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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의 진상 고객이었다.

d0u0p 2018. 4. 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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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가 좋았다. 언제 어느 매장에 가더라도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며 내가 지금 마시고 싶은 맛을 재현하여 같은 커피를 내 줘서 좋았다. 그게 바로 우유나 생크림이 가득 들어간 음료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다. 

엔제리너스가 처음 생겼을 때, 첫 날 마신 첫 커피는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몇 일 뒤 다시 찾아 갔지만 처음과 전혀 다른 맛의 커피를 줘서 나의 기대를 실망시켰다. 그 이후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시는 자발적으로 엔제리너스를 가지 않았다. 꽤 시간이 흘렀고, 아마도 적어도 십년은 되지 않았을까? 이제 엔제리너스에서도 스페셜티 싱글 오리진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사무실에서 제일 가까운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이 엔제리너스이지만 가리지 않고 가고 있다. 

커피의 신 맛을 몰랐을 때라면 아마도 싱글 오리진이었어도 뜨악하고 다시 마시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는 커피의 상큼한 신 맛이 생각날 때가 있고,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그 상큼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요즘들어 논란 많은 스타벅스 더는 가지 않으려고 노력중이기는 하지만, 출근해서 사무실에 도착하기 까지 스타벅스가 아닌 프랜차이즈 매장이 거의 없다. 사무실 빌딩 1층에 위치한 엔제리너스가 유일하다. 

처음 이쪽으로 출근하고 나서는 지하철을 내리자 마자 위치한 빌딩 1층 명당에 자리잡은 스타벅스에 자주 갔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세이렌 오더를 사용하면 매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커피가 나와있고 바로 들고 갈 수 있어서 매우 편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립 커피가 생각나는 날이었고, 그 달의 데이터를 모두 소진해 버린 나는 앱으로 주문을 할 수 없었고 직접 주문대로 가야 했다. 오늘의 커피 작은 잔을 주문했다. 늘 그렇듯 드립 커피가 남아있을때는 바로 받을 수 있지만 그날은 새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 5분 정도 걸릴 예정이라고 카운터에서 이야기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린지 5분이 지났고, 커피가 나올 시간이 지난 것 같아서 다른 주문 번호들은 몇 번 쯤 되었나 신경써서 듣고 있었는데 내 순서가 지나쳤는데 내 주문번호는 부르지 않았다. 아직 커피가 덜 내려져서 그럴 수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았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주문에서 나와 같은 베이스의 음료가 나온 것을 발견했다.

주문이 누락됬을까 싶어 커피를 받는 곳으로 가서 잠시 틈을 타 커피가 나오지 않는다 하였더니 주문번호를 묻는다. 번호를 듣고는 포스를 잠시 들여다 보더니 갸우뚱하며 나오면 불러 드릴테니 기다리고 계시라 한다. 나는 이미 5분도 훨씬 넘게 기다린 시점이었고 같은 음료를 나중에 주문한 사람이 커피를 받아 나가는 것을 보았으므로 내 커피도 금방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앞에서 잠시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서버는 자기 앞에 나와 있는 내 커피였던 오늘의 커피를 발견하지 못했고, 주문이 누락된 상황인지 더 이상 확인 하지 않은 채로 나오는 메뉴만 서빙하고 있었고, 나는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가 싶어서, 커피는 어떻게 된 거냐 하니 그제서야 무슨 음료를 주문하였냐 묻는다. 오늘의 커피를 주문했다고 하니 매뉴얼대로 5분 기다리셔야 한다고 읊는다. 여기서 내가 짜증이 안 날 수 있는가,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5분 더 전에 그 이야기는 들었고, 5분이 훨씬 지났고 같은 종류의 음료를 주문한 다른 손님은 커피를 받았다고 하니 그제서야 서버는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있던 주문 번호 없는 커피잔을 살펴 보더니 냉큼 건네 주었다. 받자마자 컨디먼트로 가서 설탕을 넣으며 곰곰 생각해 보니 서버가 분명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외면하고, 누락된 주문 건에 대해 확인하는 시늉조차 안하고 본인 앞에 놓인 커피도 확인하지 않고 늦게서야 커피를 내 준 상황인데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데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서버에게 가서 사과도 요구하고, 전후를 확인하고 싶어 다시 돌아가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났고, 포스에 내 주문 번호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라고 물으니 그제서야 시스템 오류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대답 역시, 시스템이 잘 못 했지 나는 잘 못 한 것이 없다는 말투여서 화를 더 돋구게 되었다. 시스템은 물론 잘 못 될 수 있다. 누락되었겠지, 누락인 것 같은 상황 판단을 한 시점에 바로 주문을 다시 확인을 했어야 하고, 누락인 것 같으니 확인하겠다 하고 본인 앞에 이미 나와 있는 커피를 줬어야 하지 않는가, 오류였든 뭐였든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확인을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기다리게 해 놓고 잘 못 하게 전혀 없다는 표정이라서 욱하는 마음에 큰 소리를 냈고, 결국 매니저가 달려 왔다. 

