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PEN & PENCIL

이제는 절판된 비아르쿠 수채 흑연 리뷰

d0u0p 2020. 6. 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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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가 언젠데, 이제야 최초 사용기를 적어 내고 있느냐며 일단 자책해 본다. 못 해도 일년은 넘게 방 구석 책장 한 켠에 쳐박아 두었던 것을 이제야 꺼내서 스케치 연습을 하기로 했다. 

발레리 옥슬리의 연습법을 적어서 붙여 놓으니 딱 좋다. 예비 연습부터 해 보려고 했는데 실제 식물을 보고 그릴 기회가 많지 않다. 식물을 보고 그리는 상황이라면, 내가 밖에 있던가, 식물을 안으로 들고 오던가인데, 그 어떤 상황도 쉽지 않다. 제일 좋은 방법은 꽃집에서 꽃을 사들고 오는 일이지만 그나마도 사들고 왔다고 바로 그림을 그리겠다며 판을 펼치기 쉽지 않으니 대체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고 그리게 된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면을 돌려가며 빠르게 훑어 확인하는 연습을 못하고 있다. 콘투어 드로잉 역시 다른 도구로 해 보겠다며 미뤄두고 있고 결국 마음가는 대로 그려 보고 있다. 

포르투칼 브랜드인 비아르쿠를 처음 온라인에서 보았을 때에는 드로잉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냥 좋은 연필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으며, 몇 년 지나이렇게 잘 갖추어진 아트그라프 셋트를 보았을 때에는 혹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여전히 내가 이걸 가져 뭐에 쓰겠냐며 탐나지만 미뤄두었던 것이었다. 또 몇 년이 지나 그림을 좀 그려 볼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그 옛날 보았던, 탐냈던 아트그라프를 찾아 보니 이 박스 세트 외에 비아르쿠의 다른 많은 제품들이 거의 판매가 중단된 상태였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이상 수입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서 살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게 포기를 했다가 또 한참 지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으니 문구를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 중 한 군데에서 비아르쿠를 취급하고 있었다. 아트그라프도 있었다. 두 번 망설일 것 없이 바로 구매를 했다. 

수성 흑연이라니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했던 것이었는데 막상 받고 나서는 선 한 번 그어보고 치워뒀던 것이다. 아마도 화려한 보타니컬 수채화에 한참 빠지기 시작한 때이며 일을 다시 시작하던 때라 그랬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금은 비아르쿠 아트그라프는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다. 

내부 구성을 자세히 보면 수성 흑연이 들어 있는 틴케이스 하나와 에스코다의 휴대용 붓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수채화용 붓 한자루, 2B와 6B 연필이 한 자루씩, A6 사이즈의 드로잉패드가 들어 있다. 그리고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그릴 때 유용한 마그넷이 들어 있다. 뚜껑 하단에 붙어 있는 자석을 상단에 고정시킬 수 있게 처리되어 있다. 

대체로 6B를 사용한 개나리

그러나 그림은 대체로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들이라 마그넷 장치를 쓸 일은 거의 없고, 사진을 그 위치에 붙인다 해도 이 작은 상자에 붙은 그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디테일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몇 년에 걸쳐 힘들게 얻은 도구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모셔두었다가 이제 다시 꺼내서 쓰자니 또 다른 불편함이 새삼 느껴졌다. 연필 깎기와 지우개를 케이스 안에 함께 보관하고 싶은데 아끼는 황동 연필깎기가 3밀리미터 정도 높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이동과 휴대가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필수 아이템인 연필과 지우개를 따로 보관해서 가지고 다녀야 하니 번거롭게 느껴졌다. 어제까지는.

어제까지는 그랬다. 연필깎기를 넣을 수 없어서 이 케이스를 더 파내야 할까, 더 작은 연필깎기를 찾아 보아야 할까 온갖 궁리를 하다가 연필깎기 쇼핑을 시작하니 더 아름다운 연필깎기가 눈에 들어와 엄하게도 사이즈가 전혀 맞지 않는 그 연필깎기를 구매하기까지 했는데, 책상 한 켠에 치워 둔 박스 모서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게 왜 구멍이 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 뒷 쪽에 있는 칼을 발견했다. 제품 설명에서 보았는데 그간 잊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예 메모리 속에 들어가지 않았던 내용일 수도 있다. 놀라운 발견을 이제서야 하고 말았다. 

새로 산 연필깎기는 그래도 아름다우니까 그냥 쓰기로 한다. 

새 연필깎기를 발견하게 해 줬으니 고마워 하자. 비아르쿠는 비아르쿠대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지우개 역시 톰보의 정밀 지우개를 사서 넣고 싶은데 연필을 하나 포기하면 그 공간에 쏙 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B연필보다는 6B가 조금 더 이 도구에 어울리는 느낌의 그림이 나오는 것 같다. 아무리 구성이 좋아도 역시 필통 하나는 더 필요하겠다. 종이도 얼른 소진하고 수채화용 패드로 넣어주고 싶다.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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