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ING

독일 2015, 마지막으로 쾰른

d0u0p 2018. 7. 2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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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여행 일정 마무리는 쾰른에서 하기로 했다. 에센이나 뒤셀도르프도 가까와서 상황에 다라 두 군데를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쾰른으로 정했는데, 사실 아주 짧게 이박 삼일 머물렀던 것이라 다른 곳에는 가지 않았다. 짐을 두고 다녀 온다 쳐도 이미 낯선 곳에서 또 낯선 곳을 기차를 다시 타고 다녀 오는 일이 약간 부담스러워서 그냥 쾰른에만 있기로 했었다. 

데트몰트를 떠나 기차를 타면서 사실 좋지 않은 이벤트가 있었다. 좌석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것이었는데 그 좌석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고, 내 자리라 말하자 그 열차 칸에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는 상황인 것 같았고 그 중 한 명이 (아마도 인솔자) 와서 자리를 바꿔 줄 수 없냐고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그 자리까지 찾아 갔고, 그가 말하는 자리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다시 내 캐리어를 들고 내가 예약한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싶지 않았다. 싫다 말하고 원래 내 자리인 자리에 내가 우기다시피하여 앉을 수 있었다. 짐도 짐이긴 한데 입석 손님들도 꽤 많았고 그 낯선 사람이 한참 이야기 하는 동안 길을 막고 서 있는 모양새라 이쪽 저쪽으로 길이 막혀 있었다. 이래 저래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그에게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앉았으나 옆 자리에는 그 단체 관광객의 일부인 사람이 앉아 있었고, 그는 심지어 흡사 미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너드나 긱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초콜렛을 손가락에 묻혀 가며 먹다가 권하기까지 했다. 어히구, 성의는 그냥 넣어 두실 것이지. 

쾰른성당의 뒷 모습이 보일 무렵 객차 안이 어수선해 졌다. 그 단체 관광객들도 함께 쾰른에서 내렸는데 그들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고, 호텔을 찾아 구글맵을 돌려 보니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라고 나왔다. 10분이지만 생각보다 더 걸을 수도 있고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어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난감한 상황이 되었었다. 호텔은 정말 걸어서 10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고, 택시기사가 처음에 궁시렁대기는 했는데 용케도 승차거부는 안하시고 태워 주셨다. 영등포역에서 택시를 타고 영등포 시장역에 가자고 하는 정도의 거리나, 여의도 역에서 택시를 타고 KBS별관 가자고 하는 정도의 거리보다 짧을 것 같다. 뭐, 몰랐으니 택시를 탔지 알았으면 걸어갔을 거니까, 아마도 택시기사도 그런 상황인 걸 아니까 그냥 태워다 주었을 법 하다. 도착을 순식간에 하고는 이렇게 가까운 줄 정말 몰랐으니 미안하다 말씀은 드렸다. 버스 한 정거장은 안되는 그 정도 짧은 거리였는데 괜히 모르는길이라 겁이 났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는 덕분에 쾰른역과 호텔 사이를 자유 자재로 신나게 열심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쾰른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데트몰트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출발한 것 같다. 역 근처에서 빵을 사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베를린 가는 아침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뭐 호텔에 짐을 풀고 다시 쾰른역으로 향했다. 첫 날 오후는 가볍게 미술관을 보는 것이었다.  

이 풍경을 보며 맥주의 나라답다 싶은 느낌이 들기는 했다.

쾰른의 루드비히 뮤지엄은 루드비히 부부가 그 동안 수집한 컬렉션으로 꾸려졌다고 했다. 그 때 그 때 현대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 것 같았고, 기본적으로 다양한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의외로 몬드리안, 칸딘스키, 피카소와 인상파, 앤디워홀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개인 컬렉션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동안 미술관에 있었다. 

잘 모르는 작가지만, 팝아트와 회화, 사진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지그마르 폴케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팝아트 느낌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 미술관이었으니 카메라는 손에서 떼 버리고 열심히 그림을 보았고 돌아 나오면서 기념품 몇 가지를 샀다. 지금은 이마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어린이용 괴물 손가락 놀이 스티커라고 해야 하나, 물을 묻혀 손가락에 판박이처럼 붙일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동물이며 괴물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조카들 생각에 덥썩 집어 들었다. 

