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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은 집중 호우가 내려야 겨우 갈 수 있었던 호우섬, 여의도 더현대서울점

d0u0p 2022. 9.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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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대기인파가 많던지, 평소에는 웨이팅 엄두도 못 냈던 호우섬을 드디어 다녀올 수 있었다.
원래는 펭수 생일이자 내 생일이었던 8월 8일 집중 호우가 내렸던 날, 그렇게 많은 비가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 날, 아예 휴가를 내고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입장해서 예약을 하고 여유 부리며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특별히 생일이니까, 사무실 코 앞에 위치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농땡이 부리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는 출근하는 것처럼 시간 맞춰 사무실 앞에 도착해서,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바쁜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그간 끝내 다 읽지 못했던 책을 한 시간 쯤 읽다가 백화점으로 출발하기 직전, 백화점 앱을 열어 보았는데 한 달에 딱 한 번 쉬는 정기휴무가 하필이면 또 바로 그 날이었다. 왜, 어째서, 하필이면, 일 년에 한 번 아침 일찍 들어가서 맛있는 점심 한 끼 먹고 오겠다고 결심한 생일 날 누구 맘대로 문을 닫았단 말인가.
마음의 상처를 겨우 다독이고, 평소에 여유 부리며 찾아 가서 먹기에는 역시나 시간이 부족해서 쉽게 갈 수 없었던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에서 일단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 역시 언제나 줄이 긴 식당 중 하나라 일찌감치 가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적고 사무실을 지키고 계시는 팀장님을 불러 함께 점심을 먹었고, 점심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한적해지는 그 카페로 돌아가 그 날의 계획을 마무리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폭우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다.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에서 다시 사무실 앞 카페로 돌아가 시원한 에티오피아 게뎁 한 잔을 마시고, 필사 영상 하나만 촬영하고 여유롭게 집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속수무책으로 쏟아내리는 비에 바지도, 운동화도, 들고 나갔던 책도 모두 젖어 버렸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에 장화까지 챙겨 들고 나오기는 했지만, 오전에 카페에 들렀다가 햄버거집으로 이동할 때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 운동화를 신은 채로 그대로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폭우를 만나는 바람에 망했다.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차가운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어 발길을 돌려 일찍 귀가할 수 밖에 없었고, 난생 처음 생일 날 운동화를 세탁했다. 생일 날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귀찮음을 무릅쓰고 적당히 세척을 하고 열심히 말렸다. 누군가는 목숨을 달리할 정도로 무서운 비가 내린 날이었으니 운동화 한 켤레 젖은 것쯤은 괜찮아야 하는 날이었다. 집도 멀쩡하고 차도 멀쩡해서 천만다행인 날이었고, 다음 날은 전 날 내린 비 때문에 출근을 할래야 할 수 없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니 그 많던 백화점 식당가 손님이 줄어들었을 수 밖에 없고, 생일은 지났지만, 여전히 비는 내렸지만, 또 다시는 없을 기회인 것 같아 앱을 열고 웨이팅 목록에 호우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열한시가 되기 직전에 호우섬이 나타나서 일단 웨이팅 신청을 하고 보니, 점심 시간에 맞게 입장할 수 있을지 더 빨리 가야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출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10팀 정도 남았을 때 출발을 하기로 했는데, 10팀이 남은 시간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잠깐 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열 한 시 반도 안 되서 나가려니 뒤통수가 가려웠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숫자가 줄어 대기 팀이 일곱팀으로 바뀌고 이제 두 번 다시 기회는 없겠다 싶어 일단 달려 나갔다.
그동안 앱에 있는 식당 목록이 늘 한결같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종잡을 수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까닭이 궁금했었는데 식당 앞에 도착하니 왜 그랬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빗 속을 내달리던 중 입장 안내 문자를 받아서 반쯤은 포기한 채 찾아갔는데, 점심시간에 영업 가능한 인원까지만 대기 신청을 받고 시스템을 잠깐 닫았다가 여유가 있는 시간부터 다시 대기 신청을 받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이 식당 앞에 세워져 있었다. 시간 맞추기 정녕, 진짜, 너무 까다로와서 정말 다시 또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회사를 그만 두면 모르겠는데, 맛집 찾아 점심 먹겠다고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문자를 받은 시간보다 꽤 지난 시간이라 자리에 못 앉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밑져야 본전 아닌가, 일단 문의를 해 보니, 자리가 만석이긴 한데 잠깐 기다리면 안내를 해 주겠다 했고, 조금 지나서는 나란히 앉는 바 좌석은 여유가 있다 하시니 덥석 앉겠다 했다.

그렇게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보고 있으니 그래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바삭한 누룽지를 맛 볼 수 있다는 홍콩식 솥밥인 뽀짜이판과 하가우, 그리고 비 오는 날 소울 푸드로 손색 없는 매운 소고기 탕면을 주문했다.

호우섬 메뉴

  • 블랙하가우 (3pcs) 8,800원
  • 쇼마이 (3pcs) 7,500원
  • 소룡포 (3pcs) 7,000원
  • 마라 소룡포 (3pcs) 7,500원
  • 트러플 차슈 바오 (2pcs) 7,500원
  • 맑은 우육탕면 11,000원
  • 매운 소고기 탕면 12,000원
  • 마파두부 도삭면 10,300원
  • 라구짜장 도삭면 8,800원
  • 닭고기 조림 뽀짜이판 13,000원
  • 매운 돼지고기 볶음 뽀짜이판 13,500원
  • 새우&돼지고기 완자 뽀짜이판 16,000원

정말 오랜만에 마라다운 마라면을 입에 넣으니 즐거웠다. 하가우도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애석할 뿐이다. 저 메뉴에 있는 딤섬을 종류 별로 다 먹어 보고 싶은데 포장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다음에 매장 지날 때 한 번 물어봐야겠다. 메뉴판에 있는 트러플 차슈 바오는 찾아 보니 구부리 빠오즈같은 폭신한 왕만두 타입이다. 중국도 못 가고 일본도 못 가니 트러플 차슈 바오라도 먹고 만족스러우면 좋겠는데, 일단 소 사이즈 위장을 가진 자는 하가우 한 가지 맛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매운 소고기 탕면 해피밀이 있다면 좋겠다. 얼얼하고 칼칼한 국물과 폭신한 만두를 곁들이면 세상 행복할 것 같다.

닭고기 조림 솥밥은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닭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채소와 잘 눌은 밥을 박박 긁어 먹는 맛은 즐거웠으나, 닭 냄새가 좋지는 않았다. 요리 재료에서 재료 본연의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요리사도 많지만, 뭐 다 개인 취향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맛있게 먹겠지. 코가 예민한 내 취향은 어지간한 육류에서 나는 잡내를 온갖 향신료로 잘 감춰놓은 요리들인 것일뿐이다.

그래서 고기 기름 냄새가 조금은 거슬려도 칼칼한 마라향에 냄새가 쏙 잘 감춰진 마라탕은 맛있다며 잘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호우섬 테이블 위에 준비되어 있던 라조장은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매할 수 있어서 냉큼 한 병 사다 들였는데 화끈한 맛이 아주 좋긴 하지만, 많이 매운 편이라 본의 아니게 아껴 먹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천년만년 짬뽕라면에 풀어 먹고 또 사 먹으리. 

이제 호우섬은 갑자기 태풍이라도 와서 백화점이 다시 한산해지는 날이 아니라면 내년 쯤 다시 가 보겠다. 평일 점심 시간 여유 좀 부리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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