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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원 아끼려다가 60만원을 쓰고 기력까지 소진한 셀프인테리어 feat. 현대 보닥 플레이트

d0u0p 2021. 5.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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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일단 스스로 실크 벽지를 철거하고, 천장은 벤자민무어 페인트로 칠하고, 벽은 현대 보닥플레이트를 접착해서 얼추 마무리는 되었지만 처음부터 방 면적에 필요한 플레이트 갯수 계산을 잘 못해서 저렴한 줄 알고 시작했다가 엄청 큰 돈 들여 방을 고쳤다는 이야기이다.
애증의 어린이용 실크 벽지를 이제 보내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중학생이 된 큰 조카가 태어날 무렵 벽지를 새로 바르면서 엄마마마님께서 우리 큰 손주를 위한 벽지를 골라 보라고 하셔서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쓸 방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일 년에 한 두 번 와서 자고 갈 큰 조카가 해맑게 자라기 바라는 마음으로 귀여운 동물들과 꽃이 가득한 벽지를 선택했었다.

조카가 한 음절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는 꽃을 가리키며 열심히 '꽃'이라는 발음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그 때 그렇게 귀엽던 조카는 이제 훌쩍 자라서 발이 내 발 보다 크고,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며 온종일 뒹굴면서 게임하기 좋아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빛바랜 연두색 벽지를 더 이상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몇 년 전에 방이 너무 추워서 시트로 된 단열 벽지를 붙여 두었었는데 그 단열 벽지가 처음 나오기 시작한 때라서 컬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아서 그 때 그 중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연두색 벽지의 채도가 너무 높아 꼴보기 싫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벽지를 바꾸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1. 인력을 써서 벽지를 새로 바른다.

이 방법은 이미 몇 년 전에 엄마마마님께서 원래 벽지를 시공했던 분들에게 의뢰를 하였는데 그 때 한 번 대차게 까인 적이 있다. 실크 벽지라서 철거도 까다롭고 다시 바르기도 까다롭고, 집 안에 이미 짐이 가득 있는 상태에서 도배를 해 주기 쉽지 않고, 눈으로 봤을 때 꺠끗하니까 그냥 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때 이미 벽 중간에 곰팡이가 슬었고 벽지 일부분을 엄마마마님께서 손으로 뜯어 놓으신 상태라 겸사 겸사 단열 접착 시트로 막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동네에서 도배하시는 분들 말고 온라인 사이트에도 기웃거려 봤는데,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짐이 있는 집은 제약이 많았다. 방 하나만 도배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어서 다른 방법도 찾아 보기로 했다.

2. 실크 벽지 위에 페인트를 바른다.

이 방법이 가능하다면 원래 붙여 두었던 시트를 떼 버리고 오래된 실크 벽지위에 그대로 페인트를 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칠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서 숨고에서 페인트 견적을 일단 받아 보았는데, 면적 설정을 대충 해서 그랬는지 방 하나만 칠하면 되는데 기본 견적이 60만원이었다. 이렇게 돈이 들 일인가 싶어 하는 수 없이 직접 칠해 보기로 했다. 직접 칠해야겠다고 결심이 선 날 아침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벤자민 무어의 팔라쪼 핑크 페인트를 면적에 맞게 주문하고, 컬러풀한 벽지를 한 번 가려줄 프라이머 젯소까지 함께 주문했다.
페인트를 주문하기 전에 단열 벽지 시트 일부를 뜯었을 때, 부분 부분 곰팡이가 눈에 들어 와서 바로 아스토니쉬의 곰팡이 제거제를 주문해서 한 쪽 벽의 곰팡이는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인트가 도착하고 나서 나머지 벽에 붙어 있던 남은 시트를 뜯었을 때에는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심한 곰팡이들이 벽지를 잠식하고 있었고, 단열 시트를 붙이기 전에 이미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벽지가 엉망이 된 부분 중 일부는 또 이미 엄마마마님께서 찢어내 버리신 상태라 곰팡이 제거제로 곰팡이를 없앤다 하더라도 중간에 찢어낸 부분 때문에 그 위에 그대로 페인트 칠을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상태 확인도 안하고 사람부터 불렀으면 큰일 날 뻔 했다.
페인트 칠이 불가능하게 되되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3. 접착형 데코 타일을 붙인다.

