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만들어 마신 채소 스무디

d0u0p 2021. 9. 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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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디 하나 갈아내는 일이 민주주의를 들먹일 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마마님과 함께 살다 보니 채소와 과일의 종류, 비율, 재료를 갈아낼 도구의 선택, 스메그 블렌더 구입의 유혹 등 과일과 채소를 내 마음대로 갈아 넣은 스무디 한 잔을 마음대로 마시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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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갈 것인지부터 시작했다. 엄마마마님이 요리용으로 사용중이신 도깨비 방망이는 신통치 않아서 10년 전 쯤 한창 유행이었던 얼음까지 갈아주는 필립스 프로페셔널 알루를 꺼냈다. 내심 고장이 났기를 바랐지만 엄마마마님이 실수로 결착을 잘 못 해서 작동하지 않았던 블렌더는 정확하게 결착하고 나니 너무 쌩쌩 잘 돌아갔다. 프로페셔널 알루를 꺼내기 전에 이미 할인가에 나온 스메그 블렌더를 주문해 두었다가 말도 못하고 다시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저온 착즙이 가능한 휴롬을 생각했었지만, 휴롬은 아무리 쁘띠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도 기계 자체가 예쁘지 않았다. 집도 좁은데 기계 덩어리로 느껴지는 가전을 하나 더 들여 놓고 싶지 않았고, 착즙하고 나면 남은 찌꺼기 처리도 곤란하고, 섬유질 섭취에도 부적절한 방식이라고 하니 시원하게 포기하고 대신 예쁘고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각종 채소를 원하는 두께로 얇게 슬라이스 할 수 있는 기능을 겸비한 스메그 블렌더를 쓰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무겁지만 튼튼한 프로페셔널 알루는 각종 과일과 채소가 아주 곱게 잘만 갈렸다. 

케일과 오이, 샐러드를 반 이상 넣고 싶지만 엄마마마님은 남은 포도와 키위, 사과를 많이 넣어 먹기를 바라셨으며 되도록이면 그냥 씹어 먹기를 바라시는 바람에 티격태격했고, 갈아 먹는 빈도도 서로 의견 차이가 있어서 티격태격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이라 그런지 곱게 갈려 냉장고에 보관된 스무디는 단 맛이 강해서 엄마마마님이 꺼내서 마시라고 권해 주시지 않으면 쳐다 보지도 않게 되었다. 시큰둥해진 탓에 그대로 냉장고에서 스무디 윗 부분이 까맣게 변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그나마도 그만 먹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사과도 안넣고 케일과 오이와 샐러리만 넣어도 잘 먹을 수 있는데 왜 내 마음대로 갈아 먹지 못할까, 내 마음대로 갈아서 내 마음대로 좀 먹고 싶다. 제발. 내 부엌이 따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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