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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한 직장인 한남동 마실, 마케팅의 끝판왕 W*차이나와 로얄멜팅클럽, 우연히 만나 반가웠던 아스티에 드 빌라트

d0u0p 2023. 5. 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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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맛집 리스타려 뿌려대는 마케팅에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며 블로그를 두 번 세 번 교차 검열까지 하는데도 깜빡 넘어갈 때가 있다. 내돈내산임을 인증한 바는 없으나 광고에 의한 글이 아니라는 내용도 없고 대체로 고만고만한 나쁘지 않은 평들이라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식당에 들어서고 보니 왜 그런 애매한 뉘앙스로 글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당장 뛰텨 나가고 싶은 맛이었지만 좋은 경험이겠거니 하고 꾹 참고 나왔다. 정말 그들은 맛있는 딤섬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맛있는 짬뽕을 먹어본 적도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육탕면을 추천한 글도 있었지만 외관상 느낌상 잘 못 주문하면 우육탕면을 한 젓가락도 못 먹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에 짬뽕을 주문했다. 쇠고기가 들어있는 딤섬을 한 입 베어물자마자 그 느낌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중국요리에서 사용하는 특유의 향신료를 쓰고는 있으나 이것이 질 좋은 쇠고기와 만나 즐거운 풍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 우육탕면이라면 이 딤섬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겠다 싶었다. 짬뽕이니 그나마 견딜만 했다. 

쿨핑크 배경이라 쿨톤에게만 어울리는 핑크핑크 로얄멜팅클럽

역시 인스타그래머블 카페였다. 화려하고 색다른 디저트와 핑크핑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디저트들이 너무 요란하게 화려해서 그런지 맛이 있겠냐 싶기는 했다.

멜팅파이 페퍼 치즈 하나와 그나마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한 라즈베리 요거트 컵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라즈베리 요거트 컵케이크를 빼고는 화려하고 요란한 느낌이 조금 더 고급스러웠으면 좋았을텐데 유치한 느낌이 과해서 전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또 맛이 막 너무 훌륭해서 또 먹고 싶었냐면 그렇지도 않아서 내가 어떤 이미지에 속아서 왔을까 반추해 보니 그 그림에서도 이 라즈베리 요거트 컵케이크만 봤지 싶기도 했고, 카페 2층의 분위기도 뭐랄까 조명 탓인지 손님이 없어서인지 휑한 느낌이 강해서 뭔가 날 것의 장난감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밝은 조명 아래서 셀피가 잘 찍힌다며 신나게 사진은 찍고 왔는데, 원 헌드레드 퍼센트 웜 톤 피부인 팀장님은 어떻게 찍어도 힘들었다. 

애매하게 붉은 기보다 푸른 기운을 조금 더 품고 있는 마젠타에 흰 색이 섞인 핑크색이 많아서 그렇지 싶다. 쿨톤 피부를 가지신 분들은 어떻게 찍어도 맑고 깨끗한 피부 표현이 가능하니 도전해 보셔도 되겠다. 

점심과 디저트까지 해결하고 드디어 문제의 그 '바나나'를 보고 왔다. 1억 5천만원이라는 것 같았는데, 우리 집 벽에도 세 개 쯤 붙여사 집 값 4억 5천 높아지면 좋겠다. 전시 예매는 저녁 여섯시를 잊지만 않으면 가능했는데, 저녁 여섯시에 예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계속 뒤로 미뤄졌었다. 다음엔 백자를 보고 와야겠다.  

거대한 칼더 조각상까지 있는 리움 앞 마당을 돌아 나오는데 골목에서 우연히 아스티에 드 빌라트 매장을 발견했다. 소박하고 간결한 듯 하면서 손 맛이 그대로 살아 있고, 깨끗한 흰 유약이 그렇게 또 적당히 더럽게(?) 잘 칠해져 있는 느낌이 좋아서 접시를 살까 말까 들여다 보던 브랜드였는데, 어느새 매장이 들어와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니 도자기 뿐만 아니라 각종 인센스들과 문구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홀린 듯이 구경했가. 도자기는 차마 홀린듯이 갑자기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좁은 건물이지만 다양한 제품라인이 전시되어 있어 계단이 없는데도 5층까지 신나게 올라갔다. 5층에는 루프탑카페가 있었고, 따뜻한 음료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 머그에 담아 주시는 것 같아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했으면 좋았겠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찬 음료를 마시고 싶었고, 일반 유리잔에 담긴 찬 음료에는 또 흥미가 없어서 다시 내려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를 보는 것이 이 날의 목표였고, 덤으로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도자기까지 구경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 욕구단계에서 최상위에 있다는 예술성 추구 목적을 달성해서 그런지 비록 점심은 먹는둥 마는둥 입맛만 버렸어도 괜찮았다. 맛집은 인스타그램에서 찾을 일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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