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8월의 필기 : 펜크라프트 글씨체 연습하기

d0u0p 2019. 8. 28. 08:10
728x90
반응형

올 해는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각 방송사에서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홍보 영상에서 정자체이거나 흘림체로 글씨를 곱게 써내려가는 장면이 눈에 쏘옥 들어왔고, 저런 글씨는 어떻게 쓰는 걸까, 나도 쓸 수 있나 혼자 끄적여 보았지만 전혀 비슷해 지지 않아서 심란해 하다가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니까 곱게 마음을 내려 놓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TV 영상에서 보았던 글씨와 비슷한 손 글씨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강의의 광고를 포털 화면에서 보았고, 홀린듯이 수강료와 강의 내용을 훑어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수강료가 비쌌다. 내일배움카드를 쓸 수 있는 수업도  아니고, 올 해 상반기에 이미 내 주머니 털어 들었던 수업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간 내서 강의실까지 찾아가는 품에 비해 얻는 것이 많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선뜻 자비 털어 또 수강신청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수업 내용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고, 평준화된 기초 수업이었던 터라, 20년 가까이 포토샵을 써서 일했는데 인터넷이며 IT며 잘 모르시는 일반 수강생들과 함께 같은 교육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손글씨 수업도 이미 받았던 적이 있다. 정말 손글씨 잘 쓰시는 분이라 나도 잘 쓰고 싶어서 배웠는데 효과는 좋았다. 디자인 이론과는 거리가 있으신 분 같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문자 디자인의 원론적인 이치를 깨닫고 계신 것 같았고, 손글씨를 쓰는데 유효적절하게 사용하시는데다가 설명도 잘 해주셔서 도움이 되었다.  

허나 이론은 이론인지라, 레터링의 원리를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그것이 내 손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이 지났어도 아직 펜 대를 잡으면 버들버들 떨어서 첫 장은 망치기 일쑤이고, 노트 필기도 맘이 급하여 빨리 빨리 쓰다보면 당연히 글씨는 엉망이 된다. 유투브 촬영용 필기를 할 때에도 마음은 가지런히 쓰고 싶지만 카메라를 앞에 끼고 자세를 잡으면 잡은 손이 불편해서 글씨는 여지없이 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지런하게 잘 쓰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며, 결국 내 의지에 따라 연습을 얼마나 더 하느냐에 따라 글씨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니 새로운 강의를 듣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얼마나 될 것인가 곰곰히 따져 보고 나니, 기초적인 내용을 다시 반복해 듣느라 수업 시간의 반 이상은 또 지친 마음이 될 것 같고, 글씨는 결국 내가 스스로 얼마나 연습하느냐에 달린 과제일 것이니, 그만한 수강료를 내기 보다는 다른 길을 찾아 보기로 하고 강의 신청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분은 유투브를 운영하고 계셨다. 

따라 쓰기 영상을 보며 차근 차근 하나씩 따라해 보기로 했다. 사무실 네트워크 사정 상 끝까지 다 연습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에 잘 모르겠던 글자들이 반복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삐쳐쓰는 획이나 꺾는 부분들이 손에 익기 시작했고 글씨체가 조금씩 좋아지니 재미가 붙어서 일주일동안은 신나게 정자체만 썼다. 

처음 쓴 글씨들은 정말 가관이었다. 오른쪽 정렬로 쓰다 보니 모음 중에 겹으로 쓰는 모음이 나오면 자음을 얼마나 당겨써야 할 지 감이 안잡혀서 힘들었고, 그냥 다 힘들었다. 가로 획 세로 획 기울기도 문제고, 전체 글자 하나의 크기가 고른 덩어리감을 유지하도록 쓰는 것도 어렵다. 아직도 어렵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엽서 한 장을 채우고 다시 쉬는 중인데, 일주일이 지났으니 아마 글씨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다시 삐뚤 빼뚤해질 수 있다. 정자체는 획이나 삐침 부분에 공을 들여 천천히 써야 하는 편이라 엽서 한 장 채우고 나니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파서 모든 기운을 소진하고 일단 펜을 내려 놓았다. 뭘 해도 어깨, 팔 안 아픈 일은 없나보다. 

검은 크라프트지에 흰 색 펜, 은 색 펜으로 쓸 때 의외로 잘 써져서 재미있었다. 물론 펜크래프트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고, 이제 무릎 정도 겨우 따라간 것 같은데 펜크래프트 정자체의 몇 몇 글자는 마음에 안 든다며 내 마음대로 쓰고 있고, 갈 길이 먼데 어깨는 너무 아프다. 

펜크래프트 유투브에서 옛날 글씨와 비교하는 영상이 있길래, 옛날 글씨 망나니 시절을 더듬어 보려고 노트를 찾아 봤다. 지금은 다시 이렇게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기도 한데, 그냥 글씨를 쓸 때에는 언제나 마음이 급해서 빨리 쓰느라 이 모양이었던 것이 아닐까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 때에는 글씨를 어떻게 해야 잘 쓰는지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잘 쓰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때 동기 충만했으면 좋았을텐데 뒤늦게 글씨 몇 자 따라 써보고 소질있는 것 같다며 한껏 즐거워하고 있다. 펜크래프트의 동영상을 보면 정말 천천히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보다는 좀 빨리 잘 쓰고 싶다. 연습하면 되기는 할까 궁금하다. 

기록해 두고 싶은 문장이 있는 책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