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력이 빛나는 책이었다. 소소한 수채화 일러스트가 좋아서 혹했고, 익숙하지 않았던 수채화에 입문하기에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책 한 권을 사들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물감과 붓을 구비하고 몇 가지 그림을 본격적으로 따라 그리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내가 그리고 싶어하던 세밀한 그림과는 거리도 있는데,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 책에 있는 그림과도 거리가 멀었다. 이상과 현실 수준이 다른 상태에서 부족함을 채우기에는 약간 부족함이 있었다.
채색할 물감의 농담을 조절하는 연습과 어두운 색을 더 그려 넣는 방식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수채화 물감을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수채화다운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만들어야 할 물감의 진득한 정도를 몰라서 내 물감은 늘 물도 부족하고 물감도 부족한 상태라 칠해 놓고 나면 언제나 색이 둔탁한 느낌이었다. 독학으로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어서 한동안 이 책도 책꽂이에 꽂혀만 있었다.
1일 1그림에서 권하는 미젤로 미션은 꽤 괜찮은 물감이다. 인체와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넣지 않고 만들었고 내광성도 꽤 우수한 제품이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으면 조금 더 설득력있었을텐데 약간 아쉽다.
수채 물감의 농담 조절하는 법 말고도 처음 책을 펴고 연습해 보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쉽게 속도가 붙지 않았던 이유는 선택한 그림이 기본 24색 외의 별색 물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실 그 별색으로 사용하는 핑크 빛 물감에 혹해서 선택한 그림이기도 해서 결국 그 그림을 완성하려면 추가로 물감을 구매해야 해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 별색 물감들이 투명 수채화로 사용하기에는 대체로 탁해서 그 색보다는 투명도가 좋은 기본 색 중에서 선택해 물을 많이 섞어 쓰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수채 물감은 사용하는 안료와 재료에 따라 각 색상마다 성질이 조금씩 다르고 투명한 정도도 다르다. 책에서 권하고 있는 별색인 Shell Pink와 Brilliant Pink는 물을 섞어 사용해도 반 불투명하거나 불투명한 물감이니 물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모르는 초보자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초급 딱지는 뗀 상태라 이제는 손에 잡히는 물감으로 대충 비슷한 느낌은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책 한 권만 붙잡고서는 절대 뛰어 넘을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았다.
너무 초심자인 경우 책만 믿고 따라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모든 그림의 스케치를 수록한 상태가 아니라서 선인장 그림의 경우 붓 사이즈는 알려 주지만 그림의 전체 사이즈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눈치껏 요령껏 선인장의 사이즈를 잡아내야 하니 쉽지 않을 수 있다.
가끔씩 열어서 도장깨기처럼 한 장 씩 그려 보면 좋은데, 여전히 여유가 없는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 모르겠다.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펜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2) | 2023.08.26 |
---|---|
누구나 쉽게 배우는 수채화 기법, 빌리 샤월의 꽃 그리기 2 (0) | 2023.07.31 |
HTML CSS 디자인 레시피 (0) | 2021.01.14 |
보타니컬 일러스트레이션 코스 (0) | 2020.12.29 |
너무 아쉬운 책, 잡초캐릭터도감 (0) | 2020.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