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연희동 마실 (1) 망원동 나들이

d0u0p 2019. 10. 15. 08:10
728x90
반응형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트토이 수업 덕에 연희동을 주말마다 가게 되었더니 친구들이 묵혀두었던 위시리스트를 풀기 시작했다. 연희동이라면 나에게도 나름의 위시리스트가 몇 군데 있었는데 일단 친구의 원풀이를 먼저 하기로 했다. 친구님이 원했던 곳은 연희동에서 가까운 망원동 맛집이었다. 

친구의 바람은 제주 음식을 하는 오라방에서 갈치튀김을 먹는 것이었고, 사실 친구는 회복기 컨디션이라 아주 편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아트토이 첫 수업에서 거의 실신할 뻔 했던 나는 오히려 그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기증은 원래 그 주에 아주 가끔씩 나타나기는 했었는데 수업 이후 최고조가 되었고, 시원한 바람 쐬가며 겨우 겨우 오라방에 도착했지만 그 맛있어 보이는 갈치튀김을 맛있게 먹을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서울 서쪽은 어릴 때에나 자주 갔지 이제는 더 자주 갈 수는 없는 곳이다. 사람도 많고 복잡하기도 하고 이렇게 수업이나 있어야 어쩌다 겸사 겸사 들러볼 동네지, 이 갈치 튀김을 먹겠다고 다시 망원동을 갈 자신은 없다. 몸국도 컨디션이 좋았다면 비록 그 전 주에 순댓국을 먹고 그 전 전 주에도 순댓국을 먹어서 돼지뼈 국물이 질린 상태라 할지라도 제주도 몸국이니까 몇 숟가락 더 입에 넣을 수 있었을텐데 움직일 때마다 속이 함께 울렁대는 상황이라 시원한 탄산 음료가 나에게는 주식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수업이 점심 시간과 겹쳐서 허투루 넘긴 점심 때문에 컨디션이 더 나빠졌을 수도 있으니 뭔가 영양분은 넣어야 할 것 같아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메뉴 중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아 안전할 것 같은 만만한 흰 쌀밥을 주로 꼭꼭 천천히 씹어 먹었다. 

갈치튀김은 몸통 부분도 괜찮았지만 꼬리가 바삭하고 진짜 맛있었다.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진짜 맛있게 먹었을 것 같은데, 그 날의 컨디션에는 카레향과 갈치향이 적당히 섞여 있는 몸통보다 바삭한 꼬리 부분이 훨씬 수월하게 입에 들어갔다. 남은 갈치는 포장해서 니가 가져가네 내가 가져가네 했지만, 우리집에 가져와봐야 엄마마마님께 갈치의 사이즈며 요리법이며 다양한 단점들을 지적하시며 타박하실 것이 뻔하므로 양보했다. 내 입에 맞는 맛있는 갈치 사먹는다는데, 엄마마마님의 기준을 통과하는 갈치만이 옳다고 강요하시니 이렇게 밖에서 몰래 먹을 수 밖에 없다. 

밥을 먹고 나와 시원한 음료를 한 잔 더 할 곳을 찾다가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정체모를 가게에 들어갔다. △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한글 표기로 모아새인 것을 나중에 집에 와서 알았다. 가게가 좁아서 1층에는 좌석이 없었고 지하에 좌석이 있다고 해서 일단 메뉴를 고르고 지하로 내려갔다. 일단 속을 진정시킬 차가운 음료가 필요해서 캔디에이드였나 뭐 그런 메뉴를 주문했는데, 청포도에이드와 함께 사탕이 한 접시가 나와서 즐거웠다. 나중에 찾아 보니 수제 사탕으로 유명한 집이었고, 이렇게 아기자기 귀여운 사탕들을 손으로 직접 만드시는 것이라고 한다.

오물조물 사탕을 만들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트토이처럼 또 속이 울렁대지 않을까? 예전에 한참 베이킹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자 마음먹게 되었었는데, 오븐에 무언가를 구워내고 나면 꼭 울렁대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구운 머핀이며 과자를 맛있게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베이킹 과정이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오븐 때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맛 있는 쿠키 먹겠다고 구워내고는 먹지도 못하고 앓아 누우니 그 모든 과정이 의미가 없어졌고, 그렇게 힘든 과정을 반복하기 싫어서 그만 두었다.

2019/10/14 - [MAKING] - 아트토이를 배워 보기로 했다.

 

아트토이를 배워 보기로 했다.

만들어 두었던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만드는 것보다 실물화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3D로 만들어 프린팅을 해 볼까 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벼락같이 아트토이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다는 글을 보았다...

d0u0p.tistory.com

아트토이 역시 오븐으로 굽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지 못했었는데, 오븐이 짠하고 나타났고, 수업 한 번 하고 나서 울렁이는 지경이 되었으니 계속 할 수 있는 일일지 확신할 수가 없다. 일단 신청한 수업까지는 소화하는 것까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하에 테이블이 있던 모아새에서는 음료를 마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습한 공기 속에 비염을 유발하는 그 무언가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려는 거 같아서 일단 모아새에서 나가기로 하고, 이왕 망원동까지 갔으니 내친 김에 지금도 핫플레이스인지는 모르겠으나 망원동붐이 일면서 함께 유명세를 타서 그간 궁금해했던 자판기 까페에도 가 보기로 했다. 모아새를 나서면서 사탕을 한가득 골라 담아 들고 모아새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판기 까페에 갔다. 

과감하게 자판기를 열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뭔가 화려한 음료를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었는데, 어여쁜 아이스크림과 달달한 느낌을 자아내는 분홍색 자판기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코는 막혔지만 신선한 바람을 쐬었으니 달콤한 아이스크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장식이 올라가 있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쥐고 신이 났다. 붙어 있는장식들은 어디까지 먹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아이싱의 맛은 대체로 밋밋해서 먹어도 되는 맛인가 싶을 정도로 매력이 없어서 큰 덩어리는 다 먹지 않고 남겨 두었다. 하트 머랭은 그나마 쫀득바삭하고 달콤해서 잘 먹었고, 소프트콘 자체의 맛도 꽤 괜찮았다. 이 정도의 금속 느낌이 드는 장식이라면 정말 먹어도 탈이 없을까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먹을 수는 있는 것이었다. 그냥 맛없는 장식일 뿐이었다. 이제는 이름이 바뀐 오카시야 스콘의 새콤 달콤 맛있는 레몬 아이싱을 생각하고 먹었다가 큰 코 다쳤다. 친구는 호기롭게 캔에 들어있는 케이크를 선택했으나, 케이크는 먹기에 버거운 맛이었다. 버터크림이 올려져 있었는데 단 맛도 강하고 느끼해서 크림은 걷어 내고 빵만 조금 맛 보았다.

보기에 좋은 떡이 늘 맛있으란 법은 없다. 눈으로만 먹는 케이크였나보다. 그런 걸 입에 넣은 우리가 잘 못한 일이다. 커피와 함께라서 다행이었다.

저녁을 애매하게 이른 시간에 먹어서 그랬는지 자판기 카페는 한적했고, 이제 망원동도 이렇게 저물어가는 건가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걱정이 무색하게 손님들이 모여 들었다. 남 걱정이 왠 말인가, 내 걱정이나 하고 내 일이나 잘 하자. 

망원동, 안녕!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