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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플레이 E8

d0u0p 2018. 5. 1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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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했다. 

처음으로 SI 프로젝트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건물 한 층의 반 이상을 비우고 책상과 전원, 컴퓨터를 빽빽해 채워 넣은 그 곳에는 백 여 명의 다양한 (대부분) 아저씨들이 모여서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일하는 곳이었다.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웠다. 회의하는 소리, 못 하겠다 앓는 소리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사무실 내에서 담소를 나누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웃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클라이언트 측 직원들은 웃을 수 있었다. 월급 받기 위해 파견 나와서 또는 계약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컴퓨터 앞 코 박은 백 여 명의 다양한 일꾼들은 웃지 않았다. 총괄 피엠은 시시콜콜한 날씨 이야기를 여자 직원들하고만 하려고 했다. 그룹장은 걸어다닐 때에도 시선이 스마트폰에 있었고, 사업관리하는 직원은 자신이 할 일이 있는데 내가 일찍 출근해서 그 일을 방해받게 되자 ‘왜 이렇게 일찍 와’라며 혼잣말을 들리게 했다. 혼잣말은 안 들리게 하시는 거라고 충고라도 해 줄까 했지만 내 인생 아니니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계속 그렇게 살겠지. 내가 하지 않아도 그 일 말고도 다양한 일로 많이 까일테니까 나는 그의 삶에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인사 나누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4개월 계약 했으니 계약된 기간만 채우고 나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들 역시 그렇다. 백 여 명이 모여 있는데 모두 그렇다. 교과서에서 보던 인간소외가 산업화와 공장의 기계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곳에서 나는 내 일에 몰두해야 했고, 하루 종일 들려오는 소음을 피하려면 귀마개가 필요했다. 닥터드레를 사용하다가 아이폰을 바꾸면서 이어폰 단자가 본의아니게 변경 된 이후로 음질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운 젠더를 사용하기도 싫었다. 

동생이 광군절에 특별히 할인하는 제이버드를 사서 주었을 때도 실은 B&O의 이어폰이 갖고 싶었지만, 감지덕지하며 받았다. 2017/01/10 - [SHOWPPING] - 광군절 특별할인 JAYBIRD X2 

처음에는 컴플라이 폼팁 덕인지 그럭저럭 쓸 만 했다. 한동안은 이어폰 쓸 일이 없어 쓰지 않다가 다시 꺼냈을 때는 왜인지 불편했다. 걷다 보면 뒷 목에 걸쳐진 선이 목에 닿게 되면서 한 쪽 이어폰이 빠져 나오는 경우가 왕왕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더 이상 쓰지 않겠다 생각 하게 된 것은 배터리 때문이었다. 사용하지 않아도 배터리 소모가 많이 되는 편이어서 전날 조금 사용하다가 그냥 뒀을 뿐인데 다시 충전해 두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아침마다 전원이 안 들어와 허탕을 치고 다시 충전을 하자니 이어폰 한쪽의 캡을 열어서 선을 연결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고 닫는 일도 까다로웠고 가뜩이나 쓰려고 하면 방전된 상태라 충전을 하려고 하면 캡이 또 가로막는 격이니 짜증이 안날 수가 없었다. 이럴거면 그냥 젠더와 예전 닥터드레를 다시 쓰는 게 낫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이어폰은 급할 게 없었으니 한 동안은 잊고 지냈었는데 의외의 장소, 의외의 상황에서 귀를 막을 도구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월급을 받고 있고, 추위와 냄새나는 지옥철을 견디며 하루 하루 일하는 나에게 그 정도 선물은 해도 될 것 같았다. 

때 타지 않는 색으로 골랐다. 컴플라이 폼팁을 썼다가 도로 실리콘 팁으로 바꿨다. 충전하는 곳이 개방되어 있어 속이 후련하다. 컨테이너의 배터리 잔량도 표시된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지.

음질이 다가 아니다. 물론 전에 쓰던 것 보다 확실히 귀가 트이는 느낌이라 속이 시원했고, 무엇보다 충전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실제 적혀 있는 스펙보다 훨씬 오래 유지되는 느낌이다. 직접 충전이 아니고 케이스 자체에서도 자체 충전으로 전원 공급 여유분을 가지고 있고 케이스에 바로 전원을 연결하여 충전하는 일은 너무 간단하고 쉬웠다. 

물론 한 달 쯤 지나 꺼내면 방전 되어 있는 상태인 건 뭐 똑같다. 

파견이 끝나고 복귀한 사무실은 더 이상 귀마개가 필요 없는 곳이다. 지금은 겨우 4개월 쓰려고 샀나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어폰 없이 견딜 수 없던 엄혹한 세월이었고 구세주같은 제품이다. 그렇더라도 다시 이 이어폰이 절실히 필요한 그런 공간에서 일하지 않기 바란다. 

출근 길이 멀기라도 하면 사용할텐데 출근 길도 짧아 못 쓰지만 번잡한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 옆 자리 이야기에 간섭하고 싶지 않을 때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신통방통한 기능이 있어 가끔씩 쓰고 있다.

+) 아이패드에서 웹사이트 모드 티스토리로 글을 작성했더니 폰트며 문단속성이며 엉망징창이 되어 버려서 벌써 다섯 번 째 수정 중인데 HTML을 까보니 정말 말도 안되는 태그가 중첩되어 있었다. 주로 베어로 글을 작성해 두고 나중에 다시 편집하고 있는데, 베어에서 태그가 딸려 온 것인지, 아이패드 사파리 환경에서 글을 작성할 때 에디터 상태가 이상한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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