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GKING

마시는 차, 맛있는 차, 서울에서 애프터눈 티 마시기, 워커힐 더 파빌리온 스트로베리 애프터눈티

d0u0p 2019. 4.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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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좋다길래 머나먼 길을 다녀왔는데, 산꼭대기라 아직 꽃이 없었다. 호기롭게 휴가까지 내고 갔는데 폭망했다. 요즘 뷔페를 너무 많이 다녀서 몸무게가 역대 최고 숫자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이라 딸기 뷔페는 차치하고 가격이 심하게 과하지 않지만 퀄리티도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 같은 스트로베리 애프터눈 티를 굳이 사전 예약까지 해서 가는 길에 애프터눈티가 실망스럽더라도 벚꽃이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꽃도 피지 않았던 것이다. 

가는 길에 약속 장소를 엄한데 잡았다가 다시 정정하는 뻘짓을 한바탕 하고, 강변역에 내려서 셔틀 버스 타는 장소를 두리번대며 찾다가 하는 수 없이 검색해서 블로그 보고 찾았다. 그렇게 종종 블로거님들의 도움을 자주 받고 있는데 사실 나는 블로깅할 때 핵심 정보를 보기 좋게 편집한다던가, 요약정리를 한다던가 하는 편이 아니라 괜시리 무안해졌다. 끊임없이 블로거님들의 도움을 받아 블로그를 포스팅하고 있다. 

네이버를 통해 예약하고 받은 문자에는 강변역 1번 출구에 셔틀버스가 있다고만 적혀 있어서 일단 믿고 1번 출구로 나가 보았는데, 셔틀 버스 정류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지도를 돌려 봐도 딱히 일반 버스나 공항 버스 외에 버스 정류장 표기도 나오지 않아서, 셔틀 버스 타는 법이 포스팅된 블로그가 없었다면 안내번호로 전화하고 더 번거로와졌을 것 같다. 

다행히 1번 출구에서 나와서 직진하다가 만나는 횡단보도를 두 개 건너면 테크노마트 건너편이고, 그 곳에 셔틀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친절한 글을 보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미세 먼지가 몰려 올 것이라는 예보를 뒤로 하고 의외로 하늘이 파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정말 미친듯이 불었다. 날이 좋아서 셀피 찍으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날이었다. 친구님이 드디어 강변역 1번 출구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오시는 것을 마중나가 기다렸다. 

셔틀 버스 정류장에 있는 큐알을 스캔하면 운행중인 버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편했다. 아이폰 기본 사진 앱에서 큐알알과 바코드가 자동으로 스캔되는 기능이 생긴지 꽤 됬는데, 자꾸 잊어 버린다. 게다가 사진을 켰을 때 무조건 실행되는 기능인가 했더니 설정에서 기능을 끄거나 다시 켤 수도 있게 되어 있다. 편리하기는 한데 바코드나 큐알을 읽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기능이 있다는 것도 잊는다. 버스는 생각보다 빨리 왔고, 10분 간격이라지만 더 자주 오기도 하는 것 같다. 나올 때도 버스가 금방 왔다. 

예약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자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바로 안내받아 앉을 수 있었고, 바로 다음 날부터 벚꽃 축제를 겸해 뉴트로를 테마로 한 행사를 한다고 알리는 리플렛을 친구님이 챙겨 들고 왔지만 그 어디에도 꽃은 없는데, 그냥 당분간은 술만 마시는 그런 축제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고, 사실 워커힐 벚꽃길이 좋다좋다 하길래 겸사겸사해서 간 것이었는데, 꽃이 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좁은 산골짜기 어디에 벚꽃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인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사실 그 날 여의도 벚꽃은 거의 만개에 가까웠는데, 굳이 휴가를 내고 꽃 없는 산 속을 찾아가서 차만 마시고 온 셈이다. 

사실 차가 좋았으면 모든 것이 다 좋았을텐데 애프터눈티 세트에 덜렁 티백 하나, 그래 뭐 벚꽃을 기대했던 거였으니까 그냥 참고 마셨다. 티푸드도 있으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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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직까지는 오설록 1979가 제일이다. 차나 티푸드로 봤을 때는 워커힐 보다는 메리어트가 더 마음에 든다. 

오동통하고 다소곳해 보이는 멘디지의 프라우나 다기가 나왔는데 아, 배운 사람이었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인 알렉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프라우나 지오메트리카 세트는 이름 그대로 기하학적 형태의 손잡이를 배치하여 전통적인 티팟과 다른 개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실제 사용에 있어 구와 원형 고리 등의 기하학적 형태의 손잡이는 차를 따를 때 주전자의 무게를 안정감있게 지탱해 주고 있다. 

상업성과 기능성에 가려진 가치와 감성, 개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작업을 주로 하시던 분인데, 최근에 돌아 가셨다. 드라마 등에 자주 보이는 라문 아물레또 스탠드 역시 멘디니의 디자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스탠드는 하나 장만하고 싶다. 플라스틱인데 250만원인 프루스트 의자는 사도 놓을 데도 없고 앉으면 불편할 것 같으니 심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굳디자인인 라문 아물레또 정도는 사서 쓰는 것도 괜찮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주자라고 했는데 표현 양식을 보면 최근 디자인이라 그런가 이 주전자에서도 기능주의 디자이너들이 주로 쓰던 기하학적 요소의 표현들이 보이고, 라문 스탠드 역시 거의 미니멀리즘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 같은 디자인인 것은 프루스트 의자처럼 근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재료인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하면서 고전 디자인을 살려낸 그런 차용의 미학은 초기 작업에서만 나타났던 것인가, 반반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겉핥기로 기능주의와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크게 개념만 얼렁뚱땅 공부하는둥 마는둥해서 잘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연대사를 찾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뭐 하나의 스타일에 꽂혀서 죽을때까지 한 가지 작업만 하란 법은 없다. 하다 보면 샛길로 가기도 하고 더 좋은 길을 찾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가끔 정말 기능주의미학이라고 할 법한 모던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뽑아내시긴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특성인 유희나 고전 양식의 차용 외에 멘디니는 산업디자인이 가져 오는 기능 중심적인 건조하고 기계적인 디자인, 몰개성적인 디자인에 반하여 감성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살리고자 노력한 ​사람이었으니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이너가 맞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디자인이 모두 좋지는 않다. 정확성을 추구하면서 재치있는 표현을 살리고자 한 디자인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미감에는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점점 더 군더더기가 싫다.  

곱게 생긴 티푸드들은 모두 곱게 배 속에 저장되었다. 그리고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갑자기 멘디니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게 되다니 꽃이 없고 차가 별로였어도 얻은 게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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