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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직장인 점심 : 마파두부를 찾아서

d0u0p 2020. 7. 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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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국에 여행을 갔을 때가 세기 말 2000년이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훠궈에 말고기도 익혀서 잘 먹었고, 라즈지와 비슷한 라지아오지띵과 사랑에 빠졌고, 상하이에서 만난 마파두부에 홀딱 반하게 되었던 여행이었다. 일반 단체 관광으로 다녀왔더라면 일반적인 식당에서 관광객들이 단체로 먹는 느끼한 중국음식 앞에서 울면서 젓가락만 깨작대다 돌아왔을텐데 지금의 팀장님과 나는 오지라면 오지였을 그 옛날 중국을 운 좋게 자유 여행으로 떠났고, 더더군다나 맘 착한 한국분들께서 중국 요리 중에 특히 한국 사람 입맛에 딱 맞는 음식만 골라서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덕에 부족함 없는 여행이 되었더랬다. 세월이 한참 흘러 동생이 북경에 살게 되서 여러 번 들렀을 때에도 중국 요리를 즐기지 아니하는 동생의 까다로운 입맛 덕에 부담스러운 중국 음식은 자연스럽게 비껴갈 수 있었고, 언제 들러도 잊지 않고 스촨 스타일의 요리는 꼭 챙겨 먹고 올 수 있었다. 한한령 이후 자연스럽게 동생도 철수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지금은 더 이상 찐 스촨 스타일의 마파두부와 왕징 최고의 마라탕 맛집의 마라탕을 먹기 위해 북경에 다시 갈 수는 없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만들어 주시는 한국식 마파두부 말고 스촨식이 먹고싶다.

지난 번에 동생이 시추안에서 마파두부를 먹고 중국의 맛과 비슷했는지 남은 마파두부를 포장해다 주었는데 얼추 스촨식이라 괜찮았다. 그러나, 시추안은 사무실에서 거리도 있고, 이미 시추안에서 코스를 한 번 드셔 보신 팀장님은 얼마나 맛 없는 메뉴만으로 구성된 코스를 드셨는지 맛 없어서 싫다 하시는데다가, 얼얼하고 화끈한 마라향 또한 좋아하지 않으시니 선뜻 가자고 졸라댈 수 없어 한 번도 못 가 봤는데, 시추안은 어느 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제 영등포에도 여의도에도 스촨을 먹을 수 있는 시추안하우스는 없다.

마파두부는 이제 어디 가서 먹어야 하나?

1. 신메뉴로 마파두부 덮밥 정식이 있던 ASAP 키친 & 바 

처음 갔을 때에는 메인인 함박을 먹어야 했으니 일단 함박을 먹고 왔고, 신메뉴인 마파두부 덮밥 정식이 궁금하니 한 번 더 갔다. 팀장님은 한가득 밥을 든든하게 말아 올린 오므라이스를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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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소복하게 담긴 밥과 푸짐한 마파두부들이 보기에는 훌륭했다. 정통 스촨이 아닌 맛이라 맛이 없다고 하기에는 식당 고유의 맛이 느껴지는 적당한 맛이었는데 가장 애매한 부분은 참깨였다. 아지노모토에서도 마파두부 덮밥 소스를 만들어 팔고 있으니 일본 사람들도 나름의 마파두부 덮밥을 즐겨 먹고 있나보다 생각하고 있었고, 메뉴 이름도 굳이 덮밥이 붙어 있으니 일본 풍 맛이려나 생각하고 한 입 물었는데 고소한 참깨 향이 너무 강해서 영락없는 또 다른 한국형 마파두부일 수 밖에 없었다. 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삭한 샐러드가 함께인 것은 좋았지만 마와 라는 느끼기 어려웠다. 

2. 유산슬이 등장했던 열빈의 월요일 특선메뉴는 마파두부다. 

오래되고 오래된 중국집인 열빈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십 년 전에는 주변에 중국집이라고 할 만한 중국집은 열빈밖에 없었고, 짜장면, 짬뽕은 대체로 열빈에서 먹었고, 코스요리로 회식을 하기도 했었다. 요즘은 일반적인 메뉴들은 신희궁에 가거나 밍에 가서 먹으니 열빈은 더더욱 가 볼 일이 없었는데 빌딩 앞을 지나가면서 요일별 균일가 특선메뉴 중 월요일 메뉴가 마파두부인 것을 보고는 도전해 보기로 했다. 

