들었다가 한 입 먹고는 씁쓸하게 내려 놓았다. 우리 나라의 김치전이 이런 맛이 아닌데 외국인들이 이 맛을 전의 맛이라고 알고 가게 되겠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분하기도 했다. 사이즈만 좋았다. 골뱅이도 일부러 살짝 데친 것 같았으나, 너무 살짝이라 비린 맛이 꽤 있었다. 비린 맛에 강한 한국사람들이야 개의치 않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비린 맛과 생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무슨 느낌일까 싶었다. 

메뉴 차림이 있던 부분과 약간 동떨어진 부분에 식혜와 과일, 아이스크림이 준비된 곳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음료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먹다가 나중에야 부산떨며 돌아다니던 조카 덕분에 알게 되어서 후식은 알차게 챙겨 먹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전망대층으로 올라가 기념품 쇼핑도 하고, 야경 구경을 함께 하였으나,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다. 그에 비해 공간이 비좁아서 복닥대는 느낌이었고, 일행 여럿이 돌아보자니 부산스럽고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야경은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요 아래 주택가의 따뜻한 불빛들이 예쁘고 좋았다. 서울 사방을 가늠해 보면서 한 바퀴 둘러 보고 기념으로 엽서 두 종류를 사들고 왔다. 전망대 오르기 전에 엘리베이터 입구에도 기념품 숍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 둘러 보았는데 어쩜 이렇게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제품이 없는가 싶더니 전망대 안에 들어오니 제품 종류가 많이 달랐다. 

탐나는 것들이 꽤 있었다. 엽서는 사서 바로 부칠 수도 있게 우표도 함께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자리잡고 엽서를 쓸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고, 온 식구들이 흩어져 있는데다가 너도 나도 엉켜 있어서 엽서를 쓸 수는 없었다. 나중에 쓰기로 하고 그냥 들고 왔다. 오늘은 우체국에 부치러 가야겠다. 

제일 좋았던 곳이 화장실이라고 하면 흥미진진하려나, 올케가 지나가는 관광객이 화장실뷰가 좋다고 했다며 화장실에 가 보자 해서 들어가 보니, 개인 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야경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비키니 베를린은 바깥쪽 칸만 이렇게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원형 구조이다 보니 이렇 배치도 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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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앉아서 볼 일 보면 상념을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으나 온갖 외국인들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마음 놓고 앉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화장실 벽에만 저렇게 해당 지역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던 것도 의외였다. 전망대 윗쪽에서는 아예 못 봤던 것 같아서 이 쪽이 용산이네 아니네로 엄마마마님과 갑론을박을 벌였는데 정답이 화장실 칸막이 안쪽에 있었다. 화장실부터 먼저 갔어야 했다. 

레스토랑 예약고객이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대기 없이 탈 수 있었지만 내려갈 때는 모두 다 줄을 서야 했다. 저녁시간이 깊어지다 보니 손님이 계속 많았고 내려가는 탑승 대기줄도 꽤 길었다. 케이블카까지 신나게 타고 내려왔는데 택시를 잡을 길이 막막해서 카카오택시를 켰는데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며 먹통이었다. 걷느냐 타느냐를 두고 고민하다가 동생이 대신 타다를 불러줘서 편하게 집까지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마마님은 시골 다녀온 것 보다 힘드시다며 다시는 서울 시내 구경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결심을 하시며 주무셨다. 팔각정에서 찍은 사진 엄청 귀엽게 잘 나와서 인화해서 걸어드리면 두고 두고 힘들었다고 타박하시면서 좋아하실 것 같다. 그래도 뭐, 생신은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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