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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회식 : 모던하지만 복잡하고 번잡했던 모던 샤브샤브

d0u0p 2023. 2. 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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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좌석에 셋이 앉았을 때 적당히 넓은 공간이다 싶었는데 먹는 동안 번잡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넓은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끓이다가 먹다가 주문하다가 불조절하다가 채소 구경하고 음료수 가지러 가고 뭐, 정말 정신 사나웠다. 게다가 주문할 때부터 이미 문턱이 하나 또 있었다.

시간 제한 없다는 것은 이해했고, 채소와 식사, 음료 무제한 제공된다는 것도 이해했고, 육수를 선택하면 그에 어울리는 식사를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샤블리에"가 추천해 준다는 대목에서 약간 갸우뚱했다. 육수의 종류가 일단 너무 많았다. 아홉가지나 되는 육수마다 어울리는 식사가 정해져 있는데 정해져 있는 식사를 바로 옆에 표기하지 않고 메뉴를 뒤집어야 각각의 육수에 해당하는 식사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진 리플렛이어서 난감했다. 아니, 사람이 한 번에 쉽게 기억 가능한 항목의 최대 갯수가 7이라는 매직 넘버의 법칙이란 것도 있는데, 어쩌자고 육수는 아홉가지나 만들어 놓고 그 육수에 해당하는 식사를 한 눈에 볼 수도 없고 뒤집고 뒤집는 과정을 거쳐야 육수 하나를 겨우 결정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아니면 메뉴를 두 장 주시면 괜찮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앞 뒤로 열심히 돌려 가며 원하는 육수를 선택하는데 고군분투해야 했다. 육수 선택하는데 글 다 읽어 보고, 식사 메뉴 다 맞춰서 확인하고, 이렇게 신중해 본 적이 없다. 매운 육수가 한 두 가지 있었던 것 같은데 맵기의 수준을 가늠하기도 어려웠고 서로 입맛이 다 다르니 호불호 없는 중간 맛인 스키야키를 선택했다. 나중에 나오는 식사가 볶음 우동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코코넛 그린 커리나 유자 청양 육수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하다. 토마토 육수 역시 마이너해 보이기는 해도, 고수 훅 얹어서 주시면 완전 맛있을 것 같은데 여럿이 먹는 샤브샤브라 서로의 취향을 이해해줄 구성원을 모아 먹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토마토 육수 너무 사랑한다. 20년도 더 전에 베트남에서 먹었던 토마토 국이 입에 참 잘 맞았는데, 이런 입 맛 가진 사람 찾기 쉽지 않다. 

기본 시그니처를 선택하면 소고기는 부채살과 알목심, 돼지고기는 목살과 삼겹살이 나온다. 고기와 채소 모두 먹으면서 계속 추가해서 먹을 수 있고, 고기를 새로 추가 주문할 때에는 특정 부위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어서 일단 맛을 보고 나서는 거의 소고기를 주문해 먹었다. 돼지 고기는 약간 잡내가 나기도 했다. 소스를 찍어 먹어도 냄새가 가려지지는 않았다. 

약간 단 맛이 있는 스키야키 육수라 너무 반갑지는 않았고, 고기를 날달걀에 찍어 먹을 수 있도록 날달걀이 따로 나와서 날달걀의 비릿함과 돼지고기의 누릿함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소스 종류에 따라 태국 고추와 파, 마늘을 각각 섞어 드시라 안내해 주셨지만 소스는 뭐, 향신료는 한꺼번에 다 넣고 맛 보는 타입이라 다 섞어서 잘 먹었다. 어떻게 각각의 소스마다 한 가지 양념만 넣을 수 있겠는가!

푸짐한 채소에 당면이 들어 있었는데, 별도로 채소를 직접 담아올 수 있는 공간에서는 찾아 보니 면이 없었다. 어차피 식사로 면이 나오니 참고 고기를 먹기로 했다. 부지런히 먹는다고 먹었지만 입 짧은 사람들끼리 모여 하는 회식이라 기대만큼 많이 먹지는 못했다. 

무한 리필인데, 먹는 사람들이 우리만 같으면 확실히 남는 장사가 맞다. 고기를 잘 먹고 많이 먹어야 하는 성장기 어린이들과는 함께 가 볼 만 하겠다. 탄수화물 중독이지만 탄수화물만 보면 걱정부터 하는 뱃살 두둑히 나온 중년 어르신들이 먹기에는 꽤 버거웠다. 마지막으로 나온 딸기 아이스크림은 크림 타입이 아니라 샤베트 같은 하드 타입이라 입가심하기에 좋았다. 

토마토 육수로 한 번 더 먹어보고 싶기는 한데, 회식비로 먹으니까 먹었지, 내 주머니 털어 먹기에는 소식좌에 가까운 사람이니 아마도 토마토 육수는 영영 맛 볼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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