일단 엉망인 벽을 다시 발견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해야겠어서 유튜브에서 얼핏 보았던 데코 타일을 찾아 보기 시작했는데, 그 중 현대 보닥 플레이트의 베이비 핑크 컬러가 이미 구매해 둔 페인트 색과 비슷해서 적당해 보였다. 벽에 잘 붙나 의심스러워서 이쪽 저쪽 후기를 찾아 보니 실크 벽지 위에는 잘 안붙어서 벽지를 다 제거해야 한다고 하니 또 다시 아찔했지만 직접 실크 벽지 철거했다는 글을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어차피 중간에 찢겨져 망가져 버린 벽지를 과감히 제거해 보기로 했다. 곰팡이가 있는 부분도 막상 벽지를 제거하고 나면 시멘트는 괜찮을 수도 있다고 하니 여러 모로 제거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좌 : 차마 있는 그대로 올릴 수 없어서 블러 처리한 곰팡이 핀 벽 / 우 : 철거가 시작된 벽

오래된데다가 곰팡이로 삭아버린 벽지는 의외로 쉽게 뗄 수 있었다. 엄마마마님께서도 도와주시고 떼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이틀동안 떼어냈다. 철거가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보닥플레이트를 잽싸게 주문했는데 이때 계산을 터무니없이 잘 못 했다. 플레이트가 도착하고 풀어서 확인하기 전까지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15만원이면 방 하나를 다 바를 수 있을 줄 알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주문했던 양의 배는 더 필요했다. 이미 벽도 다 뜯었고, 받은 데코타일도 붙이기 시작했으니 돌이킬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다시 계산해서 필요한 만큼이라고 생각되는 양을 울면서 추가 주문했다.
받은 타일을 붙여 보고 나머지 타일이 오기 전에 천장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천장을 바를 생각에 벤자민 무어 페인트를 주문하면서 롤러 확장봉도 함께 주문했는데, 집에 있던 롤러와 규격이 맞지 않아서 일단 만능 청테이프로 감아 고정했고, 천장 마스킹은 의자에 오르락 내리락 하기 귀찮아서 그렇지 생각보다는 쉬웠다.
전체 벽을 칠하겠다며 프라이머도 함께 주문했는데, 역시 또 계산 실수가 있었다. 벽이 세 개라는 생각은 못하고 가로 세로만 곱해서, 딱 천장에 한 번 겨우 칠할 정도의 소량을 주문했고, 어차피 벽은 못 바르니 그나마 작은 사이즈 잘 못 주문하기를 잘했다며 천장에 바르기 시작했다.

양도 적고 면적도 작아서 순식간에 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젯소를 한꺼번에 다 따랐는데 롤러로 천장을 칠하는 일이 정말 고된 일이었다. 젯소가 마르기 전에 다 칠해야 하니까 요령껏 쉴 수가 없어서 최대한 힘껏 빨리 했더니 작업이 끝났을 때에는 오른 손이 제대로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길이를 연장해서 사용하니 그만큼 힘이 더 들어 간다. 오히려 붓질이 수월한 느낌이었다.

젯소를 칠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페인트는 한 번에 작업할 수 있을만큼만 따라서 작업하고 쉬었다 칠하기를 반복하기로 했다. 일단 붓으로 모서리만 일차로 칠을 하고, 다음 날 롤러로 남은 부분을 칠했다. 젯소도 두 번 바르고, 페인트도 두 번 바르면 좋지만 젯소는 양이 부족했고 페인트는 한 번 칠하고 나니 그럭저럭 참을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아서 한 번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스킹을 한시바삐 시원하게 떼 버리고 싶기도 했다. 마스킹을 떼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프라이머가 물을 섞지 않아도 가끔 몇 방울 씩 뚝 뚝 떨어질 정도로 묽은 상태였는데, 엉성한 마스킹 때문이었는지 틈새로 다 새어 들어 가서 군데 군데 흰 색이 드러나 지저분해 보였다. 살살 긁어내면 떨어질 것도 같긴 했는데 온 사방을 돌아가며 깨끗하게 긁어내기 보다는 차라리 몰딩 첫 칸 까지 페인트로 칠하는 편이 오히려 깔끔할 것 같아서 과감하게 붓질을 시도했다. 페인트는 조금 더 되직한 편이라 큰 페인트 붓으로도 어렵지 않게 칠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삐져 나가는 부분은 물티슈로 부지런히 닦아가며 칠했다.

