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짜장 떡볶이 먹으러 갔다가 급회식 : 익선동 반기다

d0u0p 2019. 8. 1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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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팀장님의 의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래 셋트 메뉴에 구성되어 있던 항정살 구이를 덜컥 소고기 살치살로 바꿔 버려서 뭔가 하는 수 없이 회식을 할 수 밖에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2019/07/20 - [EATING] - 여름 만두 보신, 익선동 창화당

 

여름 만두 보신, 익선동 창화당

하루라도 만두를 먹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힐 일은 없지만, 당분간 만두를 먹지 않겠다던 결연한 의지는 오간데 없고 창화당 김치 만두 앞에서 굴복하고야 말았다. 한 주가 지난 지금도 다시 사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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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익선동에 들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가 있는 날이었고, 더위를 무릅쓰고 다시 익선동에 가서 짜장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원래의 계획은 익선동 창화당과 광화문 교보문고, 을지로 혜민당까지였는데 날이 정말 더웠고, 주제를 모르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가 코깨진 날이었다. 이미 출발할 때부터 더워서 을지로는 포기하고 우선 창화당에 갔는데, 지난 번과 다르게 대기 목록이 꽉 차 있었다. 부랴부랴 이름을 적어 넣고 새삼 많이 달라진 익선동 풍경도 구경할 겸 더위도 피할겸 주변을 맴맴 돌았다. 두 번 정도 대기 목록을 중간 중간 확인하며 돌았는데 너무 좌석이 나지 않아서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돌다가 다시 가게 문 앞에 갔을 때에는 이미 순서가 한참 지나 있었다. 망했다. 

아직도 헛웃음이 난다. 배가 고픈데다가 너무 더운데, 순서는 지났고, 그 다음 대기 목록은 또 길고, 순식간에 포기했다. 배가 고프기 시작하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점심에 피자를 먹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재빨리 지난 번에 봐 두었던 열 두달에 가 보았는데 역시 자리가 없었다. 포기하고 교보 문고쪽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이미 열 두 달 골목으로 들어와 버린 터라 아예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돌아 나오려다 보니 만나게 된 곳이 "반기다"였다. 

모던 한식 레스토랑이고, 유수 레스토랑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운영하고 계신다고 떡하니 적혀 있으니 믿고 들어갔다. 그나마 자리가 있어서 들어간 것이지, 사실 다른 식당처럼 계속 줄이 길었으면 정말 포기하고 서린낙지가 있는 빌딩 쯤에 가서 아무거나 먹었을 것 같다. 

단품이냐, 세트냐를 고민하는데 팀장님이 세트를 권하셨고, 순식간에 저렴해 보이는 25,000원의 A를 고르고, 메뉴 중간에 38,000원 B세트의 메인인 살치살 구이로 변경가능하다는 글을 반만 읽고 대뜸 살치살 구이로 바꿔 주문을 넣었다. 살치살 구이로 바꾸면 1인당 10,000원씩 추가된다고 분명히 써 있었는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선택한 메뉴 위주로 사진을 찍어 두었더니 B세트 메뉴의 전채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A에 만원 추가하면 B보다 3천원이 저렴한데, 3천원만큼 비싼 전채가 있는 것 같다. 살짝 Beef라는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A는 전부 돼지고기, B는 전부 소고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옆 자리에서 항정살 구이와 모둠쌈으로 드시는 것도 맛있어 보였다. 소보다 돼지고기나 양고기가 조금 더 소화하기 편하지만 무더위에 고생도 했고, 특별한 메뉴 먹고 싶어서 호기롭게 바꿔 보았다. 실은 계산도 하려고 객기 부린 것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회식이라며 결국 회식비로 계산이 되고야 말았다. 팀장님, 잘 먹었습니다. 

족발 싫어하신다는 팀장님도 전채에 나온 돈족편은 맛있게 잘 드셨다. 내 입에도 잘 맞았다. 유자 소스가 과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부드럽고 맛있었다. 함께 나온 쌀막걸리 칵테일로 보이는 식전주와 아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깻잎 페스토와 함께 살치살 스테이크를 받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정말 맛있었다. 

식사 메뉴로는 된장 양념 닭다리살 비빔밥과 차가운 물회소스 해산물 파스타를 선택했다. 된장 양념 닭다리살 비빔밥은 생각보다는 인상깊은 맛은 아니었으나 물회소스 해산물 파스타는 이름이 파스타일 뿐이지, 우리나라식 소면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면이 엔젤스 헤어라고 불리는 카펠리니 면이었다. 집에서 가볍게 카펠리니로 오일파스타를 해 먹은 적이 있어서 면의 종류를 금방 알 수 있었는데, 물회소스와의 조합이 새로왔다. 야채나 해산물이 모두 소스랑 적당히 궁합이 맞았다. 깻잎과 소라와 소고기의 맛이 각자 춤추던 솜씨의 물회와 오이와 당근이 뻣뻣해서 싸우자던 연안식당의 물회가 떠올랐다. 

2019/08/03 - [EATING] - 여의도 직장인 점심 : 여름이니까 물회

 

여의도 직장인 점심 : 여름이니까 물회

팀장님이 계시지 않는 날, 혼자 실컷 꼬막비빔밥을 먹겠다며 연안식당에 찾아갔는데 그동안 못 보던 새로운 메뉴들이 많이 생겼고 그 중 1인 물회를 주문해 보았다. 여름이니까 물회다. 그러고보니 솜씨에 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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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리니라니, 봉포머구리 식당에 물회 주문해서 넣어 먹어 보고 싶어졌지만 그 마음은 고이 접어 서랍 속에 가둬 둔다. 어차피 면 사고 삶고 헹구고 귀찮아서 안할 것이 뻔하니까, 비빔면이나 넣어먹고 말 것이 뻔하니까, 그런 마음은 잘 접어 모셔 둔다. 

음식도 다 좋았지만 의외로 커트러리에서 식당에 쏟는 정성이 느껴져서 더 좋았는데, 무심코 볼 때에는 큐티폴이겠거니  했다가,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니었다. 중국산이라고 아주 작게 적혀져 있었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 나이프가 모두 동일한 세트 구성같아 보였는데,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았다. 포크 나이프는 같은 제품인 느낌이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아마도 비슷한 느낌의 제품을 찾아내신 것 같다. 정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신경 안쓸지도 모르는 커트러리를 세심하게 준비하느라 애쓰셨겠구나 그런 생각에 음식들이 조금 더 맛있어졌다. 

여름에 한 번 더 방문하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음료 쿠폰을 받아 들고 나왔는데, 진짜 덥긴 더웠기 때문에 여름에는 또 못 갈 것 같다. 주신 안내지에 보면 반기다 외에도 다른 식당들에 대한 안내가 있었는데, 가 보겠다고 마음만 먹고 아직 못 가본 디미방과 간판없는 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창화당 가려고 대기하며 골목을 돌다가 간판 없는 가게 앞에서 긴 줄을 보고 간판은 없는데 메뉴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열 두 달은 이미 미해결 게슈탈트에서 사라져 버렸고, 간판없는 가게와 디미방, 창화당 짜장떡볶이가 다시 전경으로 등장했다. 더위가 가실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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