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나에게 미해결과제인 벚꽃이 가득 담긴 사진,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기분전환이 필요한 때였고, 지나가는 말로 엄마가 경주에 가보신 적이 없다 하신 말씀을 새겨듣고, 2014년 4월 경주 여행을 기획했었다. 엄마랑 둘이만 갔으면 기획도 뭣도 아닌 그저 꽃놀이정도라고 했을텐데, 이모와 이모부, 이모와 이모와 이모들이 함께 동행하게 되었으므로 기획이 되었다.
벚꽃이 한창인 경주에 가려면 2월부터 준비를 했어야 했고,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콘도 역시 성수기여서 추첨을 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딱히 추첨까지는 안가고 바짝 정신차려서 예약하니 쉽게 예약이 되었던 것 같다.
방은 해결했으니, 이모부와 내가 운전을 하기로 하고 각각 나눠 출발하였는데, 이모부는 이모부에게 편하신 경부고속도로 옛 길로 가셨고, 초행길에 어두운 나는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중앙고속도로 새 길로 가게 되서 결국 도착할 때까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차만 달려 갔다. 게다가 먼 길에 차를 미리 정비하지 못하고 출발해서, 4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운전하기에는 반팔도 더운 날씨에 에어콘이 고장나 버렸다. 길 가다 잠시 휴게소에서 서비스센터에 문의하니, 고속도로를 내리지 않으면 수리할 곳이 없다 하고, 이모부는 벌써 경주 근처에 가 계셨고, 콘도는 내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으니 일단 수리를 포기하고 창문을 열고 고속도로를 시속 100km 이하로 살살, 차창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살살 기어서 겨우 겨우 경주에 도착했더랬다. (이렇게 흥미진진했었던 이야기인 줄 몰랐는데?!)
도착하니 이미 저녁 무렵, 심지어 천둥번개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멀리 서울에서 경주까지 달려왔으니 모두들 바깥 구경은 일단 포기하시고, 첫 날은 그렇게 저녁 뚝딱 먹고 수다삼매경, 창문 열고 운전하느라 혼이 쏙 나간 나는 물론 늘 상비하고 다니는 이어플러그를 꼽고 일찍부터 푹 잘 잤다. 경주 한화 콘도가 물이 온천수이기도 하고, 시설도 뭐 그럭저럭 사진으로는 가 볼 만 해 보여서 사우나도 다녀왔던 것 같긴 하다. 매끈매끈한게 좋긴 좋았다.
문제는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꽃구경을 가기로 하고 나섰는데, 콘도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보문 관광단지 주차장으로 이모부 차 네비에이션에 도착지를 분명 찍어 드린 것 같았는데, 이모부가 신이 나서 이모부 마음대로 가신건지, 네비가 잘 못 찍혀서 다른 델 가신건지, 보문단지 건너편에 있는 놀이동산 근처로 가 버리셔서 이모와 이모부는 거기서 여기가 기네 아니네로 싸우셨고, 하, 먼저 도착한 일행은 보문단지에서 구경하고, 사진찍고 다 하는 동안 이모부차가 나타나지 않아서 꽃을 보는 둥 마는 둥, 기다리다 말다 정신없어서 결국 이모부를 찾아 나섰고, 이모부는 커다란 관람차가 보여서 거기가 관광지일거라 생각하셨다고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잘 못 되어 있었을 수도 있는데, 눈치보느라 확인을 할 수가 없어서 아직까지 사실을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불국사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미 마음 상하신 이모부는 불국사는 가 봤으니 아니 보시겠다 하시고, 흐아아아, 뭐, 쿨하게 이모부를 버리고(?!?) 우리는 불국사를 노닐고 내려와서 혹시 이모부가 가버리셨을까 걱정하였으나, 다행히 자리를 지키고 계셔서 무사히 다 함께 계림 근처로 옮겨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이모부 하핫,
적당히 맛집으로 섭외했던 것 같긴 한데, 관광지이기도 하고 뭐, 경주 한정식 딱히 어디가 정말 좋네 나쁘네 없이 평균일 것 같아서 신경 많이 안쓰고 먹었다. 많이 비싸지 않았고, 적당히 반찬 잘 챙겨 나오는 집 정도로 기억된다.
배부르게 먹고, 산책겸 걸으며 만난 곳이 바로 여기, 계림이었다.
엄마와 이모와 이모부와 이모와 이모와 이모를 잠시 잊고, 넋을 놓을 수 있던 곳이다.
아직도 사진을 보면 그 때 불던 바람이 느껴진다.
원래 그 건너편에 있는 안압지까지 보고 싶었는데, 엄마와 이모와 이모부와 이모와 이모와 이모는 이제 볼 거 다 보셨으니 노래방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하, 하, 하, 일정에서 안압지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대신 노래방 가시는 틈에 차를 몰아 서비스센터에 가 에어콘을 수리받고, 다행히 다음 날 무사히 창문 닫고 올라올 수 있었다.
뭔가 진지한 과제가 있는 주제였는데, 쓰고 나니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는 여행이었다.
엄마와 이모와 이모부와 이모와 이모와 이모는 즐거우셨어야 할텐데, 다시 못 갈 여행이기도 하고, 4월 경주는 너무 좋은데, 4월에 경주 가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다들 건강하실 때 다시 경주 한 번 더 가고 싶다. 아옹다옹했던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시며 즐거워 하시지 않을까 싶지만, 운전은 이제 동생 좀 시키시면 좋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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