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만연할 때 요긴하게 쓰던 샤오미 마스크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샤오미 마스크도 내피는 물론 외피까지 세탁해서 쓸 수 있는 제품이지만 이미 2년 넘게 써 왔으니 더 이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막을 마스크를 따로 사야겠다고 다짐했을 때에는 이미 마스크 가격이 껑충 오른 때라서 차마 그 오른 가격으로는 마스크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독립된 공간이 보장된 자차로 출근중이라 좀 기다려볼까 했는데, 그 사이 상황이 계속 바뀌고 하루가 다르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들이 일어나 부족한 마스크를 대체할 면 마스크며, 키친타월 마스크를 너도 나도 만들어 쓴다고 하고, 어느날 갑자기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되었다. 온라인 쇼핑몰을 뒤졌을 때 이미 일회용 마스크가 한 장에 5,000원이 넘어가는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이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주문을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배송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취소하기까지 했는데, 공적마스크는 한 장에 1,500원이니 꼭 사야만 했다.
비 오는 날 줄 서기
공적마스크가 판매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하필이면 비염인지, 그냥 환절기 감기 기운인지, 갱년기 증후군의 시작인지 모를 증상으로 몇 주 동안 골골대며 이비인후과에 피부과에 내과를 전전하고 있었는데 그 중 피부과에 들렀다 바로 옆 약국에 들렀을 때 마침 바로 앞 서 들어가신 분이 마스크를 받아 가시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그 때는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바로 전 날 찬 바람에 비까지 오는데 팀장님은 사무실 건너편 약국 앞에서 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마스크를 겨우 받아 오셨는데 그 분은 늦은 시간에 여유롭게 들어와서 마스크를 바로 받아가셨던 것이다. 일단 처방전을 내고 약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뒤따라 다른 손님들이 들어 오시면서 마스크를 찾으시니까 마스크는 이미 떨어졌고, 아침에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다고 하셨다.
팀장님처럼 비까지 맞으며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살 자신은 없었는데, 아침에 약국 문 여는 시간에 들러 번호표를 일단 받아 가면 오후 두 시 이후 편한 시간에 다시 가서 찾아 올 수 있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적당히 아홉시 삼십분 지나 들렀더니 88번이었다. 받았으니 다행이다. 들른 김에 지난 번 처방전 받아 연고 살 때 항산화에 도움이 된다는 셀레늄과 글루타치온을 섞은 건강보조식품을 샀었는데 그럭 저럭 괜찮은 느낌이라 꾸준히 더 먹어 보려고 중간 사이즈 박스를 하나 더 사고 했더니 귀한 손 세정제를 하나 덤으로 주셨다. 아껴 써야지.
마스크는 오후에 가서 무사히 찾아올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요일은 휴가를 내고 차를 대대적으로 손을 볼 예정이었는데, 번호표를 받을 수 있는 사무실 근처 약국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었고, 아침 일찍 서비스 센터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 근처 약국에서는 마스크를 어떻게 팔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걱정이었다.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다는 마스크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약국에 "마스크 없음"이라고 붙은 종이를 보고는 엄마마마님께 마스크 어디서 사셨냐고 여쭤보니, 그 없다고 붙여 놓은 약국도 막상 들어가서 달라고 하면 다 준다며 가 보라 하셨고, 아는 얼굴은 다 준다며 대신 사다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일단 앱도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고 일단 엄마마마님의 성의는 곱게 넣어 드렸다.
차를 다시 찾으러 가기까지 여유가 있으니 편하게 누워 일단 집 근처 약국이 어디 어디 있는지 보려고 카카오맵을 열었는데 공적마스크 판매처 버튼이 있었다. 눌러 보니 재고량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보았던 약국은 역시나 재고가 없었고, 엄마마마님께서 동네 사람이라 그냥 준다는 약국도 역시 재고가 없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새로 고침을 하다 보니 열 두시가 되기 직전에 약간 거리가 있으나 찾아 가기 불편한 정도는 아닌 약국에 재고가 많다는 알림이 떠서 일단 마스크를 사겠다며 뛰어 나갔다.
오랜만에 횡단보도를 바람같이 건너 약국 근처까지 갔지만, 이미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줄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더 불안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막상 문 앞까지 가서 물어 보니 오후 세시부터 판매하신다고 했다. 바로 포기하고 돌아나왔는데 오는 길에 혹시 번호표를 주시냐 언제쯤부터 줄을 서야하냐 캐물을 걸 그냥 나왔다고 후회했다.
헛걸음질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마마님이 말씀하셨던 동네 사람이면 꺼내 준다는 약국에 들러 보기로 했다. 역시나 '마스크 없음'이라고 붙어 있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역시나 마스크는 없다고 하셔서 결국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갔고, 보다 못한 엄마마마님께서는 대신 구해다 주겠노라며 주민등록증을 달라 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약국에서 마스크를 받아 오셨다. 내 얼굴은 동네 사람 얼굴이 아니라서 없다고 하셨나, 젊은 사람이라 그냥 없다고 하셨나 모를 일이다.
있다고 말로만 전해지는 유니콘인가, 파랑새인가, 전설 속의 동물도 아니고 왜 내가 가면 없었을까, 엄마마마님 말씀으로는 아침 일찍 번호표를 줘서, 다른 사람들은 그 번호표를 가지고 와서 받아 가더라 하시면서도 그래도 늘 보던 얼굴이라 번호표 없어도 꺼내 줬다고 하셨다.
꼭 아는 얼굴이라서라기보다는 연세도 있으시니 여러 번 발걸음하시는 것도 곤란하고 줄 서시는 것도 힘들고 하니 배려 차원에서 주셨을 것 같기는 하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미성년자일 경우 대신해서 마스크를 살 수 있다는데 오히려 엄마마마님이 대리구매해 주신 모양새가 되었다. 엄마마마님 덕에 마스크는 무사히 구했지만 혹시나 싶어서 앱을 그 후로도 확인해 보았는데, 세시부터 판매한다는 약국의 재고가 한시 반 쯤 이미 0으로 바뀌어 있어서 또 혼란스러웠다.
언제까지 어느 장단에 맞춰 오락가락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지난 주까지의 상황이었고 이번 주부터는 또 상황이 바뀌었다.
열두시 반부터 늘 줄을 길게 서던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에 더 이상 줄이 생기지 않았다. 팀장님이 이미 주 초에 확인하고 오셨는데, 한 시부터 판매를 시작하지만 줄이 없고, 한 시 반 쯤 가도 마스크를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시니 이제는 적당한 시간에 가서 사올까 싶기는 한데, 언제까지 일회용 마스크를 계속 써댈 수도 없을 것 같아서 면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한데다가 그 동안 이래 저래 모은 마스크로도 충분한 것 같아서 꼭 사러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있어야 하면 하루에 하나씩 필요하겠지만, 마스크를 종일 쓰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도 않고, 외출을 하지도 않으니 일주일에 두 장으로도 괜찮은 것 같다. 공적마스크 덕에 마스크 가격이 안정되었는지는 실감이 안났었는데 어제 편의점에 갔더니 텅 비어 있던 매대에 마스크가 들어와 있었다. 공적 마스크만큼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마스크가 걸려 있는 모습만 보아도 반가웠다. 마음만 먹으면 확 쓸어담을 수도 있었겠지만 생각보다 마스크를 많이 쓰지도 않고, 서랍 속 마크스와 면 마스크로도 충분하니 굳이 탐낼 필요는 없었다.
얼른 면마스크나 완성해야겠는데, 미싱이 없다. 손바느질하려니 앞이 캄캄하고, 마스크 하나 완성하기 전에 코로나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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