매니저는 상황을 잘 모르니 설명해 달라 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됐던지 무조건 자기 잘못이며, 자기 책임이고, 자기가 교육을 잘 못 시킨 탓이라며 사과했다. 서버의 반응에 대한 나의 대답을 듣고 지그시 아랫입술을 꽉 깨무시는 것으로 보아 이 사건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그 서버의 행동이 어땠을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사과의 주체는 매니저로 넘어왔고, 매니저는 쓸 모 없는 음료 쿠폰을 뽑아 들고 나와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그 매장 아니고 다른 곳에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니 부담없이 가져가시라 하셨지만, 이게 음료 쿠폰으로 해결될 일인가 모르겠다. 커피 한 잔 사 마실 돈 없는 것도 아니고, 이제 스타벅스 대신할 커피브랜드는 널리고 널렸다. 쿠폰은 부득불 사양했고, 교육을 단단히 시키겠노라 하는 다짐을 받았지만 사실 매일 그 매장 근처를 지나 출근하는 나로서는 교육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닐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그 매니저는 서버 교육을 무슨 내용을 어떻게 시켰을까가 궁금하다. 처음 몇 일은 교육 내용에 관련된 문건을 메일로라도 받겠다고 할 걸 그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스타벅스가 가진 문제가 아니라 그 서버가 대충 생각 없이 알바하러 나온 눈치없는 남성인 탓일수 있다. 어딜 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특히 서빙 알바는 눈치가 없으면 힘든 법인데, 가끔 전혀 눈치도 요령도 없는 남자 알바생들의 이상한 서비스를 보면서 불편한적이 많았었는데 아마도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그 나이 먹도록 그렇게 자라온 그를 매니저가 뭐라고 어떻게 교육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일까. 서비스에 대한 무의미한 교육과 직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  그리고 다 큰 어른을 교육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점이 스타벅스의 문제일 수는 있겠다.  

흥분해서 큰 소리를 낸 건 잘 못 했지만,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 하더라도 침착한 행동이 될까 싶다. 다만 끝까지 본인의 잘못이 뭔지 모르는 둔한 서버 앞에서 먼저 화를 내 버린 내가 바보고, 내가 진 상황인 것이다. 그 서버는 어딜 가서든 그날 아침 만난 진상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이 근처는 그 매장 말고도 스타벅스 매장이 두 군데나 더 있고, 엔제리너스와 편의점 커피까지 다양하게 있어서 사실 그 매장을 다시 안 가는 지금도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인종차별에 동양인 비하 의식 무성한 그 브랜드를 멀리하고 싶은데 다양한 선택지 중에 반 정도는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있어서 오히려 심기가 불편해 졌다. 

빨리 인텔리젠시아며 알레그리아, 리브레, 프리츠 등 다양한 브랜드들의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다른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기분 좋게 커피를 골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엔제리너스를 불가피한 상황이면 가지 않는 것처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스타벅스를 가지 않을 것이므로 저에게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그동안 선물하셨던 분들은 고맙지만 다른 브랜드 커피 마실 거니까 이제 그만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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