다행히 몰딩과 비슷한 톤이라 크게 티나지도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서 일단 안심할 수는 있었는데, 천장까지 일단 칠하고 다시 새로 주문한 플레이트가 도착하기 전까지 폐허 상태로 지내면서 하루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날, 보닥 플레이트가 아침 먹자 마자 도착하는 바람에 쉴 틈 없이 다시 플레이트와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방의 나머지 부분을 붙여 나가기 시작했는데, 방이 일단 직각이 아닌 것도 문제고, 면적이 조금씩 남아 돌거나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서 플레이트를 일일히 재단해서 붙여야 했는데 칼질이 정말 어려웠다. 붙이기 전에 다른 분들 시공 사진을 찾아 봤더니 브릭 패턴으로 엇갈려 붙인 경우도 있고, 그냥 바로 바로 붙여 나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엇갈려 붙이려면 자르는 작업이 훨씬 많아질 것 같아서 처음 받았던 보드들은 바로 바로 붙이기 시작했고, 처음 붙였을 때부터 직각이 아니라 당황스럽고 어렵긴 했지만 이미 붙였으니 조금씩 사이를 띄워가면서 잘 붙여 보기로 했고, 계획대로 그럭저럭 잘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맞은 편 벽에 새로 받은 보드를 붙이려고 하니 문제가 심해졌다. 문틀 옆부터 시작했는데 옆으로 덧붙여나갈수록 각도가 더 크게 벌어져서 처음 의도했던대로 제대로 붙일 수 없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두 벽면은 브릭패턴으로 붙이기로 했는데, 잘라내는 일이 번거롭기는 했지만 일단 평행을 유지하기가 쉬웠고, 양 쪽 벽면 기울어진만큼 맞춰 잘라 붙이니 바로 붙이는 것보다는 오와 열을 맞추는 일이 훨씬 수월했다.

괜히 브릭 패턴으로 붙이는 것이 아니었다. 맞은 편 벽처럼 맞붙이겠다고 오기 부렸다가는 벽을 완성하기 전에 화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잘했다. 심신이 무탈한 상태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각도가 기울게 한 번 자르는 일은 쉬운 편에 속했고, 벽에서 떼네지 못한 고리와 못 자리를 그대로 살려 붙이려니 애를 많이 써야 했다. 고리는 윗쪽도 아랫쪽도 계속 5mm 씩 어긋나게 잘라서 결국은 그림으로 가려버리기로 했고, 못이 있던 자리는 에어콘과 맡물려서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못도 똑바로 박히지 않고 경사가 있어서 플레이트를 두 개나 망쳤다. 처음에는 아예 어이없는 실수때문에 쓸 수 없게 되었고, 다음 판 역시 못자리며 에어콘 각이 맞지 않았다. 에어콘도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정말 쉽지 않았다.

잘 못 자른 부분은 그림으로 감추기

물론 화룡점정은 에어콘 배관때문에 뚫린 벽이었는데, 구질구질하게 원으로 뚫어야 하나 싶었지만 곡선 칼을 따로 꺼내 들고 요령껏 잘 깎아 마무리했다. 그냥 이대로충분하다. 모서리가 지금 약간 옆으로 비뚤어진 상태지만 괘념치 않기로 했다. 불 끄고 눈 감고 살 예정이다.

책상도 하나를 치울지 그대로 쓸지 고민중이고, 이렇게까지 돈들이고 힘들여 마무리 아닌 마무리가 되었는데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욕심이 한참 남아 있다. 가장 아랫쪽과 방문 윗쪽은 시멘트벽 그대로인 상태라서 플레이트를 또 추가 주문했고, 그림 연습 할 때 동영상 강의나 각종 백색 소음 용 방송을 틀어 두고 싶어서 무엇이 필요한지 또 고민하고 있다.

멀티탭도 미처 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 각종 전자 기기 충전도 힘들다. 뭐, 다 힘들다. 창문 틀에 붙은 끈끈이도 떼내야 하는데 더 이상 쓸 기운이 없다. 플레이트에는 정말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5년만 버텨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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