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자몽이 좋다. 시금털털한 그 맛이 좋아서 한 번은 사다가 집에서 혼자 열심히 까 먹는 수고를 해 보고 나서는 절대 직접 사서 까 먹지 않기로 했다. 찬 음료인 에이드보다는 자몽티를 더 좋아해서 겨울에 더 많이 마시고, 에이드는 찾지 않았었는데 덥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한동안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쌉싸름하게 톡 쏘는 자몽에이드가 먹고 싶어졌다.
커피는 마실 만큼 마셨고, 상큼하게 분위기 전환해 줄 수 있는 음료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제일 가까운 곳에서 마실 수 있는 아띠제의 자몽에이드는 몇 번 마셔 보니 그냥 그랬고, 어정쩡한 커피숍에 가서 마시면 엄청 달게 만들어 줄 것 같아서 싫었다. 일단은 당도를 조절할 수 있는 공차를 염두에 두고 검색을 했는데 의외로 카페 진정성의 생자몽에이드가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공차는 아는 맛이니까 새로운 맛을 찾아 갔다. 사실 가져가겠노라고 하면 일회용 잔에 담아 주지만 바로 마실 수 있는 상태의 음료를 주시는 게 대부분이라서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받았는데 당황했다.
팀장님과 함께 우편업무를 보러 가던 길에 들른 것이라서 가는 길에 더우니 마시고 싶었는데, 이 상태로 들고 가서 우체국에 가서 탄산수를 부어 마실 수는 없으니 일단 부랴부랴 탄산수를 따서 자몽청과 생자몽이 들어있는 컵에 부어서 들고 나섰다.
아무 생각없이 쭉 마시면서 맛이 있다 생각하며, 내가 직접 깎는 수고를 덜어 이렇게 만들어 준다면 6,500원이 아니라 10,000원이라도 사 마실 것이라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자몽청이 섞인 탄산수를 다 빨아 올려 마셔 버리고 나니, 다음은 그냥 물 맛 뿐이어서 또 당황했고, 음료를 다 마시고 나서 큰 자몽을 아구작 아구작 씹어 먹으면서 너무 흘리는 바람에 또 당황했다.
받았을 때, 일단 차분하게 자몽을 먼저 상큼하게 먹고 나서 단 맛이 있는 청과 탄산수를 섞어 마신 후, 다시 상큼하게 탄산수로만 입가심을 했다면 완벽했을 것 같다. 순서가 꽤 중요한 것 같다. 자몽청과 탄산수가 섞인 단물을 먼저 마시고 자몽을 먹으니 신맛과 쓴맛이 더 커진데다가 물맛이 섞이고 흘리고 정신이 없어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후 세시 쯤 갔는데, 생자몽 에이드 외에 다른 음료는 이미 소진된 상태였다. 옆 자리에서 이미 체리코크를 드시고 계시는 걸 보았는데 이렇게 가려 놓으셨으니 옆 자리 체리코크가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팀장님이 안 계시는 날, 팀장님 몰래 혼자 체리코크를 맛보겠다며 오늘 신나게 찾아갔었다. 체리코크가 없으면 다시 자몽에이드에 도전하기로 하고 갔었다.
벌 받은 것인가, 왜, 하필 오늘, 휴가를 가셨을까, 뭐, 여름이니까 가실 수는 있지만, 돌아가면서 가셔도 되지 않나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러면 또 너무 매장이 바빠서 힘드셨을까 걱정도 해 보면서 그냥 돌아왔다. 혹시 모르고 가시는 분들은 헛걸음 하지 마시기 바란다.
아쉬운 대로 공차에 다녀 왔다. 피프티 피프티, 당도 반, 얼음 중간, 쌉쓰름한 자몽 그린티 에이드도 괜찮았다. 더워서 자꾸 찬 음료수만 찾아서 뱃 속은 늘 시원한 상태랄까, 적당히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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