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밥심으로 달래는 낙심 (1) 익선동

d0u0p 2019. 1. 1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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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낙심한 마음을 달래 주시겠다며 팀장님이 온종일 물심양면으로 돌봐 주셨는데, 저녁으로 함께 익선동까지 다녀왔다. 그동안 꾹 참고 있었던 창화당의 김치만두를 먹으려고 길을 나섰으나 애석하게도 그 날은 창화당이 쉬는 날이었다.

2018/04/13 - [EATING] - [만두홀릭회식] 익선동 맛집 창화당  

점심도 잘 먹고 종일 잘 먹은 느낌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에 분식을 먹으려 했던 것이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 대신할 메뉴를 물색하느라고 골목 골목을 돌다가 남도분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줄이 길었다. 서촌에도 있다 하고 서촌은 줄도 안 서는 것 같은데 익선동이라 줄을 서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골목 안쪽에는 정말 줄이 긴 태국 음식점과 가벼움과는 거리가 먼 한식 레스토랑들이 있었고, 피자나 파스타를 하는 식당들이 꽤 많았다. 피자 파스타 메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식상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따져보면 정말 익선동다운 메뉴라고 할 만한 메뉴는 그리 많지 않아서 원하는 분식을 먹기로 결정하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날이 꽤 쌀쌀해서 잠깐 순서 보고 잠깐 골목 좀 돌고, 파운드케익 매장 구경하고, 찜빵집 구경하고 다시 돌아와서 순서 보고 30분 정도는 기다렸다. 

​팀장님은 가족들과의 식사를 기준으로 메뉴를 푸짐하게 주문하시는 경향이 있어서 둘이 먹기에는 과하다 싶게 주문될 때가 가끔 있다. 남도분식에서도 제육쌈김밥과 물떡, 콩불떡볶이, 비빔당면까지 먹고 싶은 대로 골라보다 보니 꽤 많았는데 많지 않다하시어 호기롭게 모두 주문해서 열심히 먹었다. 

제육쌈김밥의 김밥은 겨자 소스가 함께 나왔는데, 누가 생각한 것인지 밋밋한 김밥에 겨자 소스는 정말 신의 한수랄까, 그냥 먹는 것과 소스와 함께 먹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나는 겨자 맛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물떡은 티비에서 보고 새로운 메뉴라 먹어 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딱히 새로운 맛은 아니었고, 떡볶이와 비빔당면도 딱히 감동적이거나 또 생각나서 먹으러 가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꼭 창화당에 가서 만두를 먹겠다.

​그리고 전에 봐 두었던 한옥집을 개조한 찻집인 미담헌에 드디어 갔는데, 따뜻한 온돌바닥에 좌정하고 앉을 수 있고, 마당도 좋았는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고, 결정적으로 차가 문제였다. 그냥 시판 브랜드 티백인데다가 머그도 없어서 종이컵에 받아서 한식 교자상 위에 올려두고 마시자니 즐겁지만은 않았다. 따뜻한 방에 앉을 수 있었다는 것만 좋았다. 미담헌도 다시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남도분식 앞에서 기다리면서 둘러본 파운드케이크 가게인 경성과자점에서 팀장님은 비싸다고 타박하시지만 재료를 생각하면 그 정도 가격일 수 있음이 수긍이 되는 싸지 않은 가격의 파운드케이크를 두 개 사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먹을까 했었는데, 과식을 한 나머지 파운드케이크는 차마 손댈 수가 없어서 다음 날 사무실에서 먹었다. 살 찌는 소리가 들린다. 바스락 거리며 포장지를 까서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보통 프랜차이즈 빵가게의 대충 빵은 단 맛만 강하고 버터풍미도 거의 없어서 사실은 내 입에 맞게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설탕 줄이고 좋은 재료 넣어서 베이킹을 열심히 하던 때도 있었는데, 하다 보니 자꾸 병이 났다. 냄새에 지레 질리고 과정이 수고롭다 보니 막상 먹으려고 할 때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 수고로움까지 생각하면 싸지 않은 가격일지라도 다른 사람 손 빌려 먹는 것이니 고맙게 먹게 된다. 맛이나 질에 민감하지 않으신 팀장님은 물론 우선순위가 가격이지만, 가물에 콩나듯 가끔 아주 조금씩 군것질하는 내게는 - 요즘은 군것질이 늘어서 팀장님이 비웃고 계실 수도 있지만 - 감내할 수 있을만한 가격이다. 

역시 남도분식 앞에서 대기하면서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다가 발견한 카페온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메뉴를 보았는데, 엄마마마님이 좋아하실 법한 메뉴라 집에 포장해 가기로 했다. ​경성과자점 파운드케이크 가격은 괜찮았는데 사실 대나무 찜빵 가격은 과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대나무 잎에 곱게 싼 빵이 육천원이었는데, 가격이야 뭐 그렇다 치고 포장하겠다 하니, 찌는데 시간이 걸리고, 바로 먹지 않으면 딱딱해 지니 나중에 드실 거면 쪄지지 않은 빵으로 포장해 주겠다며, 쪄서 먹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해서 약간 의아하였지만 일단 먹어 보기로 하고, 밤이 깊었으니 저녁에는 안 드실 것 같아서 그냥 주시라 했다. 찌지 않은 빵을 포장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싶어서 또 다시 의아했지만 집에 가서 열어 보니 브랜드 스티커를 붙이고 대나무로 감싸고 끈으로 리본을 묶어서 포장을 세개나 하느라 오래 걸렸나 보다. 받을 때 먹는 법에 대해 알려 준다며 찜통에 쪄도 되고 전자렌지에 돌려도 된다더니 찜통에서 8분, 전자레인지에도 8분을 돌리는데 물을 한 컵 넣어서 돌리라는 간단치 않은 방법을 알려주셔서 약간 심란해졌다. 엄마마님께 말씀드려봐야 마음대로 해 드실 것 같았고, 정말 그 날 저녁에 엄마마마님은 귀찮다며 하나를 그 자리에서 그냥 드셨다. 완전히 날 것은 아니고 1차로 쪄 있던 빵을 다시 포장해 준것이라 다행히 먹을 수는 있는 정도였지만 카페에서 바로 내 주는, 카페에서 권장하는 그 느낌의 빵은 무시하시고 드셨다. 내가 생각해도 번거롭다. 

남은 빵은 이틀 뒤에 찜통에 쪄서 다시 먹게 되었는데 카페에서 가득하게 느껴지던 대나무향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빵 안에 앙꼬가 없다. 앙꼬 대신 곁들여 먹는 앙꼬를 별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대나무향보다는 부드러운 우유 느낌이 진하게 나서 빵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찜빵을 먹을 때 마침 새로 나온 마라핫치킨과 함께 먹게 되어서 앙꼬 없이 잘 먹었지만 앙꼬도 들어 있지 않은 우유찜빵이 육천원인 것은 과하긴 과하다. 편의점에서 야채소 들어 있는 야채호빵 네 개 먹는 게 낫겠다. 

창화당이랑 경성과자점의 파운드케이크만 가끔 생각날 것 같다. 

다음엔 동양과자점에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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