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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한강에서 라면 먹기

d0u0p 2024. 4. 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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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이 넘게 여의도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한강 공원에 가서 라면 한 그릇 먹고 오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라면 한 그릇 먹겠다고 짧은 점심 시간에 한강 공원까지 거의 달리듯이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사무실 주변에는 맛있는 식당들이 천지에 널렸으니 꼭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봄바람이 살랑 불고 벚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찾아 왔으니 올 해에는 꼭 한 번 가 보자했던 다짐을 실천하고 싶었고, 더 이상 화창할 수 없는 그런 어느 날 한강 공원까지 달려가(사실 걸어갔지만),  라면을 먹고 오기로 했다. 

예전(정말 오래 전, 라면기계가 없던)과는 다르게 기계가 있고, 원하는 봉지라면을 선택해서 각자 취향껏 먹을 수 있으니 가볍게 점심 한 끼 먹기에는 아주 좋았다. 치킨을 파는 매장과 라면을 파는 편의점이 거의 함께 붙어 있는 건물들이 몇 군데 있었고, 사무실에서 한강 공원으로 진입했을 때 가장 가까운 유람선 선착장 앞에 있는 편의점에는 라면은 있을 것 같았지만 테이블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늘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 테이블에는 늘 그렇듯이 그늘이 없었고, 올 해에도 역시 그늘이 없는 상태라 앉아서 식사를 하기는 어려웠다.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모니터를 들여다 보다 야외에 나가면 정말 눈이 시릴 지경이라 그늘 한 점 없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무 테이블을 지나쳐 더 들어가다 보니 이미 끓인 라면을 들고 와 다리 밑 그늘에서 식사를 하시는 분이 보였고, 조금 더 지나가니 치킨집인 것 같으면서 편의점이 붙어 있어서 라면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가건물이 보였으나 주변에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몇 안되는 테이블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이 계셨고, 굳이 한강까지 와서 건물 안에 들어가 라면을 먹기에는 나들이한 보람이 없을 것 같아 다시 다른 장소를 찾았다. 

더 들어가니 치킨브랜드와 편의점이 함께 붙어 있는 건물 2층에 파라솔과 테이블, 의자들이 있고 심지어 자리도 여유가 있으며 강변에 붙어 있어서 따뜻한 국물에 강바람을 말아 먹을 수 있는 명당이 보였다. 

더 볼 것도 없이 2층으로 달려 올라가 강변 자리를 선점하고, 다시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내려가 라면을 선택하고, 계란 하나, 김치 한 봉지를 계산해서 나왔다. 기계 사용법은 뭐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달걀을 미리 넣으면 눌어 붙던가 탈 수 있으니 끓이다가 1분 30초 남았을 때 넣고 잘 저어주어야 한다. 계란 살 때 카운터에서 미리 말씀해 주시길래, 그렇게나 주의할 일인가 싶기는 했는데 태우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적당히 열심히 저어 주었다. 

기계에 정해진 시간대로 끓였더니 집에서 끓일 때 보다는 조금 더 끓어서 면이 부드러운 상태가 되었는데, 들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중간에 미리 타이머를 정지시키는 것도 요령이겠다 싶었다. 

강바람에 라면 한 그릇 말아 먹기 좋은 날씨이기는 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꽤 더웠고, 이제 더위가 시작이라 올 해 이렇게 라면 한 그릇 처음 먹어보고는 또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한강이 코 앞에 있지만 집 밖을 나오는 일이 거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주말이라고 특별히 집 밖을 나와 찾아 가면 이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와 있을테니 내가 앉을 빈 자리는 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라면은 앞으로도 계속 집에서 끓여 먹고 나오게 될 것 같다. 한 번이면 족하다. 벚꽃이 만발하기 전 평일이라 테이블에도 여유가 있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라도 구경할 수 있어서 좋긴 했다. 오히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비가 와서 그런지 이 때보다 훨씬 시원하다. 이럴 때 라면 한 그릇 딱 후루룩해야 하는데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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