 

 

팀장님은 짬뽕을 드셨는데, 예전 짬뽕 그대로이긴 했는데 이제는 더 맛 있는 짬뽕집이 너무나 많다. 마파두부는 한국의 중국집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 주시는 한국식 마파두부의 정석이었다. 실망도 안실망도 아닌 보통이 맛이었다. 마라 느낌보다는 약간 깐풍기 소스 느낌도 있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두반장같은 중국 장의 느낌도 있었다. 8,000원 균일가로 먹기에는 적당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정가 10,000원으로 먹기에는 아쉬운 소리 나올 것 같다. 

  • 월요일 : 마파두부밥
  • 화요일 : 중화덮밥
  • 수요일 : 버섯덮밥
  • 목요일 : 라조기덮밥
  • 금요일 : 난자완스덮밥

3. 훠궈가 맛있다는 불이아 

급작스럽게 매드포갈릭에 가서 파스타를 먹었던 날, 매드포갈릭 건너 편에 있던 못 보던 식당이 있어서 메뉴를 들여다 보니 마라탕과 마파두부가 있었다. 처음 보는 식당이니 돌아 와서 검색을 해 보니 훠궈가 괜찮다고들 하고, 마라탕을 짜게 드신 분들은 보이는데, 마파두부를 드신 분의 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궁금하니 직접 먹어 볼 수 밖에. 마라탕이 짜다는 부분에서 이미 물음표가 떠서 그냥 점심 특선 훠궈를 먹어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마파두부가 요즘 최대 관심사라 마파두부를 먹기로 했다. 팀장님은 또 애매한 새우볶음밥을 드셨다. 괜히 이쪽 저쪽 끌려다니시며 참고 아무거나 드시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에이쎕이 그나마 다른 메뉴가 드실만 해서 괜찮았을 것 같다. 

  • 불이아 점심 특선 훠궈 18,000원
  • 마라탕면 9,000원
  • 자장면 9,000원
  • 탄탄면 9,000원
  • 마파두부덮밥 9,000원
  • 새우볶음밥 9,000원 

일단 알싸한 마라 느낌이 있는 마파두부를 찾기는 찾았다고 해야 할까, 마라 느낌이 정말 희미하게 난다. 절묘하게 한국식과 스촨식의 딱 중간이면서 마와 라가 있긴 있는데 긴가민가할 정도로 적게 들어 있고, 소스는 역시 녹말을 약간 풀었을 법한 소스였는데 조금 짜긴 짰다. 마라탕도 이 정도로 짤까 궁금하다. 왕징의 애정 마라탕은 정말 맛있던데, 한국에서는 아직 제대로 맛있는 마라탕이며 마라샹궈며 마파두부를 만날 수가 없었다. 대체로 짠 맛이 강했다. 그냥 중국 식료품점에서 판매하는 일반 마라소스만 넣고 고기를 볶아도 맛있던데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짠 맛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일까. 심지어 마라롱샤도 한국에서 먹을 때에는 짠 맛이 강했던 것 같다. 

 

 

짜서 두부를 과감하게 먹을 수 없었지만 대신 밥이랑 맞춰 적당히 잘 먹었다. 마라 느낌이야 불호인 사람들이 많아서 줄였다 쳐도 간은 만국공통인데 조금만 덜 짜게 해주시면 열심히 먹으러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훠궈도 훠궈지만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뒷 편에 있는 메뉴들을 보고 너무 반가웠었는데, 특히 마라 기름에 바싹 튀긴 새우 요리인 샹라시아와 라즈지, 두부피에 파와 춘장을 곁들여 볶은 돼지고기를 싸 먹는 경장육사 (=칭장로쓰)까지 있어서 꼭 반드시 또 가겠다고 다짐하며 나왔다. 샹라시아 포장해다 신나게 먹고 싶다. 동생이 북경에서 처음 포장해다 줬을 때 진짜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뻔 했는데 비슷한 맛일지 정말 궁금하다. 팀장님 몰래 도전하러 가야지.

그러나저러나 마파두부 찾아 이렇게 다녔는데도 마음에 쏙 드는 마파두부는 없었으니 마파두부는 대체 어디서 먹어야 하나 모르겠다.
마파두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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