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맛은 있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던 회식, 월향

d0u0p 2019. 11. 12. 08:10
728x90
반응형

월향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맛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취향에 따라 다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식 장소를 어떻게 모두의 입에 맞게 고를 수 있을까, 겨우 겨우 발 동동 구르며 예약하고서도 노심초사하시는 팀장님의 수고는 철없는 직원의 징징거림 한 마디로 물거품이 되었다. 회식비를 징징대는 그 직원 월급에서 까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발품 팔아 예약한 것도 아니고, 늦게서야 나타나서 까다로운 본인 입맛에 맞춰 주지 않았다며 싫은 소리부터 내뱉는 바람에 좋았던 분위기는 다 망가졌다.

자기 돈 낼 때나 꼼꼼히 살펴 볼 가성비 항목을 회식자리에서 운운하는 것 이면에는 사실 입 맛에 맞지 않는 메뉴를 먹게 된 데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고 투정부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막걸리는 못 마시는 체질이며 안주로 먹은 메뉴는 다 느끼해서 못먹겠다고 했지만, 안주는 느끼한 종류의 메뉴로만 골라서 주문한 그 테이블에서 잘 못한 것이고, 어떤 술이든 마시면 토악질부터 하고 몸이 가렵고 팔다리가 아픈 나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체질이라서 마시고, 소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체질이라서 마시나?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데, 잘 먹었다, 그래도 그 메뉴가 더 좋더라, 정도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옆에서 보면서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 일은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하는데 내 입맛을 알아서 맞춰달라고 마흔 넘어서까지 응석부리는데 그걸 다 받아주고 대꾸해주시는 팀장님이야말로 보살이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이렇게 구시렁거리고 있다. 이렇게 공들여 글을 올리는 것조차 데이터 낭비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탓해봐야 무엇하겠는가, 나나 잘 하자. 

술은 진짜 잘 못 마시는데, 막걸리는 달큰해서 그런지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지 배만 부르지 않으면 잘 마신다. 아니면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달달한 요거트 막걸리와 그 날의 추천이라는 밤 막걸리를 주문했는데, 요거트 막걸리는 많이 단 편이라 안주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안주가 없어도 디저트 마시는 느낌으로 마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치즈호감전과 차돌숙주볶음, 전복가리찜을 주문했는데 다 맛있었다. 셋이 앉아서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옆 테이블에 나눠드리고 먹었다. 

다시 봐도 군침 돈다. 호감전은 바닥에 감자채가 깔린 상태인데 대체 어떻게 부치면 이런 전이 되는지 궁금하다. 덜 구워진 느낌의 색이긴 해도 감자의 바삭함과 고소함이 살아있는 맛이었다. 차돌숙주는 뭐 두 말 할 필요 없었고, 제일 인상깊었던 메뉴는 전복가리찜이었다. 사실 쇠기름 냄새 싫어하는 내게는 맛있는 인상의 메뉴가 아니라서 맛이야 그냥 뭐 갈비찜 맛이라고 할 정도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전복 가리찜이 처음에는 냄비에 통으로 들어 있는 전복과 갈빗대를 먼저 확인시켜 주고 알바님이 옆에서 먹기 좋게 잘라주는 메뉴인데, 그 날 그 알바일지 모르는 그 분은 집에서 엄마가 차려 주시는 갈비를 입으로 넣어보기나 했지, 고기 따위 손수 가위 들고 썰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을 법한 젊은 청년이었다. 지켜 보고 있으면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편한 마음으로 알아서 자르시도록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옆에서 살짝 보기에도 (가위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안타까웠는데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직원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나가셨다고 한다. 어린 대딩일 때, 이모네 가게에서 한동안 일하면서 나도 역시 많이 타박받았다. 책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렸지 감자를 언제 깎아봤어야지. 감자 좀 깎으라시는 이모의 명에 칼을 쥐고 세월아 네월아 감자를 깎다가 결국 다시 이모의 손에 칼을 빼았겼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잘 깎을 수 있었다. 당장 닭볶음탕을 끓여내야 하는 이모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겠지만 예술혼을 불어 넣어 감자를 완벽한 구체로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깎아 먹어야 하는 과일에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깎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그도 갈비찜을 먹어 보기만 했겠지, 언제 제 손으로 잘라 봤을까, 그냥 가위 놓고 가라는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게 되겠지. 그간 숱하게 밥상 차려 주시던 엄마의 노고를 잠깐이라도 떠올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밥상 앞에 앉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배가 너무 불러서 다른 메뉴를 맛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초 치는 정도를 넘어 어깃장을 놓는 사람이 있으니 회식으로 또 가기는 어렵겠다. 응석은 제발 집에서!

2018/11/17 - [EATING] - 여의도 직장인 점심 : 한식, 팀장님 생일상 월향 그리고 솜씨

 

여의도 직장인 점심 : 한식, 팀장님 생일상 월향 그리고 솜씨

​벌써 일년 전이었나, 어느 날 갑자기 이화주가 궁금하다며 막걸리 이야기를 꺼냈다가 월향에 가보자 하여 주말에 들렀다가 이화주는 구경을 못하고 뜬금없이 어복쟁반을 먹고 온 날이 있었다. 2017/07/13 - [EAT..

d0u0p.tistory.com

2017/07/13 - [EATING] - [여의도 맛집] 월향, 임정식 쉐프 팝업 행사로 다시 가봐야 함

 

[여의도 맛집] 월향, 임정식 쉐프 팝업 행사로 다시 가봐야 함

원래는 이화주라는 신기방기한 요거트 스타일의 막걸리를 맛 보고 싶다고 하여 습기를 참으며 나섰던 것이었는데, 팝업 행사 진행 중이라 일반 월향의 메뉴는 주문할 수 없었고 평양냉면과 어복쟁반만 가능하다 하..

d0u0p.tistory.com

2019/06/30 - [EATING] - 여의도 직장인 점심 : 일주일에 만두 나흘 먹기 feat. 대동문 회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