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ING/MASIL

난감했던 노들섬 나들이 feat. 퍼스널 쉐이드 커스텀 그라운드 체어

d0u0p 2024. 6. 1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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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날이라 처음으로 노들섬에 나들이를 가 보기로 했다. 
무려 작년에 구매했던 그라운드 체어에 헬리녹스 퍼스널 쉐이드를 결착할 수 있게 커스텀까지 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 테스트도 해 보아야 했다. 퍼스널 쉐이드에는 의자에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두 종류가 들어 있었는데, 하나는 사용하고 있는 의자 폴대보다 직경이 넓어서 맞지 않아서 쓸 수가 없었다. 쓸 수도 없는 놈이 도대체 왜 들어 있는지 모르겠어서 옆으로 치워 두었었는데 그라운드 체어 기둥에 혹시 맞을까 싶어서 꺼내 보니 너무 딱 잘 맞았다. 

기둥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박음질이 되어 있던 부분의 실밥을 일단 다 풀고 퍼스널 쉐이드 연결 고리를 넣어 보았다. 아랫쪽 박음질이 튿어지려나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일단 테스트나 해 보고 다시 손을 대 보자는 마음으로 곱게 싸서 들고 나갔다. 
나들이에는 맛있는 커피가 필수니까 동네 로스터리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커피를 싸들고 나와서 노들역에 내렸더니 날씨가 정말 미친듯이 화창하고 좋았다. 너무 좋았다.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의 한강을 처음 만난 것 같다. 큰 차가 지날 때면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한동안 풍경 감상도 하고 사진도 몇 장 찍고 감탄하다가 꼴찌로 다리를 건넜다. 

입구에는 노들섬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해주는 타이포그라피 조형물이 반겨주고 있었다. 사실 이 잔디밭 위에 그냥 돗자리를 깔아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더 멋진 풍경을 찾아 섬 안 쪽으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공연 준비중이었던 공연장을 지나 내려가면 한강변에 바로 닿을 수 있는데, 여기서부터 난감함이 시작되었다. 첫 번 째 난감했던 일은 강변에 서 있는 나무 밑 그늘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고, 바로 앞에 보이는 나무 그늘 앞에는 모터 소리가 요란한 배가 한참을 지나다녔다. 그 쪽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겠다 싶어서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려 그늘을 찾았다. 나무 그늘 아래라서 신난다고 일단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는데 또 난감했다. 앉은 자리가 비탈진 경사면이라 모든 것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여기서 텀블러가 세 바퀴 반 정도 굴러내려가는 바람에 외부 도장이 다 까지고 난리가 났다. 결국 한동안 불타올랐던 고급 텀블러에 대한 애정이 이 자리에서 차갑게 식어버렸다. 함께 들고 갔던 작은 교자상과 커피를 부여잡고 앉아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옮긴 자리는 63빌딩과 한강철교가 나란히 보이는 최근방이었는데, 그 뷰 한 가운데에는 쓰레기통이 배치되어 있었으니 또 난감했다. 쓰레기 치우는 것도 물론 매우 중요하고 분리수거까지 잘 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지만, 쓰레기통의 자리가 왜 이 곳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되돌아 나가는 길목이라던가, 아니면 잔디밭 쪽 길로 배치하면 사각에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각에 놓이면 쓰레기통을 찾기가 또 어려워서 그럴까 싶어 이해는 가는데 더 좋은 아이디어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매우 아쉬웠다. 

옮긴 자리에서 그라운드 체어를 펴고 헬리녹스 퍼스널 쉐이드를 무리없이 연결할 수 있었지만 또 다시 난감한 문제들이 있었다. 일단은 윗쪽 박음질 마감을 튿어 버린 상태로 들고 나왔더니 몸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연결부위가 의자 밖으로 자꾸 삐져 나가서 불편했다. 확 빠져 버리지는 않았지만 자꾸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고 용을 쓰다 보니 매우 불편했다. 결국 집에 돌아와서 대바늘에 실을 세 겹 정도 꿰어서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듬성듬성 박아 놓았다. 

그리고 또 다른 난감함은 퍼스널 쉐이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점 때문이었기도 한데, 일단 해가 높이 떠 오른 상태라 쉐이드를 부착한 의자를 어느 방향으로 놓아도 그늘이 짧아서 방향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해를 마주 보면 그늘이 뒷 쪽에만 생겨서 다리는 뜨겁고, 해를 등지면 다리에는 그늘이 생기지만 등짝은 뜨거워 난감했다. 그나마 긴 팔을 챙겨 입고 어중간하게 긴 머리가 있으니 등짝을 과감하게 내어주기로 하고 해를 등지고 앉았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아무것도 하지않고 멍때리고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다. 노을이 더 좋은 곳이라 집에 돌아오는 시간 쯤 되니 사람이 더 많아졌다. 들어가는 길에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입구 근처에는 독일식 족발을 먹을 수 있는 사퀴테리 전문점도 있었고, 마녀 김밥도 있었다. 고기파이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육점이라는 글귀에 혹해서 올라가 보았다가 부지런하신 분들이 이미 웨이팅을 끝내 버리신 것을 확인만 하고 다시 내려왔다. 

일찍 와서 점심을 먹어도 좋고 저녁 늦게까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돌아와서는 그늘 방향을 반대로 꽂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는 했는데, 일단 윗 그늘막과 의자 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든 메워보기로 했다. 대충 어정쩡한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연결하면 괜찮지 않을까 궁리중이다. 이제 또 더 좋은 날이라기에는 더운 날만 있을 것 같으니 혹시라도 바람 쐬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늘은
집에 던져 두고 저녁 마실길에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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