지금은 가끔 골도 부리는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이 때는 한없이 귀엽고 착한 막내둥이 조카였다. 사진을 찍어달라며 얼굴은 안보이게 잘도 포즈를 쥐한다. 소중한 장난감들도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 달라며 장난감만 보이게 들이 밀고는 했었다. 손가락 놀이 장난감 말고도 정말 좋았던 것은 그림자 놀이 도구였었는데, 용과 공주, 성 등이 셋트로 들어 있고 어두운 밤에 잠자기 전에 손전등 하나 켜고 가지고 놀기 너무 좋았다.

그림자 놀이 덕에 한동안 조카들이 밤마다 찾는 인기만점 고모가 될 수 있었다. 동화를 좀 잘 꾸며 들려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같이 놀아줄 때마다 옛날에 알던 동화들의 이야기들이 마구 엉켜 버려서 힘들었었다. 요즘은 잊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그림자 놀이를 꺼내 들면 모두 즐거워 할 것 같다. 이제는 조카들 스스로 이야기를 꾸며 놀 수 있을 수도 있어서 더 재미있을 것 같다.

호텔로 돌아 오면서 쾰른 역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적당히 부어스트를 먹을까 했다가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근처 마트에서 간단하게 저녁과 아침을 해결할 만한 것들을 사들고 왔다. 쾰른 지역 맥주인 가펠쾰쉬도 하나 가져 오고, 안주 용으로 진공포장된 소시지도 골라 보았다. 짭쪼름한 소시지에 맥주는 아주 좋았는데, 쾰쉬는 생각보다 쓴 맛이 강해서 많이 마시지는 못했고, 포장된 소시지 맛 있는데 왜 더 안 사왔는지 모르겠다. 뭐 통관과 검역이 까다로운 식품이니까 생각도 안했던 것 같기는 한데, 저 정도 작은 사이즈는 뭐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안주용으로 정말 너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길을 나서기 전에 잠시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프라이빗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 받지 않고 어디부터 들러야 하나 동선을 짜며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쾰른 역 뒷편은 이런 곳이었다. 호텔 가까운 데에 위치한 문구점을 우선 들러 보고 카베코 만년필이 없어서 다시 큰 문구점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는데 여유롭게 둘러보다 보니 전 날 택시 타고 지나가 버려서 못 보던 것들이 보였다. 나이트클럽 캬바레라니, 이 무슨 영등포역 뒷골목같은 분위기란 말인가, 이런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이었다. 밤이었으면 무서웠을까, 신기했을까, 화려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밤에 혼자 낯설고 으슥한 뒷골목을 다닐 수 없으니 평생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성당은 왜 안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밖에서 보이는 성당은 잘 찍어 보고 싶어서 주변을 다니며 계속 포인트를 확인했는데 마땅한 포인트를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제일 나았던 것이 성당 앞 마당이었는데 그것도 사실 뒤 늦게서야 거의 마지막에 겨우 찾았다. 가까운 곳을 두고 도시를 뱅뱅 돌기만 하다가 놓칠 뻔 했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루드비히 미술관이다. 성당은 한창 보수 공사를 함께 하고 있었고 관광객들로 매우 붐비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붐벼서 들어가기 꺼려졌던 것 같다. 개인도 많고 단체도 많고 하이델베르크보나 베를린보다 훨씬 관광객이 많아서 힘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얻은 카베코 만년필, 지금은 닙이 말을 듣지 않아서 조금 엉망인 지경이라 속상하긴 하다. 구리로 된 바디는 이제 손때 묻어 색이 어두워졌다. 닙은 어떻게 수리 안되려나 모르겠다. 친구에게 문구를 취급하는 가게 주소 두 개 정도를 받아서 호텔에서 가까운 곳을 확인하고 없어서 번화한 쇼핑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을 찾아 가 보니 카베코가 여러 종류 있었고, 세 개짜리 파우치도 함께 살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프랑스 디자인 생활용품 매장인 pylones를 보고 너무 흥분해서 들어 갔었는데 아쉽게도 찾는 물건은 없었다. 우연히 디자인샵에서 팔고 있는 필론스의 제품이 마음에 들어서 눈독 들이고 있던 제품들이 있었는데, 그 중 4계절 양념 컨테이너에 너무 탐을 냈던 때였다. 

