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벼르고 벼르던 서울 말차 투어, 푸드떼 말차 파르페와 오제제 말차 우동

d0u0p 2023. 1. 20. 08:00
728x90
반응형

서울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살아 그런지,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두문불출하고 집콕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 몸에 익어서 그런지, 그간 광화문 나들이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말차를 사용하는 힙한 찻집과 맛집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도 선뜻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 내내 집 안에서만 뒹굴다가 드디어 새 해를 맞이해 새 마음, 새 뜻으로 서울 중심으로 향했다.  

이 파이낸스 센터 빌딩 지하 맛집을 찾아 다니던 때가 2002년 무렵이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20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인도 카레로 유명세를 타던 '강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꼭 20년 전은 아니었지만 그 중간 쯤 생겼던 '커피빈'도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감회도 새로웠다. 올 해에는 시내 나들이를 자주 해야 겠다. 광화문에 대한 기억의 끝자락이 20년 전 언제쯤이라니 내가 서울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오픈 전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는 인스타그래머블 맛집, 오제제 광화문점의 고소한 말차 자루 우동 

파이낸스 센터 지하 3층에 위치한 오제제 광화문점은 대체로 매일 열 한 시에 문을 연다. '테이블링' 앱으로 원격 줄서기도 가능하지만 오프라인으로 문을 먼저 열고 30분 쯤 지나야 앱으로 줄서기가 가능하니 열 한 시 반에 대기를 걸면 그만큼 식사 시간이 더 뒤로 밀릴 수 있고 그 사이에 손님이 얼마나 더 늘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니 일단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매장으로 직접 가서 대기 등록을 하기로 했다. 

열 한 시 십 분 전 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이미 대기 등록을 위한 줄에 서 있다며 연락을 해 왔다. 입장도 아니고 대기 등록만을 위한 줄이 있었고, 앞서 등록하시는 분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디게 움직이시는지라 대체 왜 빨리 안 나오시는 걸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단말기 앞에 가서 보니, 단순히 대기 등록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기 등록을 하면서 동시에 메뉴도 선택해서 주문을 넣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메뉴까지 선택하려니 다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주문까지 마치고 대기번호 25번을 받고 잠시 나와 있으려니까 바로 오픈 시간이 되어서 일찍 오셨던 분들이 쭉쭉 들어가 앉으셨는데, 20번이 되기 전에 자리가 거의 다 차 버렸으니 애석하게도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광화문점은 다행히 파이낸스센터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까운 곳에서 커피나 차를 즐기며 기다릴 수 있어 좋았지만, 주말 이른 시간이라 마호가니며, 커피빈이며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다행이긴 했다. 

커피를 마시며 한 숨 돌리는 사이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거의 점심 시간에 딱 맞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자루우동과 안심돈까스도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받았다. 

말차 가루를 섞어 만든 우동면이 소복한 얼음 위에 누워 있고, 분홍빛이 선명한 안심돈가츠와 새우튀김을 아주 그냥 막 먹어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테이블 위에 정성껏 준비해 두신 설명서를 한참 파악하고 나서 먹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트러플 소금은 샤프처럼 꾹꾹 눌러 빈공간에 뿌려 놓은 뒤 돈가츠를 콕 찍어 와사비를 살짝 얹어 먹으면 되고, 기호에 따라 돈가츠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돈가츠 소스는 꽤 달큰해서 달갑지는 않았다. 

테이블에는 트러플 소금통과 함께 유자 드레싱이 있었는데 유자 드레싱이라기에는 갈색이 돌아서 잠깐 고민했지만 어쨌든 양배추 샐러드에  뿌려 주었고, 레몬도 샐러드에 뿌려 드시라고 되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굳이 유자 드레싱에 레몬까지 뿌릴 필요가 있나 싶다. 유자향이 원래 강하지 않았었는지, 레몬즙 때문에 희석되서 흐려졌는지 유자향이 그렇게 크게 와닿는 느낌은 없었다. 

