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시험 보고 허기에 지쳐 급하게 발길 닿는 대로 찾아 간 가로수길 부자피자

d0u0p 2018. 12. 4. 00:01
728x90
반응형

​올 해를 통 털어 제일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선 날이었는데,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깜짝이야, 시험장이 멀어서 일찍 나서기는 했는데 이렇게나 폭설처럼 첫 눈이 내릴 줄은 까맣게 몰랐다. 다행히 마을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는데 눈이 점점 더 심하게 내리고 있었다. 사거리 앞에서 스마트폰도 안 들고 오셨는지 눈을 맞으며 시험장 가는 길을 묻던 그 분은 무사히 잘 가셨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길도 미리 확인하지 않고 나섰나, 스마트폰은 왜 안 들고 나섰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렇게 허둥지둥 대충해서 어떻게 시험 보시려나 잠시 걱정을 해 보았지만 나나 잘할 일이다. 

운동장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서 사진 찍어 두고 싶었는데, 창가 자리도 아니었고, 휴대폰은 첫 시간 전에 걷어 가서 시험이 종료될 때 돌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전자기기는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필름 카메라같은것은 혹시 되려나 궁금해진다. 

가장 쇼킹했던 문제는 톱의 명칭을 묻는 문제였다. 교과서에서 본 기억은 분명 있으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톱의 명칭을 쓰라는 문제임은 잊은 듯이 글짓기를 하고 나왔다. 다른 문제도 글짓기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시험 시간으로 봤을 때는 다음 시간까지 여유가 40분씩 있어서 그 사이에 노트 필기나 책을 좀 볼 수 있고, 여유롭게 가벼운 식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0분만 온전한 쉬는 시간이고, 다음 시간 시작하기 20분 전에 시험지와 함께 감독관들이 들어오셔서 뭘 볼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당연히 식사도 불가능했다. 최소한의 열량공급을 할 수 있고 적당히 요기가 가능한 가볍지만 고단백 고열량 간식들을 챙겨 갔다. 견과류, 육포, 초콜렛, 사탕 모두 다 괜찮았다. 그나마라도 없었으면 3교시는 허기져서 짜증짜증으로 가득한 답안지를 적어내고 돌아왔을 것 같다.

집에서 맥주를 빚는 친구의 집에 가기로 했지만 지치기도 했고, 친구님도 나들이와 쇼핑삼아 밖에 나와있다 하여 의외의 장소인 가로수길에 가게 되었다. 시험 보고 가로수길이라니 예상 선택지에 전혀 없던 의외의 이벤트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가로수길에 갔다. 

희미한 기억의 끝을 더듬어서 화끈 얼큰 후끈한 매운 것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려고 떡볶이집이 있던 곳 근처까지 가 보았으나 떡볶이집을 찾을 수 없었고, 희미한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보니 없어졌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떡볶이집은 그 곳에 없어서 바로 발길을 돌려서 제일 가까운 식당이라고 할 법한 유노추보로 돌진하였지만 애석하게도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친구나 나나 애매한 오후 시간에 허기가 최고조가 되어 오히려 스트레스가 다시 솓구쳐 오를 것 같은 느낌이라 유노추보에서 몇 걸음 더 가면 있는 부자피자로 향했다. 설마 부자피자도 브레이크 타임일까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도 영업중이었고, 다행히도 자리도 있었다. 

​신나게 욕심껏 주문해 보았는데, 샐러드가 제일 맛있었다. 피자는 사실 부팔라 치즈나 뭔가 추가로 더 들어간 종류가 맛있었던 것 같다. 기본 마르게리따이기도 했고, 마르게리따가 제일 늦게 나와서 그 때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라 시큰둥했을 수는 있지만, 샐러드는 여전히 계속 맛이 있었다. 채소도 싱싱하고 드레싱도 좋았고, 무엇보다 곁들여 나오는 빵이 진짜 너무 맛이 좋았다. 다음에 가도 샐러드는 꼭 시켜 먹어야지, 지금도 여전히 기억나는 맛인데다가 먹고 싶은 맛이기도 하다. 그 날의 피로를 풀어주는 상쾌함이 묻어나는 그런 맛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이쪽 저쪽을 돌아 보다 새로운 곳을 발견했다. 메종키츠네가 들어왔나보다. 요즘 들어 꽤 눈에 띄는 브랜드였는데, 가로수길에 있었다. 배불리 먹고 사실 커피를 마실까 해서 들여다 보니 카페 키츠네라는 사인이 보여서 들어갔는데 카페는 작고, 좁고, 사람이 많았다. 골목 길 안 쪽으로 보이는 불빛을 따라 들어가면 가운데는 공터처럼 넓지만 주변으로는 키츠네 매장이 둘러 둘러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세상 같아 보이는 골목 안쪽에서 너도 나도 셀피를 찍고 있었는데 눈비가 그친 후라 습한 대기하며 대나무숲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피곤하기까지해서 오히려 더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피로도가 극심해 져서 더 이상 주변 환경에 주의를 기울일 형편이 아니어서 따뜻하게 커피 한 잔하고 호기롭게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한 나라에서 보낸 이상한 날, 이상한 시험을 보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