이 제품이 한국에서 잠깐 팔다가 완판되어 팔지 않던 때였고, 해외 구매로 찾기도 어려운 때였는데 쾰른에서 필론 매장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쾰른에도 없었다. 사진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 와서 독일 아마존으로 구매해서 찍어 둔 것인데, 해외 배송 중에 곰아저씨 다리가 부러졌다. 뭐 환불이나 교환도 어려우니 그냥 보존하고 있기는 한데 요즘은 또 식탁에 두지도 않고 애매하게 책장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식탁 위로 옮겨다 놓아야 겠다. 쾰른의 필론 매장에서는 사실 꽃무늬 망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음 속으로 들었다 놓았다를 다섯 번 정도 하고 돌아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미 짐도 많은데 망치를 사 들고 올 수는 없었다. 그 이듬해에는 한국에도 필론스의 오프라인 매장이 잠깐 생겼었다. 다녀 와서도 양념통이 포기가 안되어서 주기적으로 검색을 하다 보니, 온라인 사이트가 생긴 것도 알게 되었고, 명동에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시즌 별로 세일도 해서 좋은 가격으로 쇼핑을 할 수도 있었는데, 운이 안 맞아서였는지 양념통은 결국 영영 필론스 매장 관련 사이트에서는 살 수가 없었고, (아마 지금은 매장도 문을 닫은 것 같지만, 필론스에서 취급하던 퀄리 디자인의 제품 몇 가지는 여의도 IFC몰 팝업 스토어에서 판매중인 것을 보았다.) 결국 독일 아마존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만년필을 사고 문구점 근처에서 조금 더 걸어 가면 향수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쾰른의 물을 팔았던 매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 갔다. 그 전날부터 이 날 아침까지 기념품 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념품 중 하나가 쾰른향수였는데, 왜 굳이 이 향수를 많이 팔 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었다. 알고 보니 향수를 뜻하는 오데코롱 Eau de Cologne은 쾰른의 물이라는 뜻이었고, 쾰른 4711번지에서 만들어 팔던 향기나는 물을 나폴레옹군이 와서 많이 사 가서 향수가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냥 향수만 팔고 있지 않고, 예전의 향수병 디자인이나 기록물들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재미 있었다. 쾰른향수는 1900년대 초반에 디자인된 라벨을 아직도 쓰고 있다. 이 매장 외에 공항에서도 쉽게 살 수 있고, 나중에 한국 와서 보니 올리브영에서도 종류 별로 살 수 있어서 다 쓰고 나면 또 사야겠다 생각했는데 다 쓰고 난 지금은 또 올리브영에서 안 보이는 것 같다. 기본 향수는 코리엔더랄까 풀 냄새가 적당히 섞인 느낌이라 괜찮아서 꽤 즐겨 썼었고, 아쿠아 버전으로 새로 나온 향수도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이제는 다 쓰고 없다. 요즘은 레몬이나 자몽 등 시트러스한 종류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올리브영에 혹시 보이면 새로운 버전으로 하나 사 봐야겠다. 

돌아 나오는 길에 길가에서 아이스를 하나 사먹었다. 레몬과 바실리쿰=바질이 섞인 아이스였다. 데트몰트에서 먹은 아이스에도 루꼴라가 들어 있더니 쾰른의 아이스 역시 바질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미나리나 상추가 아이스크림에 들어 있는 느낌일 것 같은데, 독일 사람들은 식사용과 디저트용 허브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나 보다. 바질이 들어 있어 놀랍긴 했지만 기본이 레몬이었기 때문에 상큼하게 잘 먹었다. 

쾰른 역에서 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너 가면 쾰른 트라이앵글이 있는데, 슬로우 스피드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쾰른 시내를 파노라마 전망으로 구경할 수 있다 해서 건너 갔다. 원래 뒤셀도르프에 가서 프랭크게리의 해체주의 건축물들을 보고 싶었지만 다녀오고 나면 쾰른 성당이나 시내를 소소하게 더 볼 수 없을 것 같고, 만년필 쇼핑도 물 건너 갈 것 같아서 포기한 김에 쾰른 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으니 딱 좋아서 찾아 갔는데, 망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으니 고칠 때까지 안녕이라는 공지를 보며 또 다시 베를린에서의 망연자실함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영어로라도 써붙여 놔서 다행이다 싶어 하며  넓은 라인강 강바람 쇠며 산책 겸 기나긴 길을 걸어 돌아 왔다.

희한하게도 호텔과 가고자 하는 곳까지의 교통 수단을 검색하면 그 어디를 검색해도 전체 거리가 1km 정도 되고 그 중 400m정도를 버스를 타는데 정류장까지 300m를 걷고, 버스를 내려서 300m를 또 걸어가라는 식이어서 이럴거면 그냥 걸어도 되겠다 싶어서 전부 걸어 다녔더니 오후에는 무릎 꽤나 아팠다. 

