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획에 없었던 어남선생의 바삭한 멸치 볶음
멸치볶음이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어남선생의 레시피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추려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는데, 그 날 저녁 편스토랑에서는 어남선생이 멸치볶음을 보여주고 있었고, 바삭한 식감이 그냥 멸치 볶음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에 너무 솔깃해서 레시피를 다시 찾으며 멸치를 주문해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지금은 문을 닫아 버린 사무실 빌딩 지하에서 먹었던 눈알이 동그랗게 살아있던 맛있는 멸치를 떠올리며 죽방 멸치를 주문해 보았는데 생각했던 그 놈 눈깔은 아니라 약간 실망했다. 레시피는 파와 마늘을 센 불에 볶았어야 했는데 늘 그렇듯이 사방팔방으로 튈까 무서워서, 게다가 파가 냉동되어 있던 상태라사 약불에서 시작했더니 신선한 파기름의 느낌은 아니었고, 손에 잡히는 대로 설탕을 꺼내 넣었는데 알고 보니 저칼로리 인공 설탕이어서 레시피만큼 설탕을 넣었더니 너무 달았다. 실패해서 다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단 음식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끔 꺼내 먹었더니 다 먹어 버렸다. 남은 멸치 다시 또 볶아봐야겠다.
2. 땡초 간장은 귀찮아서 건너 뛴 어남선생의 호미전
나도 땡초 좋아한다. 매콤 달콤 짭조름한 간장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우리집 식구들은 대체로 맵찔이라 뭘 맵게 할 수가 없다.
미나리도 사실 집 근처 채소 가게에 미나리가 싱싱하고 저렴하다며 엄마마마님께서 시크하게 사 들고 오신 터라 내친 김에 애호박도 하나 부탁드려 같이 부쳐 보았다. 소금에 절여 물기가 생긴 미나리와 애호박에 튀김가루만 살살 넣어주니 탄수화물 가득한 전과는 다른 바삭하고 산뜻한(?) 상태의 전이 만들어져서 좋았다. 종종 부쳐 먹어야겠다.
3. 미나리 덕에 덤으로 얻어 온 고수는 어남선생의 미나리 겉절리 레시피대로 겉절이가 되었다.
특별한 양념은 없지만 고수만으로도 향긋해진 겉절이는 라면 먹을 때, 밥 먹을 때 꾸준히 꺼내 먹기 좋았다. 일주일만에 다 먹어 치웠더니 엄마마마님께서 고수를 한 단 더 추가해 주셨다.
처음 무쳤을 때 액젓을 빼고 무쳤더니 약간 싱거운 느낌도 있어서, 그 다음 버전에서는 집에 있는 각종 액젓을 꺼내 무쳐 보았다. 액젓이 없을 때도 괜찮았고, 액젓이 들어가도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왠지 그냥 고수와 미나리 향으로 먹는 기분이긴 한데 양파를 넣은 고수 겉절이가 조금 더 입에 맞는 것 같기는 했다.
4. 빼 놓을 수 없는 밀키트, 편스토랑 어남선생 매운 마라면과 삼겹살 고추장찌개
앱으로 주문하면 요쿠르트 아주머니가 배달비 없이 다음 날 가져다 주셔서 좋았다. 문 앞에 별도의 부담스러운 포장재 없이 단촐한 본품만 놓여 있으니 더 좋았다.
매운 마라면은 사리면이 팔도 사리면이었는데, 끓이는 시간이 비교적 짧은데다가 쫄깃한 느낌이 살아 있어서 좋았다. 마라 소스는 생각 보다 마라 느낌이 덜하고 단 맛이 좀 있어서 뭐 그렇게 크게 중독적이지는 않았고, 광주 지방에서 많이 먹는다는 애호박찌개는 사실 최근에 맛집을 알게 되었지만 이제 출근을 할 수 없으니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비슷한 애호박찌개가 밀키트로 나왔다 하니 반가운 마음에 주문을 해 보았다.
삼겹살이 무엇보다 신선한 느낌이 살아 있어서 좋았고, 재료도 필요한 만큼 다 정리되어 있으니 정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좋았다.
맛도 나무랄 데는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섭섭하기는 했다. 남도집 애호박찌개가 생각났다.
