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ING

관찰일기 : 도라지 발아

d0u0p 2019. 9. 20. 09:13
728x90
반응형

2019/09/06 - [SHOOTING/FLOWER] -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우리 동네 아니고, 사무실이 소재한 동네지만 가끔 산책삼아 길을 걷다 보면 전에 없던 꽃들이 눈길을 사로 잡아 산책길이 재미있어진다. ​우리집 앞 내가 만든 화단인 셈 치고 하루가 멀다 하고 꽃들을 살피러..

d0u0p.tistory.com

사무실 동네 길가에 있던 도라지가 이제는 씨를 품고 있었는데, 씨방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마음과 똑 따서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반반인 상황에서 가지 하나가 마침 푹 고꾸라져 있고, 그 아이는 어차피 이미 꺾여 버렸으니 씨를 털어도 마음의 짐이 덜 무거울 것 같아서 일단 살며시 열어 보았다. 

적당히 씨앗이 된 상태인 것 같아서 사무실로 들고 와서 사무실 집기 중에 가장 쓸만하고 만만해 보이는 명함 케이스에 자리를 펴 주었다.  

9월3일 첫 파종(?)

정말 발아가 될까 반신반의하며 일단 하루 하루 물이 마르지 않게 관리해 보기로 했다. 몇 일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씨앗의 겉에서 보라색물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고, 그러다가 바닥의 휴지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9월4일 / 9월5일 

도라지만 그런지 다른 씨앗도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발아를 방지하는 물질이 씨앗에 들어 있어서 이 물질을 제거하려면 일단 씨앗을 이틀정도 물에 불리라는 글도 보았지만, 그냥 이대로 물을 열심히 줘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주말에 사무실에 두고 가면 바짝 말라 버릴 것 같아서 명함케이스에 잘 챙겨서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가져가기로 한 날, 하필이면 광화문과 을지로를 헤매고 돌아다니게 되었는데 명함케이스 하나를 소중하게 손에 쥐고 불굴의 의지로 불금을 보내느라 진이 빠졌다. 

9월9일

집에 온 도라지는 월요일이 되자 드디어 뿌리를 내밀었다. 씨앗 하나만 보았을 때에는 이게 생명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그 무언가였는데, 물을 먹고 자라나는 살아있는 식물이었다니 마냥 신기했다. 

9월12일 / 9월13일 

또 사흘쯤 지나니 일어나는 놈들이 생겨났다. 이제 곧 떡잎 본잎이 나려는 것일까, 일어나기 전에는 뿌리와 줄기를 구분하기도 어렵더니 이 때 쯤 되니 뿌리는 아랫쪽으로 굽어서 바닥을 지탱하는 형태로 바뀌어 가고 줄기와 떡잎일 것 같은 부분이 위로 자라 올라왔다.  

9월15일

드디어 떡잎이 나왔다. 조카들이 왔을 때 까지만 해도 잎은 볼 수 없었는데, 씨앗에서 싹이 올라오는 모습에 작은 아이가 물을 주게 해달라고 조르는 통에 이미 물을 가득 준 도라지에 물을 더 줄 수는 없어서 작년에 묵혀 두었던 채송화 씨앗을 꺼내서 직접 물을 주게 했다. 

2018/10/19 - [SHOOTING/FLOWER] - 너무 예뻐서 숨이 멎을 뻔한 그 날의 채송화

 

너무 예뻐서 숨이 멎을 뻔한 그 날의 채송화

휴가내고 열심히 도서관에 찾아간 날, 남산 밑자락에서 만난 채송화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세히 보면 암술들이 꽃잎의 색상과 같다. 처음엔 몰랐는데 몇 컷 찍다 보니, 노란 꽃은 노란 암술, 빨간 꽃, 분홍 꽃..

d0u0p.tistory.com

용산 도서관 담벼락에 있던 채송화의 씨앗을 가져왔었는데, 엄마마마님께 대충 뿌려 주시라 했는데 그대로 묵혀 두셨던 것을 꺼낸 것이라 설마 발아가 되려나 또 반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일단 판을 깔아 주었다. 조카는 이틀 고심 끝에 채송화의 이름을 지어 주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꼭 잘 돌봐 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9월17일

떡잎 나온 도라지가 어찌된 일인지 시들시들하고, 이제는 이 작고 비좁은 휴지나부랭이에서 더 뽑아쓸 양분이 없지 않겠나 싶어서 모종으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다양한 포트가 나왔고 그 중 겉은 종이막이고 안쪽에 흙을 다져넣은 형태인 지피(종이껍데기)포트가 편리해 보여서 주문해 보았다. 

물을 머금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라지라지 투엑스라지로 자라나야 할 도라지가 너무 시들시들해서 마음급하게 물을 부어 도라지와 채송화를 하나씩 이식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포트에서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장난삼아 시작한 일이었던 터라 번거롭게 되어도 하는 수 없었다. 

이미 뿌리들이 휴지를 은근 단단하게 감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분리해 내느라 어려웠다. 채송화는 진짜 너무 얇고 가늘어서 핀셋으로 잡아 옮기면서 사실 몇 줄기는 톡 끊어졌다.  

허리 끊어져라 웅크려 바들바들 손 떨며 조심스럽게 옮긴다고 옮기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성할까 싶기도 하고, 옮기고 나서 지켜 보고 있는 중인데 영 신통치 않다. 

빛이 모자란 것인지 물이 부족한 것인지 온도가 문제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일단 둘 다 여러 해 살이 식물이고 지금 파종해도 크다가 겨울 지내고 내년에 잘 클거라는 말만 믿고 심기는 했는데, 뭐 그냥 운명에 맡긴다. 

그제 쯤 도라지가 가득 피었던 화단에 다시 가 보았는데 씨를 받을 수 있을 지경이 아닌 상태로 다들 상해있었다. 해가 너무 강해서 그랬는지 잎은 누렇게 떴고, 씨방도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정성을 다한다 하더라도 하루 하루 해에 따라 잘 자랄수도 있고 못 자랄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될 일이 아니다. 정성을 다 해 볼 뿐이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떡잎이 나온 아이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 씨 껍데기가 너무 단단해서 못 벗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줄탁동시하는 마음으로 껍데기를 벗겨줘 볼까 그랬다가 너무 빨리 벗어 버려서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나, 벗기다가 잘못해서 톡 부러질까 싶기도 하고 뭐 모든 것이 어렵다. 그냥 던져두면 알아서 자라나는 줄 알았는데, 풀 한 포기 키워내는 일조차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새삼스럽다. 

반응형

'GROW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싹 구경합시다.  (0) 2020.05.08
화단을 가꾸려니 바쁘다.  (0) 2020.05.05
자랐니 안자랐니?  (0) 2019.12.12
발아 실패한 채송화  (0) 2019.10.17
관찰일기 : 새 도라지  (0) 20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