그리고 저녁으로 먹을 버거를 부랴 부랴 검색해 찾았다. Freddy Schilling이라는 곳이었는데 다행히 호텔 근처였고, Brunos Brenner가 맛있고, 맵다고 되어 있어서 주문했더니, 주문 받는 사람이 맵다고 겁을 줬다. (나는 한국사람이니) 개의치 않고 내 놓으라며 주문을 하였고, 그 날 독일에서 새로 발매된 코카콜라 라이프를 함께 마셨다. 라이트와 별 차이 없는 맛이었는데 정확히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버거집에서 주문 받을 때 내 이름을 묻고, 나중에 이름을 친절히 불러 줬는데 역시 발음이 엉망이었다. 멋대로 류를 리우라고 읽어 불러서 속으로 귀여워 하며 버거를 받아 나왔다. 

쾰른과 뒤셀도르프는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는 지역이라 동양인이나 기타 유색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곳이라고 했다. 리셉션에서도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며 반가워 해줬고, 호텔 한 쪽 매점에서는 한국 컵라면을 종류별로 팔고 있었다. 한국 와서 또 신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곳에서 팔고 있으니 은근 호기심이 발동해서 먹어 보고 싶었다. 저녁에 미리 사 들고 올라 가서 아침에 가볍게 잘 먹고 나왔다. 그러고 보니 쾰른 호텔은 세면대 높이가 정말 가슴팍 정도까지 높아서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면 물을 줄줄 다 흘리고 오만 난리가 나서 혼자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독일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에 여행 오면 매우 비좁은 공간과 작고 낮은 가구들 때문에 많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지만, 요즘은 한국 어디에 가도 의자나 테이블의 높이가 부쩍 높아졌음을 느끼고 있다. 아주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키가 크다 만 나에게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알게 모르게 스탠다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 또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했었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역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연기가 자욱한 상황이었고 계속해서 사이렌이 울리며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얼결에 사람들을 따라 한 쪽으로 피해서 친구에게 전화 연락을 시도해 보았으나 뉴스 등에서도 전혀 아무 소식이 없어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다 했고, 다음 기차가 오기까지 약간 어리바리한 상황으로 지켜 보고 있었는데, 사실 왼편으로 피했으면 공항 터미널로 연결된 길이어서 바로 터미널로 갈 수 있었던 것을 사람들 따라 오른편으로 피하는 바람에 발이 묶인 상황이었다. 터미널 반대편 구석인 오른편은 밖으로 나가는 길도 없이 막힌 곳이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처음에 정리할 때만 경찰이 나와 있었던 것 같고 살짝 건너 가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서 일단 재빠르게 반대편으로 건너서 빠져 나왔다. 

빠져 나와서 공항 입구로 가는 길에는 반대편 기차역으로 가려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게다가 비상구 표시등도 계속 점멸 중이었고, 방송도 계속 탈출하라고 흘러 나와서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이 구역을 지나고 나니 다들 너무나 평온한 상황이라 또 의외였다. 대체 무슨 상황이었던 것일까, 사실 베를린에서도 교통 통제를 하는 순간이 꽤 있었다. 중요 인사가 지나가는 시점이라 사거리를 모두 막고 통제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경찰차들이 지나가기도 했었다. 마지막까지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유도 알 수 없다니 안타깝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간단한 패스츄리와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대기시간을 보냈으나, 티켓을 자동 발권하고, 수화물도 직접 부쳐서 몰랐던 것인지, 게이트가 바뀐 것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티켓에 표기된 게이트에 갔더니 모두 미국 사람이라 이상해서 물어 보니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했다. 게이트 변경 내용이 방송으로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일이어서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집에 못 올 뻔 한 것인가, 여행 역시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 독일 다녀온 뒤로 유럽이 멀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한동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이탈리아에 갈 때에는 두바이를 경유하는 아랍항공을 이용해서, 비행시간이 긴 것 보다는 중간에 갈아 타는 동안 힘들었던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독일 갈때에는 직항으로 가고 싶어서 루프트한자를 탔다. 한 번만 타는 것은 좋긴 한데, 너무 오래 타야 해서 쉽지 않았다.

스페인이 너무 가고 싶은데, 생각만 해도 힘들다. 아무래도 다음 여행은 오래 걸릴 것 같다. 2020년까지 스페인 계획은 묵혀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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