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기법이었나 전공 과목 중에 다양한 표현 기법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해야 하는 과목이 있었고, 다행히도 일러스트레이션을 모아 발간하는 애뉴얼 북이 집에 있어서 큰 돈 들여 책을 사지 않아도 참고할 자료가 있었다. 과제를 하면서 참고 삼아 들여다 보면서 특히 선으로 그려낸 일러스트레이션들이 눈에 띄었는데, 가늘고 굵은 다양한 선을 사용해서 명암을 표현하는 그림들이었고, 볼 때 마다 정말 손으로 일일히 선을 그려서 작업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시도해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기초 디자인 시간에 5mm간격으로 모눈을 그리고 각 모눈 구역에 해당하는 명암을 검정 색 원의 크기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는 지쳐 나가 떨어졌던 기억이 있으니 선을 그리는 작업 역시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근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펜 스케치 마스터 콜렉션을 읽으며 그 때 궁금해 하던 작업들이 실제로 이렇게 가늘고 작은 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왠지 모를 도전 정신이 생겼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해 유별나게 자존감이 낮은 나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미술 시간에 했던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고, 점수도 늘 잘 받았고, 더 어릴 때에는 그림으로 상도 받았으면서도 그 상이 그림을 잘 그려서 받는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전공으로 디자인을 선택했으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관찰하고 스케치하고 채색하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었고, 뒤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터라 기본적인 순수 회화에 가까운 표현기법 쪽으로는 늘 자존감이 낮았다. 내게는 작업하는 그 과정이 신경이 쓰이고 긴장되는 어려운 시간인데, 그림 그릴 때 스트레스 없이 즐거운 사람들을 보면 마냥 신기하다.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실수해서 망칠까봐 신경쓰이는 것도 크지만, 작업에 공들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하는 버릇때문일까, 강박이라도 있는 것일까, 정해진 시간 안에 집중해서 끝내야 하는데 잘 못 해서 늘어지게 되는 순간 스트레스가 급격히 커지면서 실수하는 비율도 늘어난다. 어렵다.
펜 스케치 마스터 콜렉션은 꽤 유용한 책이다. 펜 스케치에 필요한 펜촉과 잉크, 종이를 일단 책에 적힌대로 구매했지만 작업용 종이에 덥썩 연습하기는 아까워서 일단 전에 사용하던 캘리그래피용 연습장을 꺼내서 선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펜촉에 묻은 잉크가 드로잉 전용 잉크라 물티슈 정도로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아서 어떻게 지워내야 할 지 궁리중이다. 여유분 촉이나 다양한 두께의 닙도 구비해야 하니 클리너가 있다면 같이 구매하고 싶은데, 클리너와 닙을 같이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못 찾았다. 월급도 받았는데 남대문에 갈 때인가보다.
연습장 열 장 쯤 채우면 예전 여행 사진을 뒤져서 옮겨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연습장 열 장 채울 시간이 부족하다.
프로젝트 계약을 대체 어떻게 하셨는지 한 사이트에 프로젝트가 두 개라 두 배로 일해야 한다. 일단 당분간 펜을 놓고 마우스 잡는다. 그래야 월급도 나오고 잉크도 사고 펜촉도 살 수 있다.
+) 갑자기 목탄 인물화에 꽂혀서 목탄 재료를 잔뜩 샀던 일은 안비밀, 그건 언제 꺼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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