한참을 테이블 위에 있는 설명서를 읽고, 밀린 수다를 떠느라 그동안 돈가츠와 새우튀김은 약간 식어 버렸다. 부드럽기는 했으나 또 안심이라 너무 부드러워서 등심으로 먹으면 씹는 맛이 있어 더 괜찮겠다 싶기도 했다. 잠들면서 다 못 먹고 남긴 돈가츠가 다시 생각나 벌떡 일어날 만큼은 아니었지만 점심 한 끼를 위해 줄 설 용기를 가진 누군가와 특별한 메뉴를 찾아 먹고 싶을 때 다시 찾아갈 수는 있겠다. 말차 우동은 여름 되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푸짐하게 점심을 먹고 근 한 달 전에 '캐치테이블' 앱으로 예약해 놓은 푸드떼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환상적인 말차 몽블랑 파르페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푸드떼

푸드떼에서 맛 볼 수 있는 말차 몽블랑 파르페가 너무 궁금했다. 예약이 너무 많이 밀려서 힘든 정도는 아니었고,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있어서 약속 날짜가 미리 잡혔을 때 함께 예약해 두었다. 예약했던 시간보다 20분 쯤 일찍 도착했는데, 적당히 좌석을 선택해서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조용한 방구석으로 골라 잡아 앉은 뒤, 파르페와 차 두 잔이 함께 구성된 2인 세트를 주문했다. 차의 종류를 또 다시 선택해야 했는데, 메뉴에 나와 있던 차 외에 황차도 있다고 해서 황차를 하나 선택하고, 낯 선 이름인 대홍포를 하나 더 선택했다. 

녹차와 말차, 보이차, 청차, 홍차, 그리고 반발효차인 대홍포가 있으니 취향껏 선택하기 좋았다. 대홍포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대홍포를 만드는 차나무가 중국에서도 몇 그루밖에 없어서 일 년 동안 생산하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고 나온다. 적당히 처음 보는 이름이라 선택했는데 나름 귀한 차인 것 같아 마음이 괜히 뿌듯했다. 

차를 일단 받아 마시고 있으니 대망의 말차 몽블랑 파르페를 가져다 주셨다. 럼에 졸인 밤이 너무 궁금했지만 알콜쓰레기인 주제로는 감히 넘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둘이 나눠 먹으려니 밤을 쪼개려는 순간 파르페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주당인 친구에게 양보를 했는데, 밤 근처에서도 충분히 럼 맛을 느낄 수는 있어서 즐거웠다. 

말차 시럽을 중간 중간 섞어 먹으면 되는데, 흘릴까봐 정말 조마조마했다. 바닥에 있는 젤리까지 부지런히 먹어갈 무렵 다시 웰컴티를 한 잔 더 주셨다. 

좌: 대홍포 / 우: 웰컴티, 설상 국화차

이렇게 붉은 색 국화차는 또 처음 봐서 신기했다. 찻집에 앉아 있을 때 내다 보이는 창문 너머로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 법 했는데 눈이 오전에 잠깐 오다 말아 또 아쉬웠다. 아름다운 양갱이 있다길래 또 안먹어 볼 수가 없어서 양갱도 추가 주문했다. 투명한 놈은 팥으로 만든 양갱 위에 우뭇가사리가 얹어진 것이고, 녹색은 오트밀과 콩으로 만들어진 양갱이라 했다. 

콩으로 만들어진 양갱은 전체 덩어리가 미숫가루 씹는 느낌과도 비슷하고, 뭔가 어디에선가 맛 본 적이 있던 식감인데 그 실체를 명확히 기억해 낼 수는 없었다. 식감이나 맛은 팥 양갱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양갱은 역시 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날, 배민 문방구의 2023년 일력을 받아 한 장 한 장 떼어 냈는데 하필 그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말, 일요일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었다. 말차 우동도 말차 파르페도 신선한 아름다움이었고 즐거웠다. 올 해는 이렇게 쉬는 날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