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같은 코스 두 번이면 이제 단골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남동 북파크, 우리둥지 떡맥, 사유

d0u0p 2019. 6. 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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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설이었나, 추석이었나, 집안 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삼성동에서 만나 한가하게 브런치를 먹었고 그동안 궁금해했던 북파크에 가 보기로 했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에서 운영하는 테마 서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블루 스퀘어 2층부터 자리잡아 운영되고 있는데 오후가 되기 전에 도착했지만 느긋하게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에는 앉을 수 없었다. 겨우 스탠드 좌석에 어정쩡하게 앉아 잠시 공부하는 척 하다가 배가 고파져 휴일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나섰고 그러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이 우리둥지 떡볶이집이었다. 함께 한 친구는 이미 알고 있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착석하여 부드러운 생맥주와 함께 떡볶이와 튀김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북파크와 우리둥지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있는 알듯 모를듯한 사유라는 곳에 가 보기로 했다. 그냥 홀린듯이 들어가서 보니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카페였고, 초콜릿 음료와 함께 초콜릿도 구매할 수 있는 곳이라 가볍게 음료를 마시고 몇 가지 초콜릿바를 사들고 돌아왔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특별할 것 없었던 한가한 휴일을 보냈던 그런 이야기였는데 돌아와서 초콜렛 맛을 보니 너무 맛이 있었고, 다 먹고 나서는 문득 문득 사유 빈투바의 초콜렛이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또 올 해의 어느 날, 하이야트에서 열렸던 행사에서 탈출하게 된 시점에 김선생을 호출했고 한강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행사에서 탈출한 시점의 나는 경리단길을 가뿐하게 걸어 내려갈 수 있는 컨디션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고, 일을 마치고 일찍 나오게 되면 여유롭게 경리단길을 구경하며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걷기는 커녕 서 있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하는 수 없이 부랴부랴 교통편을 검색해 보니 다행히 한강진역까지는 한 번에 버스로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비 개인 저녁 하늘은 맑고 푸르고 찬란했다. 목도 마르고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엉망징창 컨디션인 상태라 최대한 가까운 그 어딘가에라도 가서 앉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여기는 한강진이었고, 예전의 그 북파크가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생각에 더 망설일 필요 없이 서둘러 찾아 들어가 바람 부는 테라스 구석에 딱 하나 남아 있는 의자에 앉았다.  

정신없었던 오후가 지나고 그 날 처음 받아 든 차가운 커피는 시원하고 달콤하고 노곤하게 내려앉은 피로를 걷어내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워킹메모리를 잠시 정지시킨 채 바람도 상쾌하고 한적한 거리를 여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김선생을 기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영원해도 좋을 것 같은 꿀같은 휴식 시간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저녁 메뉴를 궁리해 보았지만, 팔 다리가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태로 맛집이라고 멀리 찾아가기는 무리였고 가까운 곳에 눈에 보이는 식당들은 대부분 버거집이었는데 그 날 점심 메뉴가 이미 버거였으니, 피로에 지쳐 까끌거리는 혀를 달래줄 음식은 결국 떡볶이로 정해졌다. 정해 놓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는데 도착한 곳이 맥주가 있는 떡볶이집 우리둥지였다. 이렇게나 겹치는 경로로 움직일것 같으면 떡볶이를 먹고나서 '사유'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래에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맥주를 마셔본 적이 또 있었나 싶게 근사한 맛이었다. 맥주를 더 맛있게 마시려면 과중한 노동이 반드시 필요한가보다.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일어나 사유로 향했다. 부지런을 떨면 주변에 다른 곳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오는 길에 봐 두었으며, 초콜렛이 맛이 있는 그 곳에 가고 싶었다. 전에는 2층에서 의류를 판매중이었는데 지금은 1층에서는 음료 메뉴만 마실 수 있고, 2층으로 가야 본격적인 초콜렛과 젤라또를 만날 수 있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때라 그랬는지 테이블 여유가 있었고 아르도이의 버터플라이 체어가 놓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초콜렛 가득한 초코라칸다 Black Marble과 오렌지를 품은 딸기, Hug Me 그리고 왠지 쌉쌀해 근데 또 달콤해, You and Me 세 가지 종류의 젤라또를 골라 담아 왔는데 김선생은 허그미가 좋다고 했고, 나는 블랙 마블이 좋았다. 제일 진한 색의 블랙마블은 정말 진한 초콜렛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고디바의 초콜렛 아이스크림 콘보다 세 배정도 맛있었다. 다음엔 두 스쿱 모두 블랙마블로 먹어야지. 

 

진열장 한 쪽으로 포장된 초콜릿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예전에 보았던 바 타입의 초콜렛은 이제 없고 깔끔하게 선물 포장된 제품만 있었다. 선물 포장 탓에 가격이 훨씬 더 비싸졌을 것 같다. 굳이 유리병 필요없지만 오랜만에 초콜렛 사러 왔으니까 근사한 놈으로 집어왔다. 라즈베리와 자스민, 깨강정 믹스라고 설명이 덧붙여져 있는 "드라제"라는 이름의 초코볼이었고 맛은 기대한 대로 부드럽고 적당히 달고 다양한 플레이버가 어우러진 기분좋은 맛이었다. 

초콜렛을 만드는 카카오 빈의 원산지 별로 조금씩 다른 종류의 초콜릿이 만들어지고 각각 카카오 함유량이나 원산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정말 원산지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지는 다 먹어본 것이 아니라 모르겠고, 사람과 사랑을 생각해서 카카오빈을 화학물질 없이 직접 초콜릿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라 사유라는 이름으로, 카카오빈이 초콜릿바로 제작되는 것을 빈 투 바, Bean to Bar로 표현하고 있는데, 브랜딩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직관적으로 전체 공간 컨셉을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몇 번을 곱씹어보고 설명문을 보고 읽고 해서 겨우 납득이 되는 어려운 공간이다. 건물이 2층이 전부는 아니고 윗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테마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다른 공간까지 탐색할 시간은 없었다. 

자주 가보고 싶지만 심리적, 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 한남동, 한강진, 이태원이다. 일요일에 차를 타고 가면 좀 나으려나, 이사를 가야 하나, 그냥 이렇게 일 년에 겨우 한 번씩 갈 수 있는 것만으로 일단 만족해야 하나, 어려운 곳이다. 그러니 딱 두 번 방문했어도, 다음에 한강진 근처에 가게 되면 또 같은 곳을 가게 될 것 같으니까 이제는 단골이라고 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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