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째 아트토이 수업이 있던 날은 연희동 마실이 다시 뒤로 밀리고, 망원동에 이어 또 다른 핫 플레이스인 근처의 홍대입구에 가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미로식당은 술을 마시지는 않으나 열구독중인 유투버의 후기에 혹해서 가 보고 싶었다는 친구의 추천에 의해 불시에 이루어졌다. 미로식당은 술을 위한 식당이었다. 그래서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도 오후 여섯 시였으므로 수업이 끝나고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는 나에게 여유가 아주 잠깐 있었다. 잠깐의 여유를 틈타 그동안 숙원이었던 쑥디저트가 유명하다는 아라리오브네에 달려갔었는데 느즈막한 오후라서 역시 쑥으로 된 디저트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괜한 헛발질 같았지만 연남동 뒷 길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괜찮았다.
연남동 뒷 골목에서 최대한 빠른 길을 찾아 나오면서, 정말 그 조용한 뒷골목의 끝이 그 번잡한 홍대입구 지하철 역과 이어져 있을까 의심스러웠었는데, 골목의 끝에서 번화한 홍대입구 대로를 직접 마주하게 되니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25년 전 부터 보았던 충무슈퍼와 소주와 함께 떡볶이, 튀김을 먹을 수 있었던 분식집들과 오락실이 즐비했던 먹자 골목은 그 골목이 깨끗한 새 길로 단장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북적북적하고 흥이 넘쳤던 그 골목의 이미지는 이제 꼬꼬마 시절의 나와 함께 장기 기억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어 나에게만 보인다. 그 골목에서 화구박스와 아트백을 들고 힘차게 인사하던 그들이 있고, 일주일이 멀다 모여 앉아 안주를 집어 먹으며 클럽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던 그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취업을 하지 않고 동호회 소모임에서 공동 작업실을 얻어 잡일을 하던 때에는 홍대 식당에도 가끔 갔었고, 심지어 입시 때 다녔던 미술학원은 홍대 정문 바로 옆에 있던 빌딩에 위치해 있었으니(영원한 미소는 아니고 지금은 이사가심), 홍대 근처 어지간한 골목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마트폰이 정해 준 미로식당 가는 길은 전혀 가본 적이 없던 길을 가르키고 있었다. 학교 바로 옆 골목으로 올라가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그렇게 가파른 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와우산을 끼고 있다는 것과 학교 뒷쪽은 정말 산이라는 것은 말로만 들어 알고 있었지 실제로 그 높은 고개를 직접 걸어 올라가 본 적은 없었다.
몇 십 년 만에 처음 오르게 된 홍대 옆 골목길은 수락산 깔딱고개 못지 않은 고갯길이었다. 예상 외의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이라 더 힘들었고, 고개를 올라선 후에야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다른 길은 없는 걸까 후회가 되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는 다른 길로 오기를 바랐다.
식당 문이 열리기 전에 도착한 터라 문 밖에서 바람을 쐬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신촌에서 와우산 고개를 넘어 오가는 마을 버스가 달리고 있었지만 지도에는 가까운 곳에 정류장 표시나 타나나지 않아 차로 오르지 못할 곳인가 싶었는데 다행히도 늦게 온 친구는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 알고보니 홍대 정문 옆 길의 골목을 끼고 올라가는 길은 경사 높은 고개를 사람만 걸어 넘어 도착할 수 있는 길이었고, 산울림 소극장(지금도 산울림 소극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쪽 갈래 길에서 언덕 쪽 길은 차도 올라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고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훨씬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식당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신촌 기찻길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큰 길 쪽으로 내려오고 나서 보니 산울림 소극장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혹시 무턱대고 스마트폰 지도만 보고 가 보실 분들은 부디 쉽게 돌아가시기 바란다. 등산을 좋아하신다면 뭐 괜찮다.
우리는 소갈비찜과 해물 부추전을 주문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기분이라도 낼 겸 오미베리를 주문했다. 알콜 없는 증류주다 최면을 걸어서 그런가 안주용 요리들과 잘 어울려서 좋았다.
요리는 거들 뿐 원래 미로 식당은 술을 위한 집임을 술 메뉴판이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듣도보도 못한 각종 전통주 이름에 매료되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주량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쉽게 알딸딸해져 버리는 알콜쓰레기가 나임을 잊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향과 맛이 하나 하나 다 궁금했지만 유일한 애주가였던 친구가 부득이하게 금주가의 길을 걷게 된 탓에 옆에서 한 모금 얻어 마시는 소소한 재미도 이제 더는 즐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한 잔도 못하고 오미베리와 함께 안주만 먹었다.
갈비찜은 생각보다는 쇠기름 냄새가 꽤 강해서 내 입맛에는 그냥 그랬다. 그냥 쇠기름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그랬을 뿐, 기름 냄새를 빼면 양념이며 고기며 아주 좋았다. 싱싱한 해물이 가득 들어 있는 바삭한 부추전도 훌륭했고, 저녁을 먹지 않고 술자리에 앉아 약간 부족하다 싶은 느낌은 육회가 채워 주었다.
강하게 달지 않고 묘하게 단 맛이 느껴지는 양념이었는데, 고기를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은 사라지고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만 남는다. 정말 맛있었다. 곁들여 먹는 채소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궁금했다. 처음에는 샐러리 잎인가 했는데 샐러리의 강한 향은 나지 않았고, 미나리일까 싶었는데 그러기엔 잎이 큰 편이었다. 친구는 이태리 파슬리인 것 같다고 다음 날 다시 이야기했다. 집에서 이태리 파슬리를 써서 무언가를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니 그럼 이태리 파슬리인 것으로 해야겠다.
다시 보아도 색이 곱고 아름다우며 그 맛이 생각나서 침이 고인다. 게다가 시원하고 아삭한 배, 오이, 파슬리까지 어우러져 정말 환상의 육회였달까, 볼 때마다 대체 왜 먹나하는 마음으로 시큰둥하게 쳐다 보던 그 육회가 이제는 맛있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고주망태가 되지 않을 애주가 친구가 있어야 또 갈 수 있을 텐데 당분간은 어렵겠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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