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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15 베를린, 망했지만 망하지 않았던 마지막 날

d0u0p 2018. 7. 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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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일정이 꼬일대로 꼬여서인지 시퀀스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짐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나왔고, 베를린필의 연습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가는 길에 던킨 도너츠 앞에서 남은 동전을 넣어 만드는 기념품 만들기를 했다. 한국에서도 수족관이나 관광지에 가면 많이 있는 기계인데 인발기같은 개념으로 봐야 하나, 금속 동전을 넣어서 손잡이를 두 번 돌리면, 원래 있던 동전을 납작하게 만들고 기념이 될만한 마크가 찍혀 나온다. 비싸지 않고 기념이니까 때마침 눈에 보여서 해 보고 싶었다. 동전이 큰 사이즈는 안 들어가서 굳이 도너츠 가게에 들어가서 동전을 바꿔 나와야 했다. 그냥 바꾸자니 뭐해서 맛 없는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는데, 큰 동전을 거슬러 줘서 동전기계에 넣을 수 있는 동전으로 다시 바꿔달라고 해서 겨우 바꿨다. 

지금 봐도 원래 동전의 값어치보다 훨씬 값진 기념품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이 던킨 도너츠와 베를린 필 사이에는 레고빌딩이 있었다. 커다란 기린 레고를 얼핏 본 것 같기는 한데, 목적지가 있고, 시향 연습 시간에 맞추려니 마음이 바빠서 들어가 볼 생각은 못 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날 음악당에는 무슨 행사인지 행사 때문에 연습이 없었다. 분위기가 왠지 닫혀 있는 것 같아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었는데 유리문에 독일어로 써 붙여진 공지를 아마도, 독일어를 아는 영어권에서 오신 관광객인 듯한 분들이 읽고는 오늘 안한다고 대화하시는 것을 옆에서 곁다리로 듣고 알게 되었다.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는 것도 좋긴 한데, 짧은 일정에 시간 쓰기도 그렇고 해서 고민은 했던 것 같고, 아마 공연 일정이 맞지 않았거나 티켓이 없었던 것 같다. 미리 웹사이트로 찾아 보기는 했는데, 매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할 때라서 여행 일정 근처에 하는 공연 티켓은 구할 수 없었던 것 같고, 연습 공연은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부푼 마음으로 열심히 가 보았으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베를린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억이 조각조각 끊겨 있는데, 휴대폰으로 찍어뒀던 사진마저 사라져서 이을 방법이 없다. 공원에서 어느 길로 빠져서 국회의사당 앞까지 갔었고, 의사당 옆 길로 배가 다니는 강을 본 것도 기억나고, 여기가 바로 제국주의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치사회를 만드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었던 그 국회의사당이냐며 사진까지 찍었는데, 공원이 먼저인지 의사당이 먼저인지 기억이 정리되지 않는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의사당 앞마당은 애쓰면 떠올려 지기는 한다. 다음 번에는 의사당 견학 신청해서 꼭 들어가 봐야겠다 다짐하며 돌아 나왔다. 

공원과 국회의사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베를린 중앙역이 있었다. 떠날 무렵 되서 본의 아니게 구석구석 걷다 보니 오히려 더 좋았다. 근처 지리도 훤하게 알게 되었고, 공원을 마냥 걷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진짜 좋았던 것은 역에 미리 가서 가방이나 넣어둘까 싶어서 조금 서둘러 역으로 가다가 강변에 있는 카페를 발견했던 것이다. 비행기 타면서 맥주로 고생한 탓에 맥주는 마실 수 없었고, 아펠쇼홀레를 주문해서 한동안 음악을 들으며 강을 바라보며 정말 여유롭고 아름답게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맥주 좋아하시는 분들은 날씨 좋은 날 강변에 꼭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기억 속에는 베를린 공원과 베를린 중앙역 사이를 걸을 때 손에 분명히 버거킹 햄버거를 들고 있었는데, 이 버거를 대체 어디에서 샀으며 어디에서 먹었는지 모르겠다. 카페에서는 분명 음료만 마셨고, 발랄하게 오셔서 주문 받으셨던 분도 기억 나는데, 버거는 대체 어디에서 먹었을까?! 

그리고, 기념품을 제일 많이 구매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중앙역사였다. 카데베에서는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 없더니만, 역사 안에는 정말 갖가지 종류의 가게가 많았고, 데엠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화장품들을 살 수 있는 드러그스토어에서부터 이탈리아 브랜드 스타킹 매장이며 정말 다양한 디자인을 고루 갖춘 버켄스탁 매장까지 없는 게 없었다. 괜히 발품 팔았다싶을 정도였다. 버켄스탁은 짐도 짐이고 이미 샀으니 더 이상 욕심 부릴 수 없어 울면서 지나쳤고, 정말 기념품만 파는 매장에 들러서 기념품다운 기념품도 열심히 구경했다.  

굳이, 분단의 벽이 아닌 어느 공사장의 폐아스팔트벽일 수도 있다는 돌맹이도 샀다. 이 돌이 정말 그 벽에서 나온 돌이어야 하지만 혹시 아니라 하더라도, 베를린에서 산 벽조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자석은 많이 나눠 줬는데 아직도 조금 남아 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저 자석과 같은 모양의 에코백을 샀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보내 준 다른 지역 에코백은 아직 있는데, 왜 내 베를린 백은 없는지 모르겠다. 집 구석 어딘가에서 찾게 되면 매우 기쁘겠다. 

이제 언제 다시 갈 지 모르지만, 해결할 과제들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는 베를린에 하루 빨리 다시 가 보고 싶은 것은 진심이다. 
데사우 바우하우스에도 가 봐야 하고, 유네스코 지정 주택단지와 아에게 공장도 가야 하고, 식물원도 가야 한다. 신갤러리도 이제 다시 열었을 것이고, 잠룽보로스의 다른 컬렉션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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