5. 등짝 스매싱각 휴게소 스타일 버터 감자
중간에 설탕을 뿌리면서 팬이 급격하게 타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감자에 탄 부분이 눌어서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고 감자는 감자대로 계속 포실하기만 하고 팬만 시커멓게 변해서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시커멓게 되버린 팬 덕에 잔소리는 조금 들었지만, 결국 해결도 엄마마마님께서 해주셨다. 닦이긴 다 닦였다. 신기하게도?
6. 주문해 먹는 날도 있어야 살 만 하다. 잭슨피자의 페퍼로니 피자 JMT
쉽고 편하고 얼마나 좋은가, 살이 찔 뿐이다.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7. 한 번 쯤은 시도해 보고 싶었던 어남선생의 원팬 버터 파스타
면의 양을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레시피에 있는 기다란 면이 아니라 펜네를 샀더니 어느 정도가 일인분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니 또 소스가 졸아 들었을 때의 간이 맞았느냐 따져 보면 조금 짰다. 너무 졸여서 짜게 된 건지, 면의 양이 적어서 짜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바질과 치즈, 후추가 풍미를 더해줘서 먹을만 했다. 파마산 치즈인데 이미 갈아져 있는 새로운 놈을 구매해 보았는데, 치즈가 진짜 너무 맛이 있었다. 지금은 냉장고에서 썩어 가고 있을지 모르는데 얼른 확인하고 냉동실로 옮겨줘야겠다. 한 번 먹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맛이다.
8. 백선생 스타일의 김치찜
편스토랑 어남선생 메뉴에서 찾아 볼 수 없던 메뉴였고, 갑자기 엄마마마님께서 김치를 정리하시겠다 하시고, 주문해 두었던 삼겹살이 냉장고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부랴부랴 레시피를 찾아 만들었다.
엄마마마님도 대번에 설탕을 넣었냐며 알아채셨다시피 아주 약간 단 맛이 있기는 했다. 아주 약간. 부득이하게 엄마마마님께서 김치를 반 포기를 다 쓰라고 하시는 바람에 양이 많아져서 다 먹느라 혼났다. 백선생의 레시피에서는 훨씬 더 한참 끓이고 육수를 계속 추가해 넣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내렸다. 적당히 익으면 그만이지 싶었고, 어차피 계속 데워 먹을 거라 처음부터 힘 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레시피에 적혀 있던 대로 육수는 만들었지만 반 정도만 쓰고 남았다.
9. 부베트에서 먹었던 당근 라페의 재현
라페 만드는 법을 찾아 보고, 부베트에서 먹어 보았던 맛을 기초로 필요한 재료들을 추가해서 얼렁뚱땅 만들어 보았다. 당근 써는 일이 쉽지 않아서 자동 채썰기 기능이 있는 블렌더가 사고 싶어졌다.
따끈하게 구운 빵 위에 얹어 먹으니 너무 맛있다. 고수까지 넣어 주니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당근을 더 잘 썰어서 소금에 잘 절여줬어야 했는데 부베트에서 먹었던 당근 식감과 사뭇 달랐다. 다음엔 소금을 조금 더 충분히 넣어서 잘 절여줘야지. 올리브오일에 버무린 당근이니 베타카로틴인지 비타민에이인지 흡수율이 더 좋아진다고 하니 건강한 메뉴다.
10. 다시 어남선생의 마늘삼겹살카레
카레를 잘 못 만들겠다. 전에도 달걀 버터 카레 만들었다가 실패했었는데, 여전히 카레 농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삼겹살의 상태가 불안하다했더니 엄마마마님께서 미림에 미리 담궈보라 하셨는데 그 미림이 문제였다. 고기에서 너무 시큼한 냄새가 나서 상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양배추를 넣고 20분 쯤 끓이면 자연스럽게 물이 나온다고 했는데 물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물을 추가했다. 반 잘린 양배추가 이미 수분이 많이 날아간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카레는 몇 번 더 도전해봐야겠다.
3월 한 달은 이렇게 부지런을 떨었다가 이제는 또 시큰둥해서 레시피도 안 챙겨 보고 있다. 간단해 보이는 스팸 볶음밥이나 한 번 더 해 먹고, 카레를 성공할 때까지 복습해 보고, 남은 멸치나 한 번 더 볶아야겠다.
아직은 해야 할 사무실 일이 남아 있어 집에서 병행하려니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무엇 하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서 어지러운 상태랄까, 평온하고 즐겁고 신나는 5월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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