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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2021년 복달임

d0u0p 2021. 8. 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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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편두통에 현기증까지 이기려면 무조건 잘 먹어 두어야 하니까 당연히 초복, 중복, 말복을 꼬박 꼬박 잘 챙겨 먹기로 했다. 이비인후과는 한 번 다녀왔어야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무사히 큰 탈 없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물에 빠진 닭 요리 자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중 맛 집이라 소문이 나 있고 적당히 입에 맞는 호수 삼계탕이나 논현 삼계탕이 근처에 있었다면 삼계탕을 먹었을 수도있을 것 같지만 근처에는 영양센터밖에 없는데, 영양센터가 딱히 맛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삼계탕은 시원하게 포기하고 다른 메뉴로 대체해 챙겨 먹기로 했다. 뭐든 잘 먹으면 그만이다. 

초복, 흑돈가 오겹

작은 규모의 회사인데다가 팀 규모도 크지 않아 그동안 점심도 포장해서 회의실에서 오붓하게 둘이 먹고 있었으니, 특정 인원 수 이상 모임을 금지해도 더 모일 인원도 없기에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초여름 부터 급격하게 불어난 확진자 소식에 안그래도 불안했던 마음은 더 불안해졌으니 근 1년 동안 미뤘던 회식을 하기는 해야겠고, 복날도 돌아 왔으니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사무실 안에서 흑돈가의 오겹을 먹기로 했다. 사무실에서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배달 주문이 오히려 애매해서 앱에서 포장 주문하는 서비스를 이용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일반 배달만 가능하고 포장 주문은 받지 않는 상태라 하는 수 없이 전화로 주문하고 직접 가서 받아 왔다. 

남이 해 주는 밥은 뭐든 맛있는 것처럼 구워 주신 고기를 받아 와 시원한 사무실에서 편하게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원래 포장 주문을 하면 밥은 별도로 추가 주문해야 하기도 하고, 기름진 고기에는 얼큰한 국물이 안성맞춤이니까 컵라면을 하나 곁들여 가볍게 먹고 말 생각이었는데 왠일인지 서비스로 밥을 두 공기나 주셨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나는 밥을 그냥 거절하고 놓고 오고 싶었지만, 매사에 아끼는 일이 본분이신 팀장님과 함께인지라 하는 수 없이 두 공기를 곱게 받아 들고 왔다. 고소한 가래떡과 얼큰한 라면만으로 탄수화물은 충분했지만, 그래도 팀장님은 든든하게 밥을 함께 드셨다.

숨어 있는 껍데기는 식어서 딱딱해지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

치열하게 굽고 먹고 마시며 한 끼에 3인분 이상은 먹어야 적당하신 분들에게는 턱 없이 부족한 양이겠지만 1인분으로도 한 끼가 충분한 엑스 스몰 사이즈 위장에는 딱 괜찮았다. 엄마마마님께서 숯내를 싫어하셔서 집에서는 마음대로 주문해 먹을 수 없어서 약간 아쉽다.  

중복, 솜씨 한우 육회 비빔밥

중복에는 나날이 하염없이 가격이 오르고 있는 육회 비빔밥(16,900원)을 먹었다. 그래서인지 고기가 전보다 도톰해졌다. 씹는 맛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겠지만, 시원찮은 턱관절 덕에 큰 덩어리를 오래 씹는 일이 힘든 내게는 도전 정신이 약간 필요했다. 

매콤한 낙지 젓갈도 물론 맛이 있었지만, 아삭거리는 오이고추가 반찬에서 빠진 것도 아쉬웠다. 이렇게 점점 아쉬운 식당으로 변하다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더 아쉽다. 

말복, 몇 년 만인가, 봉추 찜닭

지금은 평양냉면집으로 바뀐 자리에 한참 영업중이었던 봉추찜닭에 한 번 가보자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른 자리로 이사를 했고, 배달 앱에서 주문이 가능하길래 말복에 맞춰 주문해 먹었다. 

직접 배달하시는 것인지 배달팁이 무료라 부담없이 주문했는데, 봉투에 들어 있는 전단지를 보니, 전단지에 적힌 가격보다 앱으로 주문하는 가격이 2~3천 원 씩 더 비쌌다. 결국 배달료와 광고 수수료는 고스란히 지불한 셈인가 보다. 그간 '가 보자' 말만 하고 못 갔던 까닭은 점심으로 먹기에는 뼈를 발라내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둘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였는데, 둘이 먹기에 적당한 작은 양의 뼈없는 찜닭이 있어서 점심으로 먹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걸 이제 알았다니 또 아쉽다. 

