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TING

폭설은 근육통을 남기고

d0u0p 2021. 1. 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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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어찌나 근육을 쓰지 않았는지 십 분 남짓 빗자루질 하고 사흘을 앓았는데, 가장 놀라운 점은 빗자루 손잡이 쥐었던 손바닥 근육까지 아팠다는 것이다. 

이 사진이 그 날의 사진일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며 다시 큰 카메라를 들고 집 앞을 나오면서 주차장 앞에서 미끄러져 붕 떠올랐다가 낙상한 날이 있었다. 그 때는 젊었는지 그렇게 쿵 떨어져 내렸는데도 크게 아픈데 없이 지나갔는데 그 미끄러운 주차장 앞 길 눈 좀 치웠다고 이렇게 허리며 손바닥이 아플 일인가 모르겠다.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히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고 있다. 

눈을 쓸면서 한 곳으로 치워야 하나 모아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어느 덧 산더미 같이 눈이 쌓여서 이정도면 눈사람도 만들겠네 싶었는데 비싼 가죽 장갑으로 눈을 만질 용기는 없어서 빗자루로 슬렁 슬렁 다듬어 누운 눈 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대충 치웠다 싶을 때 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다들 나오셨는데, 아마도 건너편 가게 사장님이 이쪽 골목까지 한 번 더 치워주시면서 눈사람도 함께 치우셨는지 다음 날 아침에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폭설에 대한 강한 인상이 처음으로 남았던 순간이라면 하필 처음 따라 나선 동호회 출사 여행에서 만난 눈보라였던 것 같다. 건너편 길에 있는 집들을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던 순간 순식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원하던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나타난 눈보라는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근처에 있던 빈 공간에서 눈보라를 잠시 피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섰고 뉴스에서는 그 지역 폭설이 몇 십년 만이라며 떠들고 있었다. 다행히 다음 날 날이 개서 적당히 촬영은 할 수 있었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족히 20센티미터가 넘게 눈이 왔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폭설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라 거의 무방비 상태였고, 추운 날씨에 배터리도 먹통이었으니 다음 날 촬영도 그렇게 순조롭지 않았고, 추워서 만사 귀찮기도 했으니 엉망진창이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출사를 따라 왔다며 툴툴대며 힐난하는 똥매너 멤버도 있었다. 극한의 기온에서 촬영을 하게 될 줄도 몰랐고, 그런 환경에서 수은전지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대장님이 그나마 수은 전지 때문일 수 있다고 응급처치법을 알려 주셔서 그나마 몇 장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다. 준비성 운운하던 똥매너 멤버는 매사 철저히 준비해서 오죽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지도 않다. 뷰파인더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 소갈머리까지 비좁아졌나, 그 비좁은 세상에서 나와 편히 살고 계시기 바란다.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나갈 수 있을까, 추위가 이길까, 내가 이길까, 궁금하다. 눈이 조금 덜 녹은 상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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