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ING

아껴야 잘 사니까, 직접 만들어 본 색연필 심갈이

d0u0p 2019. 9. 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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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나 유투브를 보니 아까운 색연필을 아껴 쓰기 위한 방법으로 심갈이를 직접 제작해서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나만 색연필이 아까운 건 아니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휴대용으로 좀 더 깔끔한 놈을 만들어 보겠다며 일단 온 집안 서랍을 뒤져 보았다.

섀도우는 이미 꺼내서 팔레트에 옮겨 담고 남은 투명 케이스가 있었는데 사이즈도 마침 딱 원하는 작은 사이즈였다. 그리고 같은 서랍 한 쪽에서 굴러 다니던 아이펜슬, 브로우용 샤프너가 눈에 띄었다. 

화장대 서랍을 뒤지기 전에 이미 휴대하고 다니던 황동 연필깎이의 여분 칼날을 확인했는데, 너무 새거라 꺼내 쓰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곱게 넣어 두고, 펜슬깎이의 칼날이 사이즈도 똑같으니 버려도 그만인 헌 펜슬깎이의 칼날을 분리해 쓰기로 했다. 

나름 메이드인 저머니 칼날이다. 깨끗이 닦고 굳이 칼날에 꽂혀 있던 나사도 꼭 함께 쓰고 싶어서 접착마그넷을 재단하고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마그넷이 탄성이 있어서 그런지 직선이 곡선이 되어 버렸고, 칼날 위를 덮은 마그넷이 두께가 도톰해서 심을 갈아 보니 불편했다. 심을 뾰족하게 갈아내려면 좀 눕혀야 하는데 마그넷 두께만큼 턱이 생겨서 색연필 심이 서걱 서걱 칼날에 걸려서 잘 갈리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두껍게 올렸는지 뚜껑도 닫히지 않았다. 

결국 ASMR녹음을 위해 사 두었던 우레탄 흡음제를 사무실 서랍 속에서 찾아 재단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고 검정색 크라프트지로 마무리를 해서 나사까지 돌려 넣었는데, 아무래도 칼날을 접착하지 않고 끼워 놓았더니 심을 다듬을 때 칼날이 같이 돌아 가고, 종이와 칼날 사이에는 색연필 가루가 끼어서 지저분해졌다.  

결국 종이는 다시 떼 버리고, 우레탄도 다시 한 번 케이스에서 헛돌지 않도록 약간 크게 제작해서 꾹 눌러 넣고, 칼날도 양면테이프로 접착까지 해서 나사로 다시 고정해 주었다. 

제법 마음에 든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고, 휴대가 가능한 연필심 갈이가 만들어졌다. 휴대용이 필요했다. 따로 작업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상 위는 좁고, 바깥 공기 마시며 자연광 아래에서 색칠하는 기분이 좋으니 그 때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심갈이가 필요했다. 

어디에선가 남는게 돈밖에 없으면 까렌다쉬 루미넌스 쓰시는 거라고 쓰여진 글을 보았는데, 돈이 남으면 좋겠지만 의외의 근로 장려금을 받아 샀던 것이라 색연필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도 속이 쓰렸고, 연습용으로 남발하자니 안타까웠지만, 선 하나 그을 때의 그 느낌이 정말 다르고 발색이 너무 훌륭해서 돈을 많이 벌어 펑펑 쓰고 싶을 뿐이다. 비었다고 생각되는 색 구성만 좀 채워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다 혼색해서 쓰기 나름일지도 모른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 

녹색 계열은 잘하면 조만간 몽당이 될 것 같으니, 훌륭하게 잘 생긴 연필 깍지 찾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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