사무실에서 먹다 보면 잔반 처리가 곤란할 때가 많아서 남지 않는 만큼의 양을 적당히 주문하는 일이 중요한데, 찜닭은 깔끔하게 남김없이 다 먹어 치울 수 있어서 좋았다. 밥만 하나 추가해서 먹었는데, 떡을 추가해 봐야겠다. 

말복이나 진배 없는 생일 근처에 먹은 내돈 내산 생일턱, 함루 히쯔마부시

팀장님이 좋아하지 않는 장어를 부득불 먹어야겠다며 떼를 쓰다가 수를 냈다. 생일 턱으로 낼 테니 그냥 참고 드시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는 일이 고문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있으니 마음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느끼해서 싫어한다고 하셨다. 같은 이유로 많이 못 먹는 편이라 무한 리필 집은 가지 않지만 그래도 숯불에 구운 고소한 장어는 가끔 찾아 먹는 편이라 팀장님 보다는 잘 먹는다고 할 수는 있겠다. 

장어 반 마리가 들어 있는 작은 히츠마부시는 23,000원이었다. 

  • 히츠마부시 특(1.5마리) 4,6000원
  • 히츠마부시 보통(1마리) 37,000원
  • 히츠마부시 소(1/2마리) 23,000원
  • 바다장어 히츠마부시 23,000원
  • 우나동 37,000원
  • 우나기구이 1마리 3,5000원
  • 한우큐브스테이크 35,000원

메뉴 이름이 낯 설었다. 우나동 역시 장어 덮밥일텐데 히츠마부시랑 다른 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동봉되어 있는 먹는 법도 공부해야 했다. 아마도 우나동은 그냥 편하게 밥 위에 얹은 장어를 알아서 적당히 함께 먹는 메뉴일테고, 히츠마부시는 파, 김, 생강, 와사비 등을 넣어 함께 섞어 먹을 수도 있고, 이렇게 섞은 밥을 다시물에 말아서 먹을 수도 있다고 하니 먹는 방법이 확실히 달라서 이름도 다른가 보다. '히츠(=오히츠)'는 원래 밥을 지어 놓은 뚜껑달린 큰 나무 그릇이고, 그 그릇에 있는 밥을 각자 개인 그릇에 덜어낸 다음 장어를 올려(='마부스') 먹는 것이라 '마부스'의 명사형인 '마부시'가 붙어 '히츠마부시'라는 이름이 붙은 메뉴라고, 검색해 보니 어원을 알아낼 수는 있었다. 일본에서도 원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가격대의 메뉴라고 하니 먹어 본 일이 없을 수 밖에 없고, 시작은 손님에게 내 놓기 뭐한 장어를 올려 먹은데에서 유래했다는 대목에 닿았을 때, 그래서 장어가 그렇게 종잇장 처럼 얇은 것이었다며 뭔가 긍정의 울림이 생겨서 너무 아이러니했다. 우나동에 못 쓸 장어를 따로 빼 놨다가 직원용 식사로 먹던 메뉴였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메뉴인 것처럼 만들어서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니, 일본 메뉴 답다. 

다시물은 약간 간이 되어 있긴 했는데 말았을 때 뭐 너무 맛있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냥 구비되어 있는 향신채와 비벼 먹는 방법이 제일 좋았고, 동봉된 메시지를 보면 식당에서는 유명 작가의 분청사기에 담아 준다고 하니 어르신들 대접할 일 있으면 한 번 쯤은 찾을 법도 하긴 한데, 굳이 히츠마부시를 먹느니 우나동을 먹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함루의 우나동이 히츠마부시의 장어보다 얼마나 더 토실토실한지는 확인을 못했으니 뭐가 좋을지는 모르겠다. 

어르신 대접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제일 낫겠다. 박지분청사기는 도자기 표면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을 전경과 배경으로 나눌 때 상감청자와는 반대로 배경을 파내 버리는 기법이다. 상감은 전경이 되는 무늬나 형태를 파내서 안쪽을 다른 색을 만드는 흙을 채워 굽고, 백토로 분청한 그릇에서 배경을 파내서 유약을 발라 굽는다. 도자기 기법을 글로만 배워서 봐도 봐도 잊어 버려서 다시 찾아 봤다. 포장용 종이그릇 말고 직접 식당에 가서 좋은 그릇에 기분내면서 한 번 밥